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외화벌이 나선 북 해외식당, 김일성 배지 떼고


입구에 들어서자 4인조 북한 여성 전자악단이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제가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인 손님들이 한 무리 들어서는데도 익숙한 듯 담담한 표정이었습니다. 메뉴판에 25위안(한국 돈 4200원)으로 적힌 칭타오·하이네켄 대신 60위안(1만원)짜리 평양 대동강맥주를 주문하자 여종업원은 “맛 보시면 반하실 겁네다”라고 반색합니다. 노란 한복 저고리를 걸친 그녀의 왼쪽 가슴엔 김일성 배지 대신 인공기 모양의 아크릴 명찰이 달려 있습니다. 성형을 한 것 아니냐고 묻자 “대외봉사부문은 적십자병원에서 무상으로…”라며 살짝 웃어보입니다.



이달 초 중국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옌지(延吉)시의 국제호텔. 오후 9시를 넘긴 시간 로비층에 자리한 북한식당 ‘평양 아리랑’은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70여석이 꽉 찼습니다. 음식보단 술을 팔고 공연하는 곳입니다. ‘내 나라 제일 좋아’ 같은 몇 곡의 북한 가요가 흘러나오더니 검은 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 연주자가 무대 중앙에 자리했습니다. 첼로를 들고나온 그녀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마이웨이’를 연주했습니다. 일제 야마하의 키보드와 전자기타가 어우러졌습니다.

 잠깐의 휴식 뒤 이번엔 한복 차림 단원들이 등장해 21현의 개량 가야금을 켜며 전통무용과 민요를 선사했습니다. 이어 투피스 양장에 하이힐을 신은 단원들이 댄스공연을 선보였죠. 이렇게 옷차림과 레퍼터리를 완전히 바꿔가며 몇 차례 무대가 이어졌습니다. 유심히 보니 단원과 종업원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방금 전 공연한 악단원이 메뉴판을 들고 손님을 맞는 겁니다.

 특이한 건 신청곡 코너입니다. 100위안(1만7000원)을 내면 악단 연주에 맞춘 ‘나만의 무대’를 마련해줍니다. 북한 악단원은 꽃바구니를 건네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요. 북한 가요엔 흥을 돋구다가도 팝송엔 침묵하거나 자리를 살짝 피하더군요.

 중국 주요 도시를 주축으로 해외에 진출한 이런 북한식당은 외화벌이의 거점입니다. 폐쇄체제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엿보기 심리를 활용한 겁니다. 현지 물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성업 중인 건 그 때문입니다. 관계당국은 러시아와 이탈리아·태국·캄보디아 등 10여 개 국에 적어도 30개 이상의 식당·술집이 있는 걸로 파악합니다.

이 곳에서 일하려면 출신성분이 확실하고, 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 여종업원은 집안 배경을 묻자 “아버지는 내각 사무원이고 어머니는 교원”이라고 답하더군요. 평양상업대학을 나와 고려호텔에서 몇 년 일하다 기회를 얻었다는 겁니다. 다른 단원은 “예술대학을 나와 전자악단에 소속됐다”고 소개합니다. 평양 모란봉악단에 버금가는 가창력과 연주실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하는 이유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보단 낫다지만 근무여건은 열악해 보입니다. 2~3년 동안 고향에 가는 건 엄두도 못 냅니다. 공연과 서비스·청소 등 1인3~4역도 해야 합니다. 제가 들렀던 ‘평양 아리랑’도 밤 12시에 영업을 마친 뒤 청소 등 마무리를 하고나면 새벽 1~2시가 된다고 하더군요. 이튿날에도 오전 9~10시께 출근해 영업준비를 해야한다는데요.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총화’로 불리는 평가시간이랍니다. 서로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한국 손님을 상대하며 듣고본 내용을 빠짐없이 보고해야 한다는 겁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해외에 진출한 북한 식당은 외화벌이와 함께 첩보수집 임무도 띈다는군요. 2011년엔 네팔에 진출한 북한 식당에서 첩보 수집 등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현지 옥류관을 탈세혐의로 급습했는데, 컴퓨터에서 한국 상사원·관광객들의 신상자료와 녹음파일이 발견된 겁니다. 옌지 북한식당에서도 여종업원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9가 네개, 8이 네개(99998888)입네다”라고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일행 중 보안전문가인 한 인사가 “정보 유출이 우려되니 여기 와이파이엔 접속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정부는 해외 북한식당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4년 전 북한이 천안함 폭침사건을 일으킨 뒤 5·24조치가 시행되면서 이용객 수도 확 줄었다고 합니다. 해외 여행길에 가슴졸이지 않고 북한식당에서 가자미식혜와 대동강 맥주를 즐길 날은 언제 올까요.

이영종 외교안보팀장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