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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신] "학생이 원하는 걸 줘라, 그게 교사의 역할"

정일찬 교사가 ‘윤리와 사상’ 시간에 성리학과 양명학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능과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풀면서도 단순 문제풀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철학 사상의 탄생 배경과 역사적 사실 등을 연결해 개념을 확장할 수 있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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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맹자는 모두 덕(德)에 의한 통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맹자는 인의를 해치는 군주의 교체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공자와 다르다.”

지난달 18일 오후 3시 서울 잠실의 정신여고에선 3학년 윤리 수업이 한창이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정일찬 윤리 교사의 수업 중 졸거나 딴짓하는 사람은 35명 가운데 2~3명만 눈에 띄었다. 정교사는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 수업에 집중하는 사람이 2~3명밖에 없었다”고 했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확 달라진 걸까.

정일찬 교사는 맞춤형 수업을 한다. 그러기 위해선 50분 수업을 위해 5~6시간을 준비해야 한다. 사실 준비시간은 초임 교사 시절인 17년 전이나 똑같다. 달라진 건 학생이 필요로 하는 걸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거다. 5~6년 전 정 교사 스스로 지난 교직생활을 돌이켜 본 결과, 자신의 수업은 학생들이 원하는 걸 주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컨대 고3 이라면 ‘입시 맞춤형 수업’을 원할텐데, 그 역시 다른 많은 교사처럼 그저 윤리 교재를 풀어줬을 뿐이다. 제대로 된 입시 맞춤형 수업이라면 학생이 한 문제를 풀더라도 그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더 핵심 개념을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는 “보통 3학년 2학기 수업은 자율학습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학교는 독서실이 아닌 배움의 터전인 만큼 수업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업뿐 아니라 교재도 맞춤형으로 바꿨다. 지금까지 나온 수능과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우선 주제별로 나눈 뒤 각각의 문제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파악했다. 똑같이 불교에 대해 묻는 문제라도 어떤 식으로 변형돼 출제되는지, 또 그 안에 등장하는 개념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런 노력은 얼마나 효과를 봤을까. 정신여고 학생들 사이에서 “정일찬 선생님 수업만 들으면 따로 윤리 학원을 다니거나 인터넷강의(인강)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니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은 셈이다. 3학년 오경은양은 “기본 개념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배경지식까지 쌓을 수 있어 국어 비문학이나 논술까지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잘 가르치는 교사로 소문 났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특히 정신여고에 처음 부임한 1998년부터 5년간은 암흑기였다. 칸트를 가르치기 전 철학개론·철학사·철학총론 등을 전부 읽고 칸트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연구한 후 교실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힘 들여 10시간 넘게 수업 준비를 해도 듣지를 않으니 아무 소용이 없었다. 2~3명을 제외하고는 엎드려 자거나 딴짓하는 학생을 보며 좌절감도 느꼈다.

그는 2003년 무렵 전략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수업 외에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때마침 대입에 수시전형이 생겨 일선 교사의 진학지도 역할이 커질 때였다. 그는 엑셀을 활용해 학생들의 3년간 성적 변화 추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 만들었고,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매일 밤 10~11시까지 남아 작업했다. 이런 노력 덕인지 많은 학생이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정 교사에겐 또 다른 회의감이 밀려 들었다. 자신이 해온 진학 지도가 진짜 학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학교 명예를 위해 한 명이라도 더 상위권 대학에 합격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다시 ‘수업’으로 인정받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업을 정말 잘 가르치는, 기본에 충실한 교사가 되기로 했다는 얘기다. 정신여고는 교육열 높은 송파구에 있어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이 많았다. 밤 늦게까지 학원 다니고, 학교에서는 엎드려 자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그는 “학원이나 인강에서 들을 수 없는, 내 수업에서만 얻어 갈 수 있는 정보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을 가르치기에 앞서 먼저 공부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공자를 가르칠 때면 교과서에 있는 대로 ‘공자는 덕(德)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다’는 단편적 내용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 공자의 출생과 성장까지 모든 걸 통합적으로 알려줬다. 이를 위해 틈만 나면 역사·철학책을 읽었고, 문화·과학·역사·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다큐멘터리를 찾아 봤다. 이렇게 모아 놓은 자료만 100기가바이트가 넘는다.

그는 사교육 도움도 받았다.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인강 사회탐구 강사의 강의를 찾아보며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수업하는지 비교·분석했다. 그는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 아니냐”며 “공교육 교사라도 사교육을 알아야 ‘사교육 플러스 알파’가 되는 수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노력한다고 학생들이 곧바로 그의 수업방식을 따르는 건 아니었다. 학생들이 귀 기울여 듣게 만드는 전략이 필요했다. 그는 “수업에 집중하라”거나 “조용히 하라”고 혼내거나 다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수업 듣기 싫다”고 하면 한 달 동안 수업을 안 했다. 학생을 온전히 이해하는 교사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학생 마음을 여는 게 수업을 듣게 하는 것보다 먼저였던 거다. 정 교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교사가 수업해도 학생이 듣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한 달 정도 놀면 신기하게 아이들 입에서 먼저 ‘수업 좀 하자’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때와 원하는 걸 할 때 아이들이 발휘하는 집중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평소 같으면 3시간 동안 가르쳐야 하는 내용도 한 시간 만에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수업 분위기가 좋았다.

그의 노력은 성적 상승으로 이어졌다. 2014학년도 수능 ‘생활과 윤리’ 과목 에서 1등급을 받은 사람은 20명으로 9월 모의고사 때보다 11명이 늘었다. 중요한 건 이중 43.8%는 국영수 평균이 4등급 이하인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그는 “최상위권 학생보다 하위권 학생 중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사람이 많아 더 뿌듯했다”며 “더 노력해 대한민국 최고의 윤리 수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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