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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보내며 … 뭐가 두려운가, 그저 자연의 이치인 것을

최근 지인 결혼식에 주례를 선 작가 복거일. 말기 간암 진단 후에도 아무 일 없는듯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김경록 기자]
“죽는 게 아쉽다? 그건 마치 우주의 기본 이치에 시비를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게 더 허망하지 않나요.”



말기 암 복거일에게 죽음을 묻다

말기 암 환자를 앞에 두고 죽음에 대해 물었다. 두렵지 않느냐고, 또 아쉽지 않느냐고. 비록 그가 ‘생명이 끝나는 게 죽음일 뿐, 죽음엔 아무 실체가 없다’며 죽음에 유독 무덤덤하던 작가 복거일(68)이라 해도 죽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이에게 이렇게 대놓고 죽음을 묻기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묻는 이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죽음이 두려워요? 죽음 자체가? 아니면 죽어가는 과정이? 과정이 고통스럽기로 따지자면야 어디 죽음만 그런가요, 남녀 간의 이별은 또 얼마나 힘들어요.”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 삼성동의 한 결혼식장에서 막 주례를 마치고 나온 작가 복거일과의 죽음을 주제로 한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말기 간암 선고를 받은 2년 여 전 얘기부터 꺼냈다. “솔직히 충격적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시 의사가 정보(말기 암)를 전달하는 과정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을 뿐 별로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순간 작가로서 의사를 관찰했어요. 괴로우니 빨리 털어버리려 하는구나. 나를 그 처지(의사)에 대입해놓고 분석을 시작했어요. 암 걸린 환자를 사람으로 보면 얼마나 감정적으로 지칠까, 저 사람 눈엔 내가 그저 또 하나의 케이스로 보이겠지. 마음이 이렇게 바쁘니 어디 충격받을 시간이 있나요. 그래서인지 충격은 좀 나중에 오더라고요.”



그는 막상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자 엉뚱한 생각만 들더라고 했다. 자기 자식은 잘 가르치기 어렵고, 새끼의 새끼나 제대로 가르치려는 욕심이 있었는데 말기암 선고를 받은 날 그게 말짱 도루묵이 됐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더라는 거다. 자식(딸·30)은 너무 늦게 세상에 나왔고, 본인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리곤 잘 알려진 대로 지금까지 암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안식구(※그는 아내를 꼭 이렇게 불렀다) 마음이라도 편하라고 지인이 챙겨준 비타민C와 브라질산 아가리투스 버섯을 마늘과 함께 먹는 게 그가 요즘 자기 몸을 위해 하는 전부다.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이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아쉬울 것 없고,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말이 혹시 다 허세는 아닐까. 하지만 역시 간암으로 1990년대 중반(※연도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세상을 떠난 그의 아버지 얘기를 듣고는, 죽음에 대한 태도가 아버지로부터 학습된 게 아닌가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말기 암 선고를 받고 2년 여 동안 치료를 거부했으며, 마지막 한 달을 자신의 의지대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냈다. 고통을 대단히 잘 참아, 한 번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평생 무신론자였던 소신을 버리고 임종 직전 성공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종교에 의지한다고 함부로 추측했지만 오해였다. “이 나이에 무슨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겠나. 네 여동생 마지막 소원이라는데 죽는 마당에 그것 하나 못 들어주겠나.”



그는 “그 순간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존경했다”고 했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하던 지식인이었지만 광복 후 남로당에 부역한 탓에 미군부대 기지촌에 흘러들어가 음지에서 살아야 했던 그의 아버지는 이런 방식으로 평생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잘난 장남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이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며 “부모 말 안 듣는 게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화장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난 아버지 말 안 듣겠다”며 묘지에 모셨다.



그런데 정작 그는 또 아버지가 부탁했던 것처럼 무덤을 만들지 말고 한강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의사를 가족에게 전해뒀다. 가양대교 근처에 버드나무가 늘어져 사진 찍기 좋은 곳이란다. “안식구랑 같이 산책하는 곳이에요. 풍경이 멋져요. 물새도 많고. 누가 한강 오염된다고 시비 걸던데, 어차피 흘러 내려갈 텐데 오염은 무슨…. 나 죽는다고 진짜 슬퍼할 사람은 없어요. 빈자리는 채워지기 마련이고. 그저 나 죽었을 때 ‘아깝다’ 한마디 들으면 족해요.”





안혜리 기자·심영주 기자 hye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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