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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약속 지키려 '웰다잉' 전도사 나선 원로 언론인 최철주

웰빙(well-being)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넘치는 사회에서 내놓고 얘기하기도 꺼리는 웰다잉(well-dying)을 천착하는 이가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논설고문을 지낸 원로 언론인 최철주(72) 씨다. 현재는 호스피스와 웰다잉 강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라 웰빙 안에 웰다잉이 존재한다”며 “몇 년 전 딸과 아내를 잇달아 암으로 잃은 것을 계기로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웰빙과 웰다잉은 반대 개념 아닌 삶의 한 묶음
딸부인 잇달아 잃고 웰다잉에 관심 해외 호스피스 방문, 말기 환자 취재
"평온하게 죽음 받아들이는 게 나아 남은 시간 중 마무리할 일 끝내고
해보고 싶었던 일 할 수 있어야"

2004년 자궁암 말기이던 딸은 수술을 거부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는 것도 완강히 거부해 가족들을 자주 울렸다. 딸은 메모지에 “더 치료할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에 가는 것은 지옥으로 가는 고통이나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당시 32세이던 딸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기를 기다리는 평범한 주부였다. 이런 딸이 너무 일찍 죽음을 맞게 된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딸은 아빠에게 호스피스 아카데미 교육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가 6개월 과정인 호스피스 교육을 받던 중 딸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에도 그는 호스피스 교육에 참석했다. 죽음 교육을 잘 받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집사람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했고, 그게 독이 됐다. 딸이 숨진 지 4년 뒤 아내도 암에 걸려, 모녀 관계는 참 특별하다고 느꼈다.”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부인은 항암제 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센터를 나와 8개월 간 집에서 머물다 임종했다.



웰다잉 강사 교육에 50대 여성 몰려



그는 요즘 말기 환자들이 편안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웰다잉 강사로 활동 중이다. 웰다잉 강사 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보통 10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인데 그는 이 중 한 강좌를 맡는다. 수강생은 80명 정도. 큰일을 치른 뒤 삶에 대한 회의를 느낀 여성 수강생이 많단다. 50대 이후 여성이 수강생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의 부인은 웰다잉 전도사가 되려는 남편과 함께 다른 나라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했다. 투병 중에도 남편이 웰다잉 강사로 나가는 일을 적극 권하기도 했다가 어느 때는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병이 심해질수록 감정의 기복이 커졌다.



웰다잉 강사에게도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답을 구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함께 미국·일본 등의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하고 죽음을 앞둔 30여명의 말기 환자를 만났다. 현역에서 은퇴한 원로기자가 다시 취재수첩을 들고 '좋은 죽음'과 그렇지 못한 죽음의 차이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 결과물이 2008년 출간된 『해피엔딩-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란 책이다.



부인이 딸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도 미국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많은 환자를 보고 나서였다. 그 후 부인은 “딸이 편안하게 갔다. 그것도 제 복이지”라고 자주 중얼거렸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그의 취재에 순순히 응해줬을까.

“한국에선 힘들었다. 열에 여덟, 아홉 사람은 자신의 말년을 남에게 드러내길 꺼렸다. 기자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어 저널리스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말기 환자들은 달랐다.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담소하고 죽음을 평화로운 상태에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질문에도 잘 답변해줬다.”



연명 치료 거부한 최인호 작가



그는 웰다잉을 실천한 저명인사로 고(故) 최종현 SK 회장을 먼저 꼽았다.



“죽음을 앞둔 최 회장을 직접 만난 건 아니다. 현역 기자 시절부터 최 회장의 죽음에 대해선 관심이 많았다. 돈·명예·권력을 모두 가졌던 최 회장이 대학병원에서 치료 받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 6개월 동안 통증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이유가 궁금해서였다. 당시 나는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이었는데 일본 기자들이 오히려 최 회장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게 취재했다. 나중에 최 회장의 창업 동반자였던 SKT 손길승 명예회장으로부터 죽음의 과정을 전해 들었다. 손 회장에 따르면 최 회장은 폐암 수술 뒤 암이 재발하자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거부했다. 통증이 심해지면 진통제를 맞으면서 호흡 훈련을 하며 자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새 항암제를 써 보자는 주변의 권유도 뿌리치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최 회장이 생을 마감한 당시(1998년)만 해도 토장(土葬)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자신을 화장해 자연에 뿌려줄 것을 당부했다. 그의 유언은 우리나라의 화장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조념 씨의 죽음도 그에겐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 조 선생을 만난 것은 2008년 그가 숨지기 닷새 전이었다. 그는 지인들이 마지막 눈도장을 찍기 위해 병원을 찾는 것을 피곤해하고 나중엔 다 거부했다. 그러던 분이 내 책을 보고 공감을 했다면서 나를 위해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직접 연주해 줬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그는 소설가 최인호 씨도 임종 전에 만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러 번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나를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최 작가의 친구로부터 ‘그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으며 계속 글을 쓰고 싶지만 죽음이란 운명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는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



그럼 죽음을 앞둔 가족이나 지인들에겐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그는 자연스러운 대화를 권한다.



“병문안 와서 자신도 모르게 살아 있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환자에게 위로는커녕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천당 가실 거다’ ‘극락왕생하실 거다’ 같은 말은 환자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하느님 성경·화엄경·금강경 등 종교와 관련된 말도 너무 많이 하는 건 피하는 것이 좋다. 신앙을 지닌 환자들도 종교 얘기를 하는 것은 싫어했다. ‘우리 지난 봄에 놀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그런 행복한 시절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약간 괜찮아지면 차나 한잔 마시자’ ‘커피 향 좋지’ ‘장미가 참 예쁘지’와 같이 평소처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 시인 이해인 수녀에게 들은 얘기가 인상 깊다. 같은 병원에 입원했던 김수환 추기경이 ‘잠깐 오라’고 했단다. 자신을 종교적으로 위로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김 추기경은 종교 언어 하나 쓰지 않고 ‘이해인 수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하며 인간적인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고 했다. 김 추기경이 가난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터득한 위로의 말일 것으로 이해인 수녀는 말했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때부터 죽음 교육 시작



질병으로 여명이 제한돼 있는 이들은 어떻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웰다잉일까. 그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명도 연장될 수 있다”고 답했다. 평온한 죽음, 즉 평온사(平穩死)에서 답을 찾자는 것이다.



“웰다잉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맞는 것이다. 생존 가능한 시간을 주치의에게 미리 알려달라고 요청한 뒤 남은 시간에 마무리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떠나는 것이 웰다잉의 좋은 예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처럼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실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말기 환자 중엔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멀리는 못 가지만 일본·중국 등 가까운 나라를 여행한다. 이들은 진통제를 처방 받아 통증이 심해지는 상황에 대비한다. 배낭을 메고 가족과 함께 국내 여행을 하거나 서예 등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환자에게 여명을 말해주지 않는 의사가 꽤 많은 게 현실이다. 나중에 있을지 모를 환자나 보호자들의 항의를 꺼려서라고 한다.



“의료진이 예상하는 이상으로 오래 사는 환자들도 꽤 많다. 나는 주치의가 여명을 말해주지 않으면 담당 레지던트에게 물어볼 것을 권한다. 의사가 죽음을 모르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넌센스다. 의사라면 환자의 치료(cure)와 관리(care)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내 의대에선 죽음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 작년 가을부터 울산대 의대가 전국 최초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서구에선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 그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초등학교 때 그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선 초등 교사가 테이블 위에 화분을 놓고 삶과 죽음의 개념을 가르친다. 꽃은 열흘이면 시드는데, 그게 꽃의 인생이란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가족처럼 대하는 애완견도 10∼20년이면 떠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도 그는 “웰빙의 삶을 살려면 웰다잉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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