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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기조연설 전문

한반도포럼 회원 여러분.



최근 북한이 활발한 대외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지 3년 가까이 계속된 칩거에서 벗어나는 모습입니다. 특히 서방을 향한 관계 개선 의지가 뚜렷해 보입니다. 북한 대외관계 최고 책임자인 강석주 노동당 비서가 유럽을 순방하고 이수용 외무상은 내일 유엔 총회에서 15년만에 연설할 예정입니다.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고 북한과 일본 사이의 교섭도 무르익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달에는 미 공군기가 평양을 방문했다고도 합니다.



북한의 움직임은 분명 긍정적입니다. 비록 이번 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상황이 중요 화두가 되는 것을 막아보려는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적어도 경계심에 가득 차 잔뜩 웅크리고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징조로 보입니다.

이런 변화가 남북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희망합니다.



한반도 포럼은 지난 3년 반 동안 한반도 평화정착, 나아가 통일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백영철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회원들께서 한마음으로 참여해 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주목되는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포럼의 고문으로서 저는 크게 기쁘게 생각합니다. 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는 그 이전 10년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핵실험과 간헐적인 무력도발로 남한을 자극했고 남한은 관계 단절과 압박으로 맞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대립과 긴장의 격화였습니다. 남북한이 함께 번영을 구가하고 머지 않아 통일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줄어들고 오히려 이러다 전쟁이라도 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져 왔습니다.



그러나 고진감래라고 했습니다. 저는 멀지 않은 장래에 남북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남북 모두가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저만 가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빗나가기만 하는 남북관계의 물꼬를 올바른 방향으로 틀어놓을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물꼬를 트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모임의 주제가 바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구축 방안’입니다. 여러분께서 전문적이고 통찰력 있는 고견을 내주시겠습니다만 잠시 제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정치·군사적으로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지금까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만나 잘해보자고 여러 차례 합의했습니다만 어떤 합의도 실천에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합의들만 지키라고 강변하는 지금 상황이 이를 보여줍니다. 남과 북이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경제 교류와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해 지면서 군사적 대립도 줄어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북한이 개성이나 금강산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공단과 특구를 설치한 것은 과감한 결정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특구의 군사적 의미가 작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대립은 그 강도와 본질 면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군사적 압박도 강화돼 왔습니다. 북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 대해 거칠게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면 될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마치 양측이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남북한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안보의 딜레마’에 빠진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안보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내주시겠습니다만 제 생각을 보태자면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패러다임이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적, 군사적 불신을 줄여 나가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자면 ‘핵과 군사적 압박’이라는 현재의 상황이 구조적인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컨대 핵문제 해결을 모든 문제에 우선하는 입장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처음 불거진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이 있어왔습니다. 사실 북한은 그런 전망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해 왔습니다. 20여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핵개발을 추진해온 북한이 얼마간의 경제적 보상과 확실치 않은 체제 보장 방안을 믿고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핵문제 해결을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과제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이 더 이상 핵개발을 진전시키지 않고 핵보유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안보 딜레마’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 시점은 오늘의 주제인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구축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 시점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과 남북의 공동 번영이 상당하게 진전되는 시점으로 늦춰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핵문제 해결을 너무 서두를 경우 북한의 붕괴 이외에 다른 모든 전망과 대책이 설 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붕괴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파국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붕괴에 대비한 충분한 군사적, 경제적 방책이 있어야 한다고들 합니다만 그것이 정말 가능할 지에 대해 저는 회의적입니다. 그보다는 파국을 피하는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지난 몇 년 동안 정체상태입니다. 미국은 더 이상 의미 있는 해결 노력을 할 의지가 약해진 듯합니다. 중국도 지금 이상으로는 북한을 압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핵문제에 발목이 잡혀 다른 문제의 해결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통일을 시야에 두고 한반도 평화를 모색해야 하는 우리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해서 박근혜-김정은 시대에 맞는 해법을 제시해야 할 핵심 과제는 다음 세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첫째, 핵에 관한 어떠한 잠정적인 합의와 조치를 취하고 평화와 협력의 방안을 논의할 것인가,

둘째, 5.24 조치를 그대로 두고는 대화 자체를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5.24 조치의 해제 방안은 무엇인가,

셋째, 미국과 중국의 역할에 더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의 Initiative로 남북한이 핵과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고 미국과 중국을 견인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의 세가지이겠습니다.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남한과 논의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관심 가질 만하고 동시에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추구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여러분들이 만들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모두에 말씀 드린 대로 북한이 서방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짓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도 손을 내밀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침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그런 점에서 아주 시의 적절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의 통찰력과 지혜가 빛을 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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