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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떠난 아빠 삶의 큰 상처였지만 창작의 샘으로 작용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1932~1963)는 작품보다도 그녀의 삶과 죽음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녀의 삶이 20세기 여성 혹은 여성 예술가의 모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살한 후 18년이 지나 남편이자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에 의해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1981)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 작가 사후에 퓰리처상이 수여된 경우는 실비아 플라스가 유일하다. 죽음 이후에도 실비아 플라스라는 현상은 거부할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이상용의 ‘작가의 탄생’ <2> 실비아 플라스

그러나 그녀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만 이름을 알렸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녀의 대표작 ‘아빠’는 애송 되지는 않을지라도 지금까지도 자주 언급되는 시다.

아빠, 나는 당신을 죽여야 했지.
당신은 내가 그러기 전에 죽었지.
대리석처럼 무겁고, 신으로 가득 찬 자루,
샌프란시스코의 물개처럼 크고
잿빛 발가락 하나가 달린 무시무시한 조각상

‘아빠’는 생물학적 아버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6연에서 “나는 모든 독일인은 아빠라고 생각했지”처럼, 그것은 대량학살을 자행한 나치즘의 아버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아빠’의 역사적인 의미를 상세히 묻고 따지지 않더라도 젊은 시절에 읽은 시의 마지막 부분은 기묘한 쾌감을 주었다.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
그들은 춤추면서 당신을 짓밟지.
그들은 그것이 당신이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지.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이 시가 쓰인 것은 1962년 10월 12일이다. 실비아가 자살한 해가 63년 2월 11일이니 ‘아빠’는 그녀가 절망에 빠져 있던 시기에 쓰인 시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사회학적 역사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수많은 ‘아빠들’과의 대결 구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빠를 향한 분노는 거역할 수 없는 힘들에 대한 항변을 의미했다. 하지만 아빠의 죽음은 행복한 결과로 끝날 수 없다. 아빠의 몰락은 곧 나의 몰락일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다 끝났어.”

아빠의 죽음에 충격 … 아홉살에 첫 자살 시도
실비아 플라스의 실제 아버지 오토 플라스는 보스턴대 생물학 교수이자 땅벌(범블비)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당뇨병을 앓았던 아버지는 합병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실비아는 그 모습을 목격했고, 사랑하는 아빠의 이른 죽음은 오래도록 그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주요한 상처이자 모티브가 된다. 이듬해 실비아는 생애 첫 번째 자살을 시도한다. 아홉 살의 나이였다.

실비아는 이후의 삶에서도 수많은 아빠들을 향한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그 절망감을 안겨준 가장 유명한 아빠는 남편 테드 휴즈다.

두 사람의 시작은 런던의 케임브리지에서였다. 미국의 스미스 여자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장학금에 대한 신화는 유명하다)을 받게 된 실비아는 런던으로 건너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공부를 이어 간다. 두 사람은 56년 1월의 한 파티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같은 해 6월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크리스틴 제프스 감독의 영화 ‘실비아’(2003)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첫 장면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캠퍼스다.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에 막 도착한 실비아는 문예 비평지를 판매하는 친구를 쫓아간다. 이 책자에는 자신의 시에 대한 평이 실려 있다. 그리고 문예지에는 또 다른 시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중 테드 휴즈의 시는 압도적이었다. 두 사람은 파티장에서 만나 첫 입맞춤을 하고, 결혼한다.

처음에 실비아의 계획은 단순했다. 테드가 시를 쓰고, 자신은 생계를 떠맡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았다. 남편은 첫 시집부터 수상의 영예를 안으며 명성을 얻은 것과는 달리 틈틈이 써내려간 자신의 시에 대해서는 세간의 관심이 붙지 않았다. 그것은 불안을 증폭시켰다.

영화는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의 생을 따라가면서, 감출 수 없는 시 쓰기의 열정과 좌절 그리고 결혼 생활의 무게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던 20세기 중반을 살아간 ‘여인의 초상’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실비아 플라스 역은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기네스 펠트로가, 테드 휴즈 역은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맡았다.

주목 받고 싶었고 훌륭한 예술가를 꿈꾸던 여성
아이를 낳고 현실의 무게에 고통을 느끼던 영국 시절. 두 사람을 갈라놓은 현실적인 이유는 테드 휴즈의 본격적인 바람기 때문이다. 62년 5월 이웃에 사는 위빌 부부가 집을 방문하여 친구로 지내게 되는데, 실비아는 같은 해 7월 남편이 아씨아 위빌과 사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9월부터 별거에 들어간다.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 시를 쓰고,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밤에는 자신의 삶을 저주한다. 영화의 엔딩 타이틀에 등장하는 마지막 자막은 이러하다.

1963년 2월 11일 실비아 플라스는 자살했다. 부엌에서 가스를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1년 후 테드 휴즈는 그녀의 유고 시집을 출간했다. 유고시집 『에이리얼』은 20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실비아를 독자 세대의 우상으로 만들어 줬다. 1998년 테드 휴즈는 30년간의 침묵을 깨고 시집 『생일 편지』를 출간하여 실비아를 다뤘다. 이 책은 그들의 관계를 담은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몇 주 후 암으로 사망했다.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였다. 가스 오븐에 머리를 집어넣은 그녀의 자살은 테드 휴즈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실비아의 신화는 현대 여성의 신화로 높여졌다. 한평생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던 실비아는 복잡한 인물이다. 자신의 예술적 야심을 펼치고도 싶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도 싶었고, 아름답고 주목받는 여성이고도 싶었다.

그러나, 끝내 세상의 아무것도 소유되지 않았다. 좌절된 이의 시어는 영혼의 편린으로 부서져 우리를 향해 날아든다.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이상용 영화평론가. KBS ‘즐거운 책 읽기’ 등에서 방송 활동을, CGV무비꼴라쥬에서 ‘씨네샹떼’ 강의를 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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