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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행정장관 선거 싸고 확산되는 홍콩의 반중국 시위

18.7%→2.96%.



22일부터 대학생 1만3000명 동맹 휴업…"전인대는 우리 대표하지 않는다" 주장
‘센트럴 점령하라’ 반중 지식인도 참여

1996년과 2013년 중국의 명목 GDP(국내총생산)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주권을 돌려받을 당시만해도 중국에게 홍콩은 절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홍콩은 중국에 자본과 노하우를 전수하던 ‘갑’에서 중국으로부터 비즈니스 기회를 얻기 원하는 ‘을’로 바뀌었다. 지난달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홍콩 반환 20년 만에 시행되는 오는 2017년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 직접선거에서 반중(反中) 인사를 배제시키기로 결정했다. 홍콩 대학생들은 이 안이 고도의 자치권 보장을 명시한 홍콩기본법에 위배된다며 지난주 대규모 동맹휴업을 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2일 홍콩 중문대학 본부 앞 ‘백만대도(百萬大道)’ 광장에는 홍콩 대학 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HKFS) 소속 24개 대학 1만3000여 명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식민주의 반대(抗殖), 예비선별 반대, 홍콩 자주 노선 지지”를 외치며 닷새 동안 휴업에 돌입했다. 이들은 "베이징 정부가 홍콩 행정장관 후보로 친중국 인사를 내세워 자치권을 침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전인대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친 학생들은 이튿날 흰색 상의를 입고 노란 끈으로 손을 묶은 채 정부청사가 위치한 타마르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동맹휴업을 이어갔다. 교수들은 휴업 참가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공원에서 무료 시민강의를 열었다. 홍콩 정부는 친중 단체의 집회 사전 신청과 규정을 내세워, 시위대가 3일 이상 공원을 사용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 이에 학생 4000여 명은 25일 밤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관저로 몰려가 노숙 시위를 이어갔다. 금요일인 26일에는 중학생 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소속 학생 3000여 명이 정부청사 인근에 모여 일일 휴업에 동참했다.



홍콩의 민주 개혁세력도 시위 동참

홍콩 범민주파도 학생 휴업을 지지하고 나섰다. 타이유팅(戴耀廷) 홍콩대 법학과 부교수는 23일 페이스북에 “남들이 국가의 생일(중국 건국일 10월 1일)을 경축할 때 우리는 홍콩의 민주주의를 쟁취할 성대한 잔치를 벌이자”는 글을 올렸다. 타이 교수는 2011년 미국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착안해 지난해 홍콩의 금융 중심지인 센트럴을 장악하자며 결성된 ‘센트럴을 점령하라’ 조직의 공동 설립자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시위 주도자들의 국외 탈출을 도왔던 추이우밍(朱耀明) 목사 역시 10월 1일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센트럴 차터로드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며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학생 시위대도 국경절 센트럴 점령 시위에 동참을 예고하면서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반격도 만만찮다. 지난 8월 17일 ‘보통선거 보호·센트럴 점령 반대 대연맹’ 소속 19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가두시위가 그 시작이었다. 반(反)중파의 시위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학생 휴업에 대해 미국 개입설을 흘리고 있다. 친중국계 신문 문회보는 25일 3년전 학민사조를 결성한 웡지풍(黃之鋒·18)이 주홍콩 미영사관의 돈을 받아 가족과 함께 마카오로 호화 여행을 다녀왔다고 폭로했다. 신문은 "미국이 향후 ‘색깔혁명’(공산주의 붕괴후 동구와 중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 쟁취 혁명)을 주도할 정치 스타로 키우기 위해 관리한 인물이 휴업을 선동하고 있다"는 주장했다.



이에 홍콩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중문대가 이달 중순 광둥어를 사용하는 주민 1006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센트럴 점령하라’를 매우 지지한다는 의견이 14.2%인 반면, 매우 반대한다는 33.8%를 차지했다.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신임도는 중간 정도의 결과가 나왔다. ‘완전히 지지하지 않는다’를 0점, ‘완전히 지지한다’를 10점으로 한 질문에 대한 답은 평균 4.05였다. 반중여론이 중간을 조금 넘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홍콩 시민들의 정치성향은 범민주파(39.5%), 중간파(24.1%), 무당파(21.5%), 친중파(9.1%) 순이었다. ‘전인대의 결정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은 53.7%, ‘찬성’ 답변은 29.3%가 나왔다.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는 답변도 21.2%를 차지했다.



일각에선 민주화 넘어서 독립 요구도

민주화가 독립 요구로 번지는 데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영국 스코틀랜드가 독립투표 실시를 결정하자 홍콩대 학생회지 ‘학원(學苑)’ 9월호는 ‘홍콩민주독립’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지난 7월 1일 홍콩반환 17주년을 기념한 민주화 시위에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 국기였던 용사기(龍獅旗)를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까지 등장했다. 추리번(邱立本) 홍콩 아주주간 총편집장은 “과거 대만이 겪었던 홍역을 홍콩이 앓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공산당 반대가 중국 반대로 이어지는 ‘탈중국화’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대만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본의 점령이 대만의 현대화를 가져왔고, 국민당에 의한 광복이 대만인에게 불행이었다는 주장까지 나왔던 ‘괴현상’이 홍콩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홍콩 독립 주장은 시민들의 반발과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반응도 있다.



중국은 대(對)홍콩정책을 주도 면밀하게 준비해왔다. 영국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총독이 지배하던 식민지 시절 홍콩 시민들은 자유로웠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홍콩인들은 “정치는 나의 소관이 아니다”는 타성에 젖어 자유만을 만끽했다. 하지만 89년 천안문 사건이 이를 바꿨다. 중국 정부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영국은 보수당 의장을 역임한 보수파 크리스 패튼을 마지막 홍콩 총독에 임명했다. 95년 9월 실시된 입법국의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하자 중국은 선전(深?)에서 따로 입법국을 구성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에 익숙한 공산정권이 정치적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모두 수용하겠다는 중국의 정책)’를 갑작스레 받아들이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시진핑, "홍콩에 대한 중국 정책 불변"

그 동안 홍콩의 국회 격인 입법국에서의 간접선거로 세 명의 행정장관(임기 5년)을 선출했던 중국은 차근차근 2017년 첫 직선제 방안을 마련했다. 2012년 홍콩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친중국적 정체성 강화를 내세운 국민교육과정을 도입했다. 지난 6월 10일에는 ‘일국양제 백서’를 발표해 “애국인사가 주체가 되는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을 견지한다”고 못박았다. ‘일국(하나의 중국)’이 ‘양제(두 개의 체제)’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했다. 중앙정부는 외교권·국방권만 갖지만 홍콩의 입법기구에서 제정된 법이라 할지라도 전인대가 동의하지 않으면 무효라는 규정이 홍콩기본법에 명시되어 있음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1200명의 추천위원회가 민주적 절차로 2~3명의 행정장관 후보를 선출하며 각 후보는 추천위원회 과반수의 찬성을 거쳐야 한다는 8월말 전인대의 결정은 예정된 다음 수순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추천위원회가 이 제도가 실질적으로 민주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인사의 행정장관 임명을 막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의 이 같은 조치의 배경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자리잡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21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성립 65주년 기념식에서 “민주주의는 장식품이 아니다. 밖에서 가져다 진열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 풀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선거 투표권이 아니라 일상의 참정권으로 정의해야 한다“며 “전체 사회가 원하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22일에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둥젠화(董建華) 초대 행정장관과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 그룹 회장 등 중국 공상계 지도자 40명을 만나 “홍콩에 대한 중앙정부의 기본 방침과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 주석은 이날 “행정장관의 인선은 중앙의 신임과 중국을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하는 인사가 필수 요인”이라며 “보통선거는 균형과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전인대 선거안은 후보자 수를 당선자보다 많은 상태에서 치르는 중국식 차액선거의 변형이다. 문흥호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은 “후보자와 당선자 수를 동수로 하는 등액선거가 일반적이었던 중국에서 차액선거가 도입된 것을 민주화를 의미하지만, 폭넓게 자유를 누리던 홍콩인들은 정치 퇴보로 여기고 있다”며 “중국으로서는 전인대 안이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느긋하다. 중국의 협상 특기인 ‘시간은 내 편’ 전략을 구사 중이다. 데이비드 램턴 미국 존스홉킨스대 중국연구소장은 올해 초 펴낸 저서『지도자를 따라서』에서 ‘일국양제’를 중국식 협상술이라고 풀이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상대와 협상할 때 기본 원칙, 정책, 목적, 제안 등을 내놓는다. 대만·홍콩 문제에 있어 ‘하나의 중국’은 원칙이다. 원칙을 건드리면 협상은 파탄이다. 평화 통일은 목적이다. 이에 따르면 ‘일국양제’는 원칙도 정책도 아니다. 단지 제안에 불과하다. 협상이 가능한 대상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홍콩 범민주파가 독립을 언급하며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건드릴 경우 중국은 강경책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인주 홍콩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홍콩의 정치인은 홍콩시민은 물론 중앙정부(중국), 글로벌 커뮤니티 등를 상대로 한 3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며 홍콩 정치의 어려움을 지적한다. 하지만 투명한 법치제도, 거대 중국을 배후에 둔 지리적 잇점, 우수한 인적자원 등은 홍콩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요인이다.



사회 불안정으로 홍콩 경제 추락 우려도

변수 중 하나는 경제다. 정세가 불안해지면 아시아의 금융 허브 중 하나인 홍콩 경제의 불확실성도 커진다. 이럴 경우 홍콩과 중국 모두가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안정을 어떻게 조화롭게 추구하느냐에 따라 향후 홍콩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현재 중국과 홍콩의 경제협력 강화방안도 적극 시행되고 있다. 특히 다음달 13일부터는 상하이와 홍콩거래소 사이의 교차 매매를 허용하는 ‘후강퉁(?港通)’이 시행된다. 위안화 세계화의 전진기지로 홍콩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의 확대 조치다. 광저우(廣州)·홍콩·마카오를 묶는 주장(珠江)삼각주 일체화 전략도 진행 중이다. 시진핑 이후 총서기직을 노리는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당서기가 주도하고 있다. 그의 전략은 이를 성공시켜 포스트 시진핑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추리번 총편집장은 “홍콩 민주화 세력은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개혁파와 힘을 모아 중국의 민주화에 자극을 줘야 한다. ‘일국양제’를 ‘일국양제(一國良制·좋은 체제로 다스려지는 한 나라)’로 바꿔 14억 중국인 모두가 동일한 민주·자유·법치라는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콩의 권위지인 명보는 최근 사설에서 “홍콩은 사회적 컨센서스를 모아 경제를 재건해 홍콩의 가치를 높여야만 다음 단계에서 민주화 진전을 일궈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굴기(?起)하는 중국에 압력에도 불구 생존하려면 자신의 협상 실력을 높이는 길 뿐이란 얘기다.



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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