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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가석방'을 '사면'으로 읽다

양선희
논설위원
느닷없이 ‘기업인 사면론’의 애드벌룬이 둥실 떠올랐다. 한데 정부에서 ‘기업인 사면’을 입에 담은 사람은 없었다.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말은 사면이 아니라 가석방이었다. “가석방 요건을 채웠다면 기업인이라고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해선 안 된다”였다. 이에 공감한다며 화답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투자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주요 기업인들이 구속상태에 있으면 투자결정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사면론’으로 증폭된 것이다.



 가석방과 사면은 다르다. 가석방은 형법상 보장된 권리다.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고, 모범적 수형생활을 하는 수인들을 대상으로 심사위원회가 심사한다. 현재로선 기업인 중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 구본상 LIG 부회장 등이 형기 기준을 충족했다. 이재현 CJ 회장, 윤석금 웅진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등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상급심을 기다리는 기업인들은 대상이 아니다.



 반면 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특정 범죄인에 대한 형을 소멸시킬 수 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어도 공소권이 소멸된다. 사면을 하면 현재 복역 중이거나 공소제기된 기업인들이 모두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한데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기업인 범죄 무관용 원칙’을 내세운 터라 사면은 거론될 계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기화로 재계에선 ‘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면’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일각에선 정부가 대선공약을 파기하려고 ‘여론 간보기’를 한다고 비판한다.



 왜 우리는 ‘가석방’이라 말했는데 ‘사면’이라 읽는 것일까? 이런 장면이 너무 낯익어서일 거다. 10년, 20년 동안 우리는 반복 재생된 똑같은 장면을 보아왔다. 이름 높은 대기업 총수들이 경제범죄에 연루되어 기소되고, 재판받고, 그러다 어느 날 일괄 사면되는 일은 수시로 반복됐다.



 사면 논리는 똑같다. 투자 활성화와 고용증대 등 경제적 필요성. 재계의 레퍼토리는 한결같다. “총수의 부재로 경제가 안 돈다.” “너무 엄격한 법의 잣대 때문에 투자가 위축된다.” “경영실패에 배임 등으로 처벌받는데 누가 기업 하겠나.” 사면을 하는 정부의 논리 역시 같다. ‘투자 지장 초래’ ‘해당 기업의 어려움’ ‘경제 활성화 필요성’ 등이다. 최 부총리의 가석방 찬성논리도 과거 논리의 재생이다. 이렇게 정·재계가 ‘경제를 살리자’는 충정을 부르짖으며, 죄를 용서하는 미덕을 실천하는 데 시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유는 뭘까?



 유전무죄(有錢無罪)의 반감, 거기에 사면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증명하지 못한 것도 이유로 보인다. 경제는 수치로 증명된다. 수십 년간 기업인을 그만큼 사면했으면, 실제 사면 후 투자 활성화와 고용 증대 등의 사면효과를 수치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한데 우리는 그런 걸 알지 못하고, 체감하지도 못했다. 또 총수가 없어서 기업이 어렵다는데, 한 예로 SK나 CJ의 지난 분기 실적은 좋은 편이다. 일부 계열사의 실적 저조가 거론되지만 회장이 있었다고 더 나을 거란 보장이 없는 게 사실이다. 최 부총리든 재계든 경제활성화가 사면의 이유라면 먼저 경험적 증거를 대야 한다.



 재계의 사면 요구는 걱정스러운 점도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범죄를 저지르고 벌 대신 선처를 구하는 건 정권에 빚을 지는 행위다. 이런 부채관계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측면은 없을까? 우스운 얘기지만 얼마 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한전 부지를 감정가의 세 배나 주고 사면서 공기업 땅이라 비싸게 사도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에 이런 비합리적 판단의 근원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한때 사면 전력이 있는 정 회장이 공기업 부채로 골머리 앓는 정권에 대한 보은 의식은 없었을까 하는 상상으로 달려갔다. 허황된 얘기다. 그렇더라도 상상력이 여기에 미치는 건 그만큼 우리 정·재계 유착에 대한 의구심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재계가 스스로 정권에 빚을 지지 말아야 사회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을 거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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