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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브레이킹 배드'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뒤늦은 소식이기는 하지만 올해 미국의 에미상 작품상은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 돌아갔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사라져 허전한 마음을 매슈 매코너헤이로 달래고 있던 사람으로서 매코너헤이가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 ‘트루 디텍티브’가 좋은 대접을 받기 바랐고, 심지어 ‘브레이킹 배드’의 제작자도 ‘트루 디텍티브’의 작품상 수상을 예상했지만, 결국 ‘브레이킹 배드’가 작품상을 포함해 상 다섯 개를 가져갔다.



 물론 ‘브레이킹 배드’는 매력적인 드라마다. 화학교사 출신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가 재능을 발휘하여 최고 수준의 마약을 제조하다가 뛰어난 두뇌로 암흑가의 권력자로 부상한다는 줄거리는 얼핏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활극의 요소도 가미돼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한 인간의 변화를 끈질기게 탐구하면서 삶의 여러 아이러니를 포착해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교사 월터 화이트는 한때 화학 분야의 촉망받는 두뇌로서 큰 벤처기업의 창립자가 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부업까지 해가며 근근이 살아가는 신세다. 그는 장애가 있는 아들에 늦둥이 딸을 둔 데다 폐암 선고까지 받아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그러나 화이트는 가장으로서 가족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이를 악문다.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가족을 책임지려는 가장, 이것이 그가 인생의 막바지에 자신과 세상에게 제시하고 싶어 한 자기 이미지고, 이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첫 번째 아이러니가 생기는데, 화이트에게는 이 시기가 가장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심간은 가장 편한 때라는 것이다. 자신이 설정한 이미지대로 나도 나를 보고 세상도 나를 그렇게 보아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자기와 자기 이미지와 세상이 자기를 보는 눈 세 가지가 일치하는 때가 있다면 누구나 그때를 행복하다 할 것이다. 반대로 그것이 어긋나는 상황, 그리고 그것을 수습하려는 무리한 시도는 온갖 불행의 단초가 된다.



 월터 화이트의 행복한 시간은 길게 가지 않는다. 여기서 두 번째 아이러니가 생기는데, 그에게 불행이 시작되는 시점은 그가 가장으로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때 그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마피아의 윤리를 자신의 윤리로 받아들인다. 또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윤리에 맞춰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능력자이기 때문에 마약 제조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거기에 암마저 진행이 멈추어 어느 때보다 유능한 가족 부양자가 되지만, 바로 그 과정에서 가족은 와해되고 그 자신은 악당으로, 괴물로 변해 간다. 더불어 그가 내세웠던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라는 자기 이미지는 진정성을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런 자기 이미지가 가식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영리하게도 그런 이미지 설정이 그 나름의 간절함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간절함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순간 그런 마음 자체가 악으로 변해감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 악은 계속 선으로 인정받으려고 자기 이미지를 세상에 강요한다는 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자신이 설정한 이미지대로 세상이 자기를 봐주지 않을 때 보통 힘 없는 사람은 세상을 원망하고, 힘 있는 사람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 자신이 내세운 이미지대로 보라고 세상을 윽박지른다. 권력자가 된 화이트는 물론 후자를 택하고 그로 인해 가족은 더 빠르게 무너진다.



 결국 월터 화이트에게 가족과 화해할 가능성은 자신이 한 일이 가족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순간 찾아오며, 이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마지막 아이러니다. 화이트는 그런 인정을 통해 진실한 자기인식에 이르게 된다. 비록 자신의 최후에 대한 예감과 함께 찾아온 순간이지만 그에게는 인생 어느 때 못지않은 평화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기 이미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민얼굴의 자신과 대면할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확고한 사람에게든, 마약사범 월터 화이트에게든 예외 없이 유효한 진실일 테니까.



정영목 번역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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