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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쫓기는 한국인, 죽음준비가 필요해

흰 국화꽃 대신 분홍 장미로 장식한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의 장례식장 모습. “죽는 건 슬
픈 게 아니니 밝았으면 좋겠다”는 평소 그의 생각대로 조문객들은 탱고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사진 조선일보] 


“죽음을 당한다.”

죽음학을 연구하는 최준식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교수는 한국인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목숨을 빼앗긴다는 얘기가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외면하다 죽음이 찾아오면 두려움에 발버둥치면서 삶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는 현실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죽음에게 삶을 묻다』를 쓴 유호종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도 “막연한 공포감 때문에 평소 죽음에 대해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망치는 사람이 많다”며 “치료 방법이나 유산 등을 둘러싸고 남은 가족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죽음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만 해도 이미 오래 전 불어닥친 슈우카츠(終活) 열풍 덕분인지 죽음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다. 슈우카츠란 말 그대로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으로, 연명 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거나 상속에 관한 내용을 담은 유언장을 쓰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일본의 유언장 작성 비율은 10%대가 넘는다. 미국은 연 수입 7만5000달러 이상 인구 가운데 64%가 유언장을 작성했다는 조사 결과(2005년 갤럽)가 있다.


반면 한국은 이런 문화가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13년 씨티은행 자료에 따르면 ‘유언장이 있다’고 답한 한국인은 응답자의 2%에 그쳤다. 중국·호주·싱가포르 등 아태지역 7개국 평균은 15%였다.

임종 직전의 연명치료에 관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역시 존엄사를 인정한 2009년 김 할머니 판결 이후 늘긴 했으나 여전히 미흡하다. 박미연 창동노인복지센터 관장은 “사전의료의향서는 본인의 편안한 죽음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가족의 고민을 덜어주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홍양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대표도 “건강할 때 미리 써놔야 필요한 순간에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죽음에 임박해서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미리 죽음준비를 하고 여유롭게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60년대 미국에서 미용기술을 배워와 70년대 한국에 단발머리 열풍을 일으킨 헤어디자이너 그레이스 리(1932~2011·이경자)다. 2011년 2월 28일 그의 장례식은 출판기념회나 칠순 잔치 같았다. 하얀 국화꽃 대신 분홍 장미로 장식된 장례식장엔 흥겨운 탱고 음악이 흘렀다. 와인을 가져와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레이스 리의 제자인 이희 헤어디자이너는 “평소 유언이었다”며 “선생님은 50대부터 죽음과 장례식에 대한 얘기를 아주 자연스럽고 즐겁게 했다”고 말했다. 장례식이 우중충하고 궁상스럽고 징징거리는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하얀 국화꽃 대신 분홍 장미를 장식하고 탱고 음악을 틀어달라고 늘 말했다는 것이다. 평소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일 뿐 특별한 것이 아니다’는 소신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희 디자이너는 “꽃 때문인지 장례식은 슬픔에 억눌린 공간이 아니라 그를 추억하는 공간이 됐다”고 기억했다.

한창기
이보다 훨씬 앞서 97년 세상을 뜬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발행인 한창기(1936~97)도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다. 96년 겨울 병이 깊어지자 그는 자신의 장례 절차를 세심하게 챙겼다. 명주로 만장(輓章) 감을 미리 뜨는 것을 비롯해 장례의 모든 절차를 부탁하고, 또 기록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는 죽음을 말하기가 어렵다. 나이 먹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2006년 노원노인종합복지관의 ‘시니어죽음준비학교’ 강의를 맡았던 유경 죽음교육 강사는 “비슷한 내용의 강의여도 전에는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식으로 쓰다 ‘죽음’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자 ‘버르장머리 없다’며 화내는 노인이 적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하지만 20명 정원에 대기자가 140명이 넘을 정도로 관심도 많았다”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편 알고 싶어하는 심리도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안혜리 기자·심영주 기자 hye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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