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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유엔서 '인권 맞짱' 뜬 남북…올해 재연되나

유엔(UN)무대에서 남북한간 ‘인권 전쟁’은 1995년 이후 19년째다. 난제로 손꼽히는 북핵 문제가 1993년 처음으로 국제사회 논의가 시작됐으니 북핵문제 만큼이나 긴역사다. 핵 문제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지만 북한이 ‘장막’ 속의 국가라는 점에서 인권 문제야말로 향후 북한의 가장 아픈 급소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지난 3월 북한인권특별위원회(COI)의 최종보고서가 유엔인권이사회에 정식 제출되며 북한인권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19년 전 한국정부가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한 자리로 돌아가 보자.



1995년 9월 28일(현지시간) 공로명 외교부 장관은 뉴욕 유엔본부 건물의 유엔총회장 입구에 섰다. 손에 들고 있는 기조연설문을 몇번씩 들여다 보던 그는 쉼호흡을 한 뒤 연단으로 올라섰다. 그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우리 정부의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북한 주민이 같은 동포로서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는 보편적 인권을 향유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분단 후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공 장관은 “북한 당국이 개혁과 사회 개방을 통해 인권보호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호소에 긍정적으로 호응해 줄 것을 촉구한다”며 ^이산가족 문제 해결 ^남북 대화 및 협력 촉구 등을 밝혔다. 공 장관은 23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당시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고심 끝에 필요성을 인정했다”며 “문민정부로서 민주화와 인권투쟁을 해온 정권이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판단이었다”고 기억했다.



공 장관이 북한 인권을 정면으로 거론하자 북한측은 비상이 걸렸다. 북한은 각국 정부 수반급이 나서는 총회 기조연설에 반론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답변권(Right of Reply)’을 신청했다. 유엔 총회 기조연설 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정상들의 연설이 모두 끝난 5시 45분쯤 북한의 김창국 유엔대표부 참사관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체제가 완비된 나라로 인권문제란 있을 수 없다”며 “오히려 인권사각지대는 남한”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남한에는 사상전향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수십명이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보다 더 오랜 기간인 40년 이상을 복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 문제도 거론했다. 김 참사관은 “남한은 국가보안법으로 남북한 주민과의 상봉 서신교환 및 전화 통화까지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측 반론이 이뤄진 후 우리측 이규형 유엔대표부 참사관이 ‘REPUBLIC OF KOREA’라 쓰인 명패를 세로로 세웠다. 북한의 반론을 재반박하겠다는 발언권 신청의 의미였다. 이 참사관은 작심한 듯 “북한에는 많은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특히 이곳에 수용된 상당수 정치범의 이름이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에 등장한다”며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엄격한 통제하에 두고 개인별로 보안등급을 매겨 이에 따라 취업 취학 의료시설 및 상점 이용, 노동당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범 수용소 문제는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었다. 처음부터 “북한이 답변권을 행사하면 우리도 이 문제를 재반박용 카드로 쓴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었다고 한다.



북한도 재차 2차 답변권을 행사했다. 김 참사관은 “남한 대표가 유독 보안법에 언급을 피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우리측 이 참사관은 “한반도 냉전 잔재가 제거돼 국가보안법이 필요없게 되길 바라고 있다”며 “아직은 평화, 자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데 국민적 합의가 있다”며 설전을 마무리 했다.



이날 공 장관의 기조연설을 포함해 남북의 인권공방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당시 참사관으로 우리측을 대변했던 이규형 전 주중대사는 “전세계가 남북의 공방을 침묵속에 경청했다”며 “미국 CNN도 남북인권 설전부분만 따로 방영을 할 정도”라고 기억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답변권을 통해 공방을 주고받은 두 참사관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 가입 당시 양국의 유엔담당과장으로, 이미 일합을 겨룬적이 있었다.



이날 뿐이 아니었다. 유엔총회 기조연설 마지막날에는 북한측 최수헌 외교부 부부장도 반격을 가했다. 최 부부장은 “국가보안법은 남북대화를 저해할 뿐 아니라 인권을 억압하는 도구로 미국 국무부도 2차례나 철폐를 촉구했고 유엔 인권위원회도 철폐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우리측 이규형 참사관은 반론권을 신청한 뒤 교황 바오로 2세의 연설을 인용했다. “현대적 전체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개인의 삶에 양도할 수 없는 가치를 부정한다”며 우회적으로 북한을 비판했다. 북측은 반론권을 통해 재차 반박했지만, 우리측은 “국제무대에서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자”는 이유로 2차 반론권은 포기했다.



이를 시작으로 양국은 국제무대에서 인권문제로 심심치 않게 부딪쳐 왔다. 정권에 따라 남북화해 무드 속에서 수위가 낮아지기도 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대체로 일관되게 단호하다. 이규형 전 주중대사는 “인권 문제는 남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응당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와중에 북한인권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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