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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사망보험금이 2배?…약관 한 줄에 2179억원+α 내줄 판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그동안 답은 이랬다. 가입한 지 2년이 안 됐다면 한 푼도 못 받지만, 2년이 지났으면 일반사망보험금을 받는다. 단, 정신질환으로 자살했다면 재해사망보험금을 받게 된다.



'가입 2년뒤 자살은 재해사망' 약관
2001~2010년 종신보험 특약에 명시
금감원 "실수지만 약관 지켜야"
문구 베낀 17개사 줄줄이 걸려

2001~2010년(일부 보험사는 2007년 또는 2008년까지) 종신보험 재해사망특약에 가입했다면 답이 달라지게 됐다. 가입한 지 2년이 지났다면 정신질환 여부와 상관없이 일반사망보험금의 2~3배인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나온 금융감독원의 유권해석이 그렇다.



생명보험 업계는 비상이다. 약관 해석 때문에 17개 생명보험사가 이미 자살한 계약자에게 추가로 내줘야 할 보험금이 최소 2179억원에 달한다. 황당한 건 이 사태를 초래한 약관 문구가 보험사의 실수로 생겼다는 점이다.



“대법 판례 따라 재해 사망금 줘야”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8월 금감원의 ING생명 종합검사다. 금감원은 이 회사가 2001년 5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판매한 종신보험 재해사망특약 약관을 보험사가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12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는 보험사고'에서 “2년이 경과 된 후에 자살하거나…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문구가 문제였다. 가입 2년 뒤 자살은 그러하지(재해사망보험금 지급에서 제외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특약에서 정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주라는 해석을 내렸다.



ING생명은 항변했다. 자살이 재해가 아니라는 건 상식적으로도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애초에 재해가 아니니, 재해사망특약의 적용대상이 아니란 논리다. 약관에 나온 '재해분류표'에 적힌 32개 항목에도 자살은 없었다. 그간 똑같은 약관을 쓴 다른 생명보험사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준 경우가 없었다. 금감원이 이를 문제 삼은 것 역시 처음이었다.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ING생명에 4억5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다만 고의가 아닌 실수였다고 보고 임직원엔 경징계만 내렸다. 보험사가 특약 보험료를 계산할 때 자살 위험률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실수로 판단한 근거다. 금감원은 다른 생명보험사에도 자살가입자 유가족에 약관대로 보험금을 주라는 지도 공문을 보냈다.



제재 결정의 근거는 2007년 대법원 판례다. 당시 대법원은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 A씨의 딸이 교보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에서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A씨가 가입한 '차차차교통안전보험'의 재해보장특약에 이번 ING생명 경우와 똑같은 문구(2년이 경과 된 후에 자살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가 들어있었다. 재판부는 “평균적인 고객의 입장에서 보면 2년이 지난 뒤 자살하면 보험금을 준다고 이해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약관이 모호하다면 보험사가 아닌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재익 금감원 생명보험검사국장은 “;설사 보험사의 실수라 하더라도 일반인 눈높이에서 볼 때 보험금을 준다고 기대할 여지가 있는 약관이라면 보험금을 줄 책임이 있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도 9년 간 몰랐던 실수



금융당국 제재가 확정되면서 불똥은 생명보험 업계 전체로 옮겨 붙었다. 다른 생명보험사도 ING생명과 같은 약관을 써왔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01년 재해사망특약 약관을 처음 만든 건 당시 동아생명(현 KDB생명)이다. 그 시절 보험사들은 특약을 새로 만들 때 편의를 위해 서로 나눠서 약관을 작성한 뒤 짜깁기해 썼다. 예컨대 재해사망특약은 A사, 재해입원특약은 B사, 재해상해특약은 C사가 약관을 만든 뒤 이를 다 같이 공유하는 식이다. 동아생명은 일반 사망을 보장하는 주계약 약관에 들어있던 '2년 경과 후 자살' 관련 문구를 재해사망특약 약관에 그대로 따서 썼다. 아무도 이 문구가 문제될 거라고 몰랐다.



약관 베끼기 관행 탓에 대부분 생명보험사 약관엔 똑같은 조항이 들어갔다. ING생명뿐 아니라 빅3 보험사(삼성·교보·한화생명)를 포함한 17개 생보사가 줄줄이 미지급 자살보험금 사태에 엮인 이유다. 당시 약관을 따라 쓰지 않았거나 이후에 신설된 8개 생명보험사(동양KB·IBK·푸르덴셜·라이나·카디프생명, 교보라이프플래닛)는 문제된 약관조항이 없다.



보험상품 인가업무를 담당하는 금감원도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금감원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다. 한 대형보험사 관계자는 “약관을 승인해서 상품인가를 내주는 게 금감원인데, 마치 제 3자처럼 얘기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감원은 '그런 약관이 있는지 예전엔 몰랐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기존에 팔던 보험상품과 비슷한 구조면 일일이 승인받을 필요 없이 보험사가 알아서 팔게 하는 게 과거 관행이었단 설명이다.



보험사가 이 약관을 고치기 시작한 건 2007년 9월 대법원의 교보생명 판결이 나온 뒤다. 당시 대법원 판결 내용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은 건 보험사로선 다행이었다. 보험사들은 재빨리 약관에서 '2년 경과한 뒤 자살하거나'란 문구를 뺏다. 주요 보험사의 과거 약관을 확인한 결과 교보·ING·신한생명은 2007년, 알리안츠생명은 2008년, 삼성생명은 2010년 약관을 고쳤다. 금감원이 표준약관을 고친 건 2010년이었다.



자살 부추긴다 VS 별 영향 없다



약관은 고쳐졌지만 이미 문제된 약관의 재해사망특약이 282만 건이나 팔린 뒤였다. 금감원에 결과에 따르면 17개 보험사가 소급해서 줘야 할 자살사망보험금만 2179억원(4월 말 기준)에 달한다. ING생명이 가장 많고(471건 653억원), 삼성생명(713건 563억원), 교보생명(308건 223억원) 순이었다. 보험금을 늦게 줄 때 지급해야 하는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금액은 더 불어난다. 가입자 중 앞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액수가 1조원까지 늘 수 있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종신보험 아닌 다른 생명보험상품까지 따져보면 더 늘어난다. 약관을 확인한 결과 1999년 3월 이전에 판매된 삼성생명 '퍼펙트교통상해보험'과 교보생명 '차차차교통안전보험'의 재해사망특약엔 문제의 약관이 들어있다. 두 상품 모두 당시 100만 건 이상 팔린 인기 상품이다. 한 중소형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일부 생명보험사는 암보험 상품에서도 '2년 경과 뒤 자살은 면책하지 아니한다'는 약관을 두고 있다”며 “금융당국 논리 대로라면 암치료비 보장 상품인데도 자살보험금을 줘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자에 고액 재해사망보험금을 주면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보험업계에서 제기한다. 예컨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라면 재해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자살을 택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실제 생명보험사 관련 보도가 나온 뒤 일부 대형 생명보험사 콜센터엔 “내가 자살해도 재해사망보험금에 해당 되나요”라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이창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통계적으로 생명보험 가입 3년 째 자살률이 유독 높은 걸로 볼 때 경제적 인센티브(보험금)가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며 “자살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면 인센티브가 크게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흥배 참여연대 경제조세팀장은 “이미 몇 년 전 약관을 고쳤기 때문에 보험사 주장처럼 자살을 크게 부추기진 않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금감원 역시 “2007년 대법원의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판결이 나온 뒤에도 자살률이 높아졌단 통계는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는 소송 낼지 눈치만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약관에 대한 전면적인 특별검사도 지난 6월 예고했다. 연루된 보험사가 많아서 어떻게 손댈지 몇 달째 고민 중이다. 문재익 국장은 “형평성을 위해선 모든 생명보험사를 한꺼번에 검사해야 하는데, 수십 명 검사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할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이달 초 금감원 분쟁조정국은 자살보험금 관련 민원 40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30일까지 정하라고 보험사에 통보했다. 민원인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줄지, 소송을 낼 지 정하란 뜻이다. 기한이 다 돼가지만 어느 보험사도 선뜻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대형사 관계자도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기본입장은 변함 없지만 어떻게 하면 입장을 세련되게 표현할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매를 먼저 맞은 ING생명이 총대를 매줬으면 하고 내심 바라기도 한다. 외국계사 관계자는 “괜히 나서면 집중포화를 맞을까봐 각 사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며 “미지급 액수가 가장 많은 ING생명이 (소송에) 나서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정작 ING생명은 제재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낼지 말지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소송 냈다가 자칫 회사 이미지만 상할까 염려해서다. ING생명 관계자는 “소송을 낸다고 해도 평판 하락에 따른 손해를 보상받을 순 없어서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지난해 ING생명을 인수한 MBK파트너스가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고 ING그룹으로부터 그 돈을 받아내는 걸 선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행정소송은 제재 결과를 통보 받은 지 90일 안인 11월 말까지 제기할 수 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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