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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야기가 원하는 것 : 영화 '명량'의 시비

변학수
경북대 교수·독어교육과
영화 ‘명량’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작품성에 대한 시비가 있더니 이젠 역사왜곡 또는 ‘사자 명예훼손’ 문제가 제기돼 이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그림자 또한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는 일단 ‘사자 명예훼손’과 픽션의 한계에 대한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문화학에서는 역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을 ‘기억’이라고 하는데, 역사를 다룬 사극이 역사가 아닌 이상 사실(즉 역사) 왜곡의 문제는 ‘기억’ 왜곡의 문제다. 또한 이 ‘기억’의 문제는 ‘사자’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 소재를 다룸에 있어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담론 학자들은 기억은 객관적 준거와 일반적 집단을 가지고 있는 역사와는 달리 특정한 집단의 산물이라고 본다. 병자호란이나 장희빈 등이 작가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도 ‘기억’의 변화에 의한 사건의 재구성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 창조물의 허구성과 사실·역사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게 되고, 저자는 역사 왜곡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이 이야기는 창작한 것으로 그 사실성은 부정한다’거나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허구적 인물로서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와 같은 설명을 붙이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의 작품들은 허구성이라는 이름으로 명예훼손이나 외설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마광수 교수의 ‘사라’가 처벌을 받고, 서정주 시인의 친일문제와 관련해서 그의 시의 진실성이 의심받는 것도 같은 경우가 된다. 그렇다면 허구적 창작물은 경계를 완전히 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구분된다.



 문학·예술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계몽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를 구분할 때 허구(허위)의식을 기준으로 한다. 가령 신화적 인물과 실제적 인물을 혼동하는 경우가 실제로 역사에서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초기 제국주의가 만든 역사는 모두 이런 왜곡에서 비롯되었고, 우리가 인류의 유산이라고 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기원전 7세기에 진리였지만 17세기에는 허구로 판명되었다.



 1774년에 간행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매우 재미있는 대목을 찾아볼 수 있다. 괴테는 이 소설 속의 도시는 실재하지 않으니 굳이 찾아가지 말라는 각주를 달아준다. 작가 이문열은 1986년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란 소설 서문에서 “먼저 독자들에게 밝힌다. 이 작품의 기록성은 전적으로 부인하겠다. 모든 것을 픽션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라며,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의 동일시는 철저히 사양하겠다”며 독자들의 허구의식의 부재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우리는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사극이 만들어질 때마다 역사왜곡의 시시비비가 있어 왔다. 연산이 공길과 남색을 했다는 실록의 단 한 구절에 근거한 ‘왕의 남자’는 역사를 많이 왜곡한 영화임에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후 고소당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김훈의 『칼의 노래』도 이순신과 배설을 다루고 있지만 그 또한 명예훼손 시비에 걸리지는 않는다. 이것은 마치 ‘원조교제’를 다루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외설시비에 휘말리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누나와 남동생의 근친상간을 다루는데도 시비에 걸리지 않는 이유와 같다.



 그러나 영화 ‘명량’같이 이야기의 플롯이 약하거나 없는 경우, 즉 단순한 스토리를 나열할 경우 예술성은 말할 것도 없고 상징계를 보여준 흔적이 전혀 없으므로 일반적 관객들은 그 영화를 역사와 사실성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과 배설이 내면적 캐릭터로 작동해 상상력을 가동하게 하지만, ‘명량’은 설명하고 설득하고 규정하려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작품 속 인물들이 역사적 좌표를 갖게 한다.



 저 역사적으로 유명한 『마담 보바리』 또한 외설시비에 걸렸다. 그런데 리노 검사의 기소내용은 보바리의 ‘바람기’ 때문이 아니라 플로베르의 문체, 즉 독자로 하여금 ‘바람기를 들게 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작가의 태도나 작품성은 이번 명예훼손 시비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도 문학·예술작품의 자유로운 상상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런 예술성이나 허구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는 이런 시비에 걸릴 수 있음을 작가와 감독은 알아야 한다.



 ‘명량’은 영화의 흥행을 위해(그것이 비록 악의적인 의도라 생각되지는 않지만) 배설이라는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플롯이 마치 조폭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다. 짐작하건대 이것이 배설의 후손을 오히려 화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서구처럼 우리나라에 종손이나 조상숭배 의식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면 영화는 사자 명예훼손과 아무런 관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가 전적으로 허구이며, 그러기에 사자 명예훼손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없다. 역사가 허구를 통해 옷을 입고 허구는 역사라는 실제를 통해 강화된다는 점을 안다면 작가들은 반드시 예술성을 통해 경계 너머의 상징계를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이야기가 원하는 것이고 곧 관객과 독자가 원하는 것이다.



변학수 경북대 교수·독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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