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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아도 지는 게 용맹" … 큰스님 사자후 들리는 듯

경남 산청의 ‘성철 스님 기념관’ 안에 마련된 성철 스님 좌상. 주장자를 짚은 채 해인사 법당에서 법문을 하던 60대 중반의 성철 스님을 대리석으로 형상화했다. 기념관은 오늘 개관한다. [사진 겁외사]


원택 스님
성철(性撤·1912~93) 스님은 생전에 꼭 ‘어째서?’를 물으라고 했다.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불교 참선법) 수행을 할 때도 ‘무(無)’ 혹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뜰앞의 측백나무)’란 화두를 받으면 그냥 ‘무·무·무’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어째서 무라 했는가? 무슨 이유로 ‘정전백수자’라 했는가? 어째서를 늘 붙여서 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국의 조주 선사는 왜 ‘무(無)’라고 했나. 그걸 말할 때 조주 선사는 어떤 심정이었나. 그렇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그 물음의 끈을 따라 두레박을 타고 자기 안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성철스님 기념관 오늘 개관
경남 산청 생가 옆에 2층 건물
"본래 부처임을 깨달으면 그만"
곳곳에 방문객 깨우치는 법문



 성철 스님이 강조했던 ‘어째서?’는 현대인의 가슴을 두드린다. 나는 왜 공부를 하나, 나는 왜 직장을 다니나, 나는 왜 돈을 버나. 목표만 좇다가 망각해버린 나의 존재 이유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차를 타고 꼬박 네 시간을 달렸다. 1일 개관하는 경남 산청의 ‘성철 스님 기념관’을 미리 찾았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IC에서 불과 3분 거리였다. 접근성이 좋았다. 기념관 바로 옆에는 성철 스님 생가와 사찰 겁외사(劫外寺)가 있었다. 많을 때는 연간 방문객이 30만 명에 달한다. 산청군청에서는 성철 스님을 ‘합천 해인사의 자랑’만이 아니라 ‘산청의 자랑’이라고 한다. 성철 스님은 결혼하고 스물 네 살 때 출가하기 전까지 산청에서 살았다.



 성철 스님을 23년간 시봉한 상좌 원택(70·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스님은 “동서남북으로 1㎞ 안에 있는 산과 논이 모두 큰스님(성철 스님) 집 소유였다. 큰스님은 부잣집 맏아들이었다. 출가한다고 했을 때 아버님께서 화병이 났다. 유림의 집안에서, 그것도 장남이 출가를 선언하니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성철 스님이 ‘산청의 자랑’이 됐다”고 말했다.



 기념관으로 갔다. 1층 외벽에는 검은 돌 위에 성철 스님의 생전 모습들이 사진으로 새겨져 있었다. 성철 스님이 구도했던 곳과 연결되는 QR코드도 외벽에 새겨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문 이름은 ‘성불문(成佛門)’. 말 그대로 부처를 이루는 문이다. 입구 양 옆에 새겨진 글귀가 방문객의 가슴을 찔렀다. ‘자기가 본래 부처님입니다.’ 그건 성불을 향한 첫단추였다. 성철 스님이 생전에 법문에서 늘 강조했다. 수행이란 내게 없는 부처를 찾는 게 아니다. 내가 본래 부처임을 깨달으면 그만이라 했다. 바깥에서 보석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 주머니에 이미 있는 보석을 찾는 일이니 누구나 가능하다고 설파했다. 그러니 수행은 부처를 찾는 일이 아니라 “나는 중생이다”는 착각을 치우는 일이다.



 성불문 오른편 글귀는 ‘모든 중생 행복을 바랍니다’였다. 성철 스님이 남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법어로 적혀 있었다. “모든 행복은 남을 돕는 데서 온다.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불행의 근본이요. 참다운 행복은 오직 나를 버리고 남을 돕는 데서 온다” “천하에 가장 용맹스러운 사람은/옳고도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다/칭찬과 숭배는 나를 타락의 구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고/천대와 모욕만큼 나를 굳세게 하는 것은 없다.”



 안으로 들어서자 대리석으로 조각한 성철 스님상이 앉아 있다. 오른손으로 주장자를 짚고 해인사 법당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표정이 살아 있다. 원택 스님은 “이 공간은 방문객이 편하게 좌선도 하고, 기도도 하는 처소로 삼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2층은 넓은 강당이었다. 기념관 불사에는 모두 20억 원이 들었다. 30일에는 300여 신자들과 함께 기념관 개관식을 가졌다.



 6년 전 인도의 아잔타 석굴 등 불교 성지를 방문하며 감동을 받았다는 원택 스님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알 수가 없다. 알려지지 않은 진실은 없는 진실이나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의 선수행 정신과 선사상이 전설로만 남아 있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 살아있는 진실로 존경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념관을 건립했다”고 말했다. 기념관 맞은편,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였다.



산청=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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