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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은퇴하고 싶다" 노장들의 마지막 경기

6.25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남긴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명언이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나왔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역전의 용사들이 인천 아시안게임을 빛내고 있다. 선수로서 황혼기를 맞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노장 선수들의 눈물과 땀 가득한 사연들을 모았다.




한국 복싱 흥행 위해 다시 글러브 낀 한순철
마지막 주자로 금메달 굳힌 배트민턴 이현일
일본 카바디 대표팀 최고령 선수는 46세 노장

돌아온 영웅들의 아름다운 퇴장



23일 인천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사이클 남자 옴니엄 경기. 조호성(40·서울시청)은 여섯 종목 점수를 합치는 옴니엄에서 5번째 경기까지 마친 뒤 중간 합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 40㎞ 포인트 레이스에서 하시모토 에이야(21·일본)에게 역전을 허용해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노련한 플레이로 꼼꼼하게 점수를 관리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힘과 집중 견제는 어쩔 수 없었다.



조호성은 한국 사이클의 대들보였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부터 5개의 금메달을 땄다. 아시아에서 당할 선수가 없었던 그는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힘과 순발력이 뛰어난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 거둔 엄청난 성과였다. 2005년 경륜으로 전향했던 그는 한 해 2억이 넘는 상금을 받았지만 2009년 다시 아마추어로 돌아왔다. 마지막 남은 올림픽 메달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조호성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11위에 머물렀지만 현역 생활을 2년 연장했다. 인천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끝내 금메달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경기를 마친 조호성은 벨로드롬을 돌며 팬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내와 두 아이를 안은 조호성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조호성은 “만감이 교차했다. 27년 선수생활을 정리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트랙을 돌았다”고 말했다.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조호성의 이름을 외쳤다.



배드민턴 남자 대표팀은 23일 단제전 결승에서 3-2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선수들은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마지막 단식 주자로 나선 이현일(34·MG새마을금고)을 얼싸 안았다. 이현일은 중국의 신예 가오후안(24)을 물리치고 5시간이 넘는 혈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현일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4위)한 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소속팀 경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정상 복귀를 위해 돌아와달라는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대표팀 훈련에는 합류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감각을 익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승리를 따냈다. 이득춘 대표팀 감독은 “나이가 많은데도 이현일이 대표팀에 복귀해서 제 몫을 다해줬다. 고맙다”고 말했다.



경기 뒤 이현일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그는 “2006년 도하 대회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중국에 연달아 졌는데 12년만에 금메달을 따 기쁘다. 2002년 부산 대회 때 형들이 잘 이끌어줘 금메달을 땄다. 나도 후배들을 돕고 싶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한국 복싱의 희망 한순철(30·서울시청)은 삼세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한다. 한순철은 지난 2012 런던올림픽 남자 60㎏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병역을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그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아내 임연아(24)씨에게 멋진 프러포즈도 했다. 가장 빛났을 때 은퇴도 결심했다. 178㎝의 큰 키라 더 이상 체중 감량을 이겨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아예 운동을 쉬었던 그는 국가대표선발전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글러브를 꼈다.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은 2회 연속 아시안게임 노골드에 머무른 한국 복싱의 중흥을 위해 다시 뛰어달라고 했고, 이를 받아들였다. 한순철은 2차 선발전과 최종 선발전에서 열 살 가까이 어린 후배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순철 자신에게도 아시안게임은 의미있는 도전이다. 그는 도하에서 은메달, 광저우에서 동메달에 머물렀다. 아웃복싱을 주로 구사해던 근 공격적인 선수에게 유리한 규정에 적응하기 위해 파워 복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순철은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단체 종목 이끄는 고참들



김성근(72) 전 고양원더스 감독은 베테랑을 중용한다. “베테랑의 역할은 고비 때 빛을 발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단체 종목에서는 고참들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야구 대표팀이 대표적인 예다. 대표팀은 병역을 마치지 않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됐다.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임창용(38·삼성)에게 뒷문을 맡겼다. 올해 미국에서 돌아온 임창용은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 경기 경험이 풍부하다.



그의 리더십은 지시를 일일이 내리는 '장군'보다는 몸으로 움직이는 '형님'같은 스타일이다. 봉중근(34·LG)은 “창용이 형이 구심점이 되어준다. 사실 나이 차가 많아서 후배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는데 생활적인 측면에서 편하게 지내도록 신경써주고 있다”고 전했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대표팀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당시 덴마크와 결승에서 승부던지기까지 한 뒤 졌던 대표팀 멤버 중 지금까지 뛰고 있는 사람은 딱 한 명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여자 선수단 주장을 맡은 우선희(36·삼척시청)다. 4번째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우선희는 골키퍼 송미영(39)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그러나 돌파력과 점프력은 여전히 20대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다.



우선희는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 회견에서 4년 전을 떠올렸다. 한국은 광저우 대회 준결승에서 일본에 28-29로 져 아시안게임 6연속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우선희는“광저우 대회에서는 당연히 금메달이라고 생각했는데 4강에서 패한 뒤 아무 생각도 안났다. 이번에는 꼭 이기겠다”고 했다.



농구 대표팀 김주성(35·동부)도 태극마크를 반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 때인 1998년 국가대표가 된 김주성은 5회 연속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뒤 더 이상 대표팀에 뽑히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던 그였지만 유재학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김주성은 2002년 부산 대회에서 일어난 기적을 재현하고 싶어한다. 당시 김주성은 미국프로농구(NBA) 출신 2m29㎝의 센터 야오밍(34)과도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김주성은 훈련이 끝날 때마다 양 무릎과 발목에 얼음 주머니를 차야 하지만 여전히 투지가 넘친다. 그는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목표는 당연히 제일 높은 시상대에 오르는 것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뛸 때마다 최선을 다해 상대를 이겨야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마지막 힘을 다 쏟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여자 배구팀 세터 이효희(34·도로공사)도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한다. 그는 전성기를 누려야 할 20대 시절에는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간혹 뽑히더라도 주로 벤치를 지켰다. 그러나 지난해 프로배구 MVP에 오르는 등 30대가 된 뒤 절정의 기량을 뽐냈고, 당당히 대표팀 주전 자리도 꿰찼다. 김연경(26·페네르바체)과 양효진(25·현대건설) 등 공격수들에게 볼을 배급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이효희는 “이렇게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뛸 줄은 몰랐다. 언제 또 달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김)연경이가 주장 역할을 잘 하고, 선수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잘 한다. 나는 선수들이 편하게 경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아시아의 철인들



“지금 뛴 선수는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살입니다.” 체조 여자 도마 경기에 나선 옥사나 추소비티나(39·우즈베키스탄)의 연기가 끝난 뒤 관중들은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박수를 보냈다.



추소비티나는 1992년 소련 소속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는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참가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독일 국기를 달고 출전했다. 림프종 혈액암을 앓는 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자신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독일에서 훈련을 하면서 내린 결정이다.



올림픽 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추소비티나는 다시 매트 위에 섰다. 진짜 조국인 우즈베키스탄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하고 싶어서였다. 24일 열린 도마 종목에서 홍은정(북한)에 이어 은메달을 따낸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2002년 부산 대회 때보다 실력이 더 좋아졌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색 스포츠인 카바디에서는 일본 팀이 화제다.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카바디는 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가 혼합된 인도 전통 스포츠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카바디는 종목 특성상 젊은 선수들이 유리하다. 강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등은 20대 선수들로 주축으로 팀을 꾸렸다. 그러나 일본은 평균 연령 33세의 선수들로 대표팀으로 꾸렸다. 이 종목 최고령 선수 츠즈키 아츠코는 무려 46살이다. 38살의 승려로 주장을 맡고 있는 이토 고케이는 “카바디 선수와 승려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종교는 내 영혼을 이끌고, 카바디는 내 몸을 강하게 만든다. 둘 다 인도에서 유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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