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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가 돼야 꽃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해 가을 수원 자택 서재에서.




[포브스] CEO가 만나고 싶은 명사 30인-①고은
포브스코리아는 9월호에서 CEO 100명에게 만나고 싶은 명사가 누구인지 물었다. 그 결과를 따라 매달 명사를 찾아간다. 첫 주인공은 한국의 시인 고은 선생이다.

9월 15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고은 시인을 평화친선대사로 위촉하는 자리였다. 시인은 “적극적인 평화란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지킬 수 있다”며 “전쟁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전쟁을 중지시킬 수 있는, 전쟁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평화의 의지”라고 말했다. 이날 시인은 원고지에 쓴 유네스코 헌정시를 직접 낭송했다.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고은 시인과 함께 국내외 갈등 지역을 방문해 시로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평화의 마음을 심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든의 나이에 들어선 시인은 산뜻한 하늘색 재킷에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행사가 끝난 후 2시간여 만에 마주앉은 자리에서 “생각보다 키가 크시다”고 첫인사를 건넸다. 시인은 “그렇지도 않은데”라며 무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느 인터뷰에서 “50년 동안 펴낸 책을 쌓으면 내 키 173cm를 넘는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이따금 웃는 모습에서 아이 같은 장난스러움이 느껴졌다(민 사무총장은 그가 격랑의 세월을 거친 것 같지 않게 순박하다고 귀띔했다). 시인은 답이 됐다 싶으면 잠시 말을 멈추고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답하는 중에 끼어들면 가차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등을 뒤로 젖혀 편하게 얘기하다가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자의 코앞까지 얼굴을 내밀거나, 어떤 대목에서는 책상을 탕탕 치기도 했다.



CEO들은 그에게서 삶의 지표를 얻고자 했다. 묻어나는 세월의 내공을 느끼고 싶어했고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했다. 언젠가 읽은 한 편의 시, 그 시가 가슴에 남아 시인을 만나고 싶어했다. 서정적이면서 때로는 무섭게 저항적인 그의 세계를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 것에 반성하며 시인의 말을 가감 없이 전한다.



기업을 유지하는 자체가 감동스러운 결실



한 CEO는 혼탁한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고 했다. 시인은 “삶은 정답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도저히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닌가”라며 운을 뗐다. “삶의 본질에는 대답이 없어요.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조차 어딘가에서 벼락을 만나 폭포로 변하고 또 어딘가에서는 고여 있다 가까스로 흘러가기도 하거든요. 철새는 긴 여로에서 생명을 거의 다 소진하고 죽음 직전에 내려와요. 삶의 과정은 이런 피, 눈물, 땀을 바치지 않고는 없는 거니까. 이 지상에서 많은 사람이 하다 실패한 기업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그 자체가 감동스러운 큰 결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고뇌는 아주 여러 의무 중 하나일 뿐이죠. 그런 걸로 걱정하는 기업가를 난 기업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말을 이었다. “다만 일에 열중하면 개인의 삶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내 앞에 태양이 비치면 내 등짝에는 어둠이 있잖아요. 행복이 끝나면 불행한 것이 아니라 행복은 늘 그 요소로 불행을 갖고, 불행은 반드시 행복이라는 보상을 전제로 해요. 고뇌도 삶의 내용물이지요. 그걸 고민, 방황, 허망함 이런 상태로 어느 한 지점에만 관심이 꽂혀서 인생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시인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조상이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요, 고대 평전에 쓰인 것도 아니라고 했다. 혹여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스스로 감동 받아 ‘자기화’했을 때 살아있는 지혜가 된다고 말이다. “기업인은 어둠 속을 헤쳐가는 자입니다. 등불도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밝혀야 해요. 바람을 방어해가면서 나가야 해요.”



대다수 기업가의 생각은 이익 추구를 향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추울 때 두꺼운 옷을 입는 게 이익을 추구하는 거예요. 순수한 겁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다 나누는 것은 바보야.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밥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게 이기주의예요. 이것을 확대해서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 싶어하는 게 회사라는 거예요. 다만 회사가 이익을 창출해서 독점하려고 하면 탐욕이죠.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순수하고 진지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기업가는 혼자사는 게 아니라 회사 공동체와 함께 살잖아요. 이익이 나면 더 많은 공동체와 연대해 그들도 살 수 있게 하고요. 반드시 모든 이익은 공리주의를 지향하게 돼 있어요. 그렇지 않고 시장의 맹목성에 빠지려고 하면 끊임없이 화살로 쏴서 그런 요소를 없애야 하죠.”



탐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근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요. 개미, 아기, 들짐승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엄마의 몸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삶을 거닐다 죽을 때는 다 놓고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죠. 이걸 자식을 주면 싸워서 서로 원수가 돼요. 이러면 물질이 악의 원소가 되는 거 아니오. 고대부터 변함없이 벌어진 일이에요. 선이 마지막까지 선이어야지요. 출발할 때는 모든 사람이 같아요. 내 부모 굶기지 않으려고 좀더 호화롭게 살기 위해서 여기까지는 좋지만 개인 안에 갇히는 것, 말하자면 ‘해방 없는 이익’ 이건 바보지요. 이익을 해방해서 또 다른 곳에서 이익을 창출하게 만들어야죠. 내 이익이 씨를 뿌려 다른 이익으로 전파하면 얼마나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커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사회는 가진 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한 CEO는 이런 분위기에 약간의 억울함을 표하며 ‘유전유죄(有錢有罪)’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본래 우리 전통사회에서 선비가 최우선이고 다음이 농민, 상업을 최하위에 뒀어요. 아직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정신이 남아있어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이 모든 삶의 우위에 있잖아요.” 시인은 다시 ‘이익의 해방’을 얘기했다. “정당하게 돈을 벌면서 얼마나 분배하느냐가 부호의 도덕성을 결정하는 건데 그런 것 없이 그저 쌓아뒀어요. 그러니 부자를 보는 눈길이 사나워지기 시작한 거죠. 가진 자라서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고 이제까지 원인을 제공해 왔어요. 이걸 지양하면 돈 버는 것처럼 세상을 이롭게 할 일이 어디 있겠어요.”



‘가진 자가 더하다’는 말이 있듯 인간은 탐욕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걸까. “만약 교통법규가 없다고 해보세요. 막 가잖아. 전부 범죄인이야. 법이 있어서 어느 정도 악을 멈추고 있는 상태지. 그런데 돈을 벌고 회사를 경영하는데 자신을 바친 사람은? 더 맹목적이죠.” 시인은 성장의 효율로 이제 이만큼 살게 됐으니 성장지상주의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는 지금 성장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중국이 엄청나게 성장할 거예요. 중국의 소비시장을 가져야 세계경제가 유지돼요. 또 중국의 생산물로 세계가 살고 있어요.”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얘기를 꺼냈다. 시인은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포스카리대학 명예교수로 임명돼 반 년을 그곳에서 보냈다.



“베네치아의 기념품을 중국에서 싼 값에 만들어와요.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탈리아는 중국에 점령당했다, 전통 수공업이 다 망해버렸다고 해요. 우리도 그랬죠. 20년 전 그리스에서 인터뷰할 때 기자가 그래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와서 그리스 조선사업이 다 망했다’고요. 이제는 중국의 조선업계에 넘겨줘야 해요. 이런 거대한 시장과 생산지를 앞에 두고 성장만 추구할 게 아니라 성장의 질적인 조화가 필요해요. 배를 만들어도 아주 고급으로, 호화유람선은 중국보다 우리가 잘 만들죠. 그것도 내년, 내후년이면 중국이 할거예요. 그럼 우린 또 다른 걸 만들어야죠. 일본이 하는 식으로 고급스럽고 고품질화된 것, 특별한 손님만을 상대하는 것을 만들어야지요. 그때는 성장이 아니라 특화예요. 지금의 성장은 ‘소경의 성장’이죠. 국가가 피를 주사해 달리는 거예요.”



연출해 사진 찍는 것에 몸서리를 쳐 도촬(도둑 촬영) 아닌 도촬을 했다.


‘소경의 성장’ 넘어 질적 조화 이뤄야



기업가들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자 그는 “정말 힘들지요”라며 또 다른 화제를 꺼냈다. “우리나라 경제의 비극이 소기업와 중기업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거예요. 선진국은 중소기업의 견실함으로 토대를 만들었어요. 우리는 아직도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고 그러니까 부실이 나오죠. 삼풍백화점, 성수대교가 왜 무너졌겠어요. 고대 피라미드도 끄떡 없이 남아있는데. 성장과 부패는 같이 동행해 왔어요. 인류의 근원적인 관행이에요.”



재계 3, 4세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하려는 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양의 재벌은요. 자기 자식이 열 여섯 살만 되면 내쫓아버려요. 자기 새끼를 죽을 때까지, 거기다 손자 인생까지 보장해주려고 하는 게 한국 재벌들 심리 아니오. 자신의 재산은 자식과는 무관한 거예요.” 그러면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바보로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학위를 만들어주고, 세상을 개척할 의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쓴소리에 ‘친한 기업가가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더니 “기업가라서 친하거나, 기업가라서 친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친한 기업가가 많지 않은 것은 맞다”고 했다. “공공성이 있고 국가에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기업인으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을 말하고 싶어요. 이 사람과 얘기해 보면 이익을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궁극적인 가치를 위해 고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기업가를 만나면 “어디 쓸쓸한 술집에 가서 술 한잔 나누며 서로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리고 싶다”고 웃었다. 유독 자주 인용되고 좋아하는 작품으로 많이 꼽히는 그의 시가 있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거? 정상은 휴식이 없어요. 바로 갔다 내려오는 데야. 하지만 거기까지 한번 가보쇼. 젊으니까. 올라갈 때는 전력을 소비해서 가니까 자기한테 몰입해서 다른 게 안 보이죠. 그전에는 꽃이 말을 걸어도 듣질 못해. 내려올때가 돼야 귀가 열려서 꽃이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죠. 아침에 출항하는 배는 왕성한 성욕을 내뿜듯 ‘부웅’ 하며 가잖아요. 돌아올 때는 고기도 잡았지만 어딘지 축 처져서와요. 아침 출항 때는 오만하고 돌아올 때는 겸허하죠.”



시인은 “내 시를 공감하는 자가 있어 행복하고 이 행복은 내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라며 “내 시는 한 번도 내 세계에 머무른 적이 없고 이미 세상에 퍼뜨린 것”이라고 했다.



‘왜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면 아직도 그 대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 44년을 나는 어설픈 농부였고 새였고/ 울음인가 하였다. 그러는 동안 말이 종교였다./ 시가 오지 않으면 흙을 팠다. 흙 속에 시의 넋이 더러 묻혀 있다가 내 몸에 떨며 들어왔다.(후략) - 시선집 『어느 바람』 중에서



60년 넘게 시를 써온 그에게 물었다. ‘시인이 되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겠느냐’고. 시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허, 정말 나는 시인이 안됐으면 정말, 정말, 정말 뭐가 됐을지 상상도 못하겠어요. 지금쯤은 그냥 흙이 됐을 거야.” 시인은 잠시 두 손을 어루만지더니 “슬프게도 다른 천직이 허용되지 않고 이 천직만을 지켜온 게 참 기이해”라고 했다.



침묵이 흘렀다. ‘너무 시만 쓰며 사신 것 아니냐’고 하자 시인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아니요. 이 일로 술도 충분히 마셨고 공부도, 놀기도 많이 했고 우리 엄마 몸 속에서 나올 때는 상상도 못하던 온 세계를 다 돌아다녔잖아요.”



시인이 되지 않았으면 흙이 됐을 것



고은 시인은 매년 세계 곳곳에 초청 받아 강연과 시 낭송을 한다. 시인이 아닌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고은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아빤데 우리 딸은 내 영향 밖에 있어요. 아버지에 속한 자식을 나도 원치 않아요. 딸에게 나는 ‘최선의 타자’라고 생각해요.” 딸 차령 씨는 프랑스에서 미술을 한다. 아내 이상화 중앙대 명예교수와는 1974년에 만나 9년 뒤 결혼했다. “아내는 뭐 물어볼 것도 없이 나의 종교적 대상이죠. 헛헛.”



하루 종일 시를 쓰고 늦게까지 책을 읽고, 1년에 몇 차례나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면서 틈틈이 술을 마시는 여든이 넘은 시인 고은.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은 뭘까. “내가 구상하는 커다란 작품들을 완성하고 싶어요. 목표가 나를 이끌지 않아요. 현재가 늘 나를 이끌어 가니까. 내 손은 일하기 위해 있는 손이니까. 그리고 지금도 공부를 많이 해요. 나는 학생이에요. 학생.”



디오니소스의 친구, 고은



‘술’/ ‘나 이 세상에 깨닫기 위해 오지 않았다./ 취하기 위해 왔다./ 취한 것만이 살아있다. 오, 내 이웃인 취한 은하수여.’'



고은 시인은 ‘전생연보(前生年譜)’에 ‘먼 옛날 세습 방랑시인으로 출생. 한때 디오니소스의 친구’라고 썼다. 1975년 긴급조치 9호 선포로 칩거당했을 때 1년 동안 소주 1000병을 마셨다고 한다(소설가 이문구의 계산이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접했을 때도 어느 술집에서 뻗어 자다 떨어져 바닥에 놓인 신문을 봤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술을 즐긴다. 지난해 가을 월간중앙과 인터뷰에서 여주의 한 술도가에서 만든 막걸리에 꽂혔다고 하더니 요즘은 막걸리가 부담되고 소주, 와인이 좋단다.



“왜 그렇게 술을 좋아하세요?” 시인이 되물었다. “술 좋아해?” 기자는 솔직하게 “아주 좋아한다”고 답했다. “넌 왜 마시는데?” “…….” 앞에 있는 사람이 고은이란 걸 잠시 잊었다. 이런 바보….





시인 고은은…



1933년 8월 전북 군산시 미룡동 138번지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고은태. 6.25 전쟁 때부터 스스로 은이라 불렀다. 45년 군산 사범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 한하운의 『한하운시초』를 주워 밤새도록 읽으며 문학적 충격을 받았다. 50년 6.25전쟁 중 시를 쓰기 시작했다. 주위의 참상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52년에 승려의 길을 간다. 이후 불교신문을 창간했고 58년 시 ‘폐결핵’이 한국시인협회 기관지인 『현대시』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60년 첫 시집 『피안감성』을 출간했고 2년 후 속세로 돌아왔다. 이듬해 제주도에서 머무르며 다시 투신자살을 생각한다. 이때 허무주의에 빠져 술과 함께 살았다.



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현실에 눈을 떴다. 작품에 허무주의 대신 역사의식을 담기 시작했다. 민주화, 노동운동 등을 하다 여러 번 옥고를 치렀다. 83년 이상화 중앙대 명예교수와 결혼해 경기도 안성에서 살다 지난해 수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86년 「만인보」를 내기 시작해 2010년 총 30권을 완성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타임스 아시아판에서 ‘현존하는 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면 기자들을 피하느라 바쁘다.







글=최은경 포브스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사진=전민규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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