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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움켜쥔 한쪽 손 펴서 예술을 잡다

저자: 하정웅·권현정 출판사: 메디치 가격: 1만4500원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사람이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작은 부자도 거저 되는 것은 아니다.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75)씨도 그랬다. 그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힘들었던 고달픈 삶을 스스로 딛고 일어섰고, ‘자이니치(在日)’이라는 차별도 기어이 이겨냈다.

『날마다 한 걸음』

천운도 따랐다. 혼수품을 사기당해 얼결에 떠맡게 된 가전제품 판매점이 때마침 불어닥친 컬러TV 붐과 도쿄 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돈을 끝없이 벌어주는 ‘화수분’이 됐다. 뿐만 아니다. 건강이 안 좋아져 부동산 임대업을 하기 위해 땅을 사고 건물을 지었더니 이번에는 부동산 특수로 땅값이 급등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에 대한 해설서는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회고다. 그가 돈 대신 ‘다른 것’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된 것은 한 스님을 만나면서부터다. 그 스님이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이쪽 손 참 좋은 손이요…저쪽 손도 훌륭한 손이고. 두 손 모두 보물을 가득 쥐고 있네요. …그런데, 한쪽 손을 펴세요.”
“…네?”
“한쪽 손을 펴세요. 그래야 당신이 삽니다. 만약 넘어져도 한 손을 펴고 있으면 편 손으로 땅을 짚을 수 있습니다. 사고를 당해도 죽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손을 펴고 있으면 언제든 더 좋은 것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손을 펴서 그림을 쥐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던 그다. 아키타공고 시절에는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도쿄 우에노국립박물관에서 일본 최초로 열린 고흐 전시를 혼자 보러갔을 정도다. 재주도 출중했다. 선생님이 몰래 출품한 그의 그림은 아키타현 미전에서 프로 화가들을 물리치고 입상했다. 고교생이 이 대회에서 입상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막 가전 대리점을 시작한 스물다섯의 그가 처음 산 작품은 재일한국인 1세 화가 전화황의 ‘미륵보살’이었다. 이 작품에서 시작된 예술과의 만남은 재일한국인 화가들과의 인연으로, 다시 전세계작가들로 끝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올해로 50년이 됐다.

그를 설명할 때 흔히 쓰는 말이 ‘50년간 수집한 미술품 1만 점을 고국에 모두 기증한 사람’이다. 1993년부터 2012년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만 다섯 차례에 걸쳐 2300여 점을 기증했다. 그중에는 이제 세계적인 거장으로 꼽히며 작품 하나가 억대를 호가하는 이우환의 작품도 적지 않다. 국립고궁박물관, 포항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영암군립하미술관 등에도 기증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가 대단한 미술품 컬렉터를 넘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들을 위해 수십 년간 쫓아다녔고, 시각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뛰었다는 것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스스로는 “내 인생에서 얻은 가장 명예로운 별칭은 ‘시각장애인들의 아버지’라고 불린 것”이라고 수줍게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인간의 겸손하지만 위대한 진정성의 기록이다. 그는 출간 간담회에서 자신을 “작은 부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결코 작지 않았다.


글 정형모 기자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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