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청계천 판잣집 시절은'위장된 축복' … 꿈과 도전, 유쾌한 반란 두려워 마시라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지방에서 칩거 중이다. 이날 강연은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을 지낸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간곡한 요청으로 이뤄졌다. [천안=프리랜서 김성태]
‘꿈과 도전’은 ‘유쾌한 반란’이었다. ‘청계천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장관급 공직에까지 올랐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으로 일하다 지난 7월 스스로 물러난 김동연(57)씨 얘기다. 김 전 실장이 25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충남 천안의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강연했다.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 강연

 강연 주제 역시 ‘유쾌한 반란’이었다. 그는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꿈과 도전,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이 반란”이라고 했다. 또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유쾌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은 인생의 반란을 3가지로 요약했다. 외부환경, 자신, 사회에 대한 반란이다. 그는 순탄치 않았던 인생을 소개하며 ‘반란’을 설명했다. 4남매 중 장남인 그는 11세 때 쌀 도매상을 하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서울 청계천 판잣집에 살면서 소년가장 노릇을 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덕수상고를 졸업해 은행에 취업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국제대)에 다녔다. 야간대학에서도 꾸준히 공부해 행정고시(26회)와 입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한때 세상에 절망도 했지만 긍정적인 자세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죽기 살기로 했던 것 같다”며 “외부환경에 대한 반란으로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미시간대 유학시절에는 ‘자신에 대한 반란’을 실천했다. 학점 따기 좋은 과목 대신, 하고 싶은 과목을 선택했고 3년9개월의 짧은 기간에 석·박사(정책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공직생활 내내 “우리 사회를 좀 더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이 사회에 대한 반란이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일하면서 특성화고교 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도록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교생을 유학보내는 ‘드림장학금’ 제도도 만들었다. 김 전 실장은 “축복은 가끔 고통스러운 모양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며 “어려웠던 시절은 내게 ‘위장된 축복’이었고 그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했다.



 충북 음성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일찌감치 상경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큰아들(당시 28세)을 백혈병으로 잃은 뒤 간병을 도맡았던 부인 건강이 나빠져 (김 전 실장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김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 후반인 2006년 ‘비전 2030’ 보고서를 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국정과제비서관, 기재부 예산실장·2차관을 지냈다. 예산 담당인 2차관 시절, 정치권에서 쏟아내던 총선 공약 이행비용을 발표해 정치권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천안=김방현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