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정재서의 종횡고금 <25> "걸으면 길 되고, 행하면 도 된다" 장자·노신·마차도 한목소리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청명한 가을 날씨가 연일 계속되는 요즘 걷기가 한창이다. 금방 실행할 수 있는데다가 건강에 대한 관심까지 더해져 걷기는 그야말로 국민 운동이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걷는 일 만큼 쉬우면서도 의미심장한 행위가 있을까. 신화를 보면 모든 영웅의 행로는 집을 떠나 걷는 일로부터 시작된다.(그들은 일단 가출한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도, 그리스의 헤라클레스도 모두 도보 여행을 하면서 괴물과 악당을 물리치고, 조력자를 만나는 등 영웅의 과업을 수행하였다.



 모험으로 점철된 영웅의 길은 결국 갖가지 애환으로 얼룩진 우리네 인생살이를 상징하는데 이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 길을 떠나면서 겪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 로드무비이다. 영화뿐인가?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이나 ‘인생은 나그네길’로 시작하는 흘러간 노래에서도 우리는 걷기가 함축한 깊은 뜻을 본다.



 고대 동양의 철인들은 일찍이 걷기가 지닌 인문학적 의미에 주목하였다. 가령 장자(莊子)는 이렇게 말한다. ‘길이란 다니면서 생긴 것이다(道, 行之而成.)’(『장자』‘제물론(齊物論)’) 이 언급은 다시 ‘도(道)란 행하면서 이루어진다’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즉 우리가 길을 다니는 것과 궁극적 진리인 도를 닦는 일을 비유적 차원에서 동일시 한 것이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노신(魯迅)은 그의 소설 『고향』에서 절묘하게 장자의 이 구절을 수용한다. 반식민지 상태에서 무섭게 변해버린 고향 농촌의 세태와 풍경에 절망하면서도 주인공은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되뇐다. “희망이란 본시 있고 없고를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은 길과 같다. 사실 땅위에 처음부터 길은 없지만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은 장자의 도를 희망으로 환치하면서 희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역설하였다. 근대 여명기에 낡은 전통을 타파하는 데에 앞장섰던 노신이었지만 작품에서는 여전히 고전의 모티프를 계승, 발휘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외에도 고대 중국에서의 걷기에 대한 상상은 다채로웠다. 도교에서는 신선이 허공을 걷는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환상적인 경지를 ‘보허(步虛)’라는 음악과 시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당(唐)나라 이후 중국과 한국의 문학과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또 옛날 우(禹) 임금이 황하의 홍수를 다스릴 때 과로해서 비틀비틀 걸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흉내 냈다는 ‘우보(禹步)’라는 특수한 걸음걸이도 있었다. 도인들은 이 걸음걸이로 걸어야 사악한 요괴를 쫓아내고 신비한 차원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시인들은 또한 달빛 속에 거니는 것을, 마치 달 위를 걷는 것처럼 ‘보월(步月)’이라는 낭만적인 어휘로 표현하였다. 고 마이클 잭슨도 달을 걷듯이 춤을 추었다. 노래 ‘빌리 진(Billie Jean)’에서의 보월, ‘문워크(Moonwalk)’가 그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 엉뚱한 상합(相合)이.



 오늘도 걷는다 종횡자(縱橫子·필자)는. 북한산 둘레길로 정처를 잡고. 그 길목 등산객들을 위해 명언을 적어놓은 나무판에 눈길을 확 사로잡는 글귀가 있다. 다름 아닌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 y Ruiz, 1875~1939)의 명언이다. ‘여행자들이여! 길은 없다. 걷기가 길을 만든다.’ 장자, 노신, 마차도가 길에서 만났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