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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도 피아노 … 10분만 남아도 연습해요

올림픽.월드컵 등에 단골로 출연하는 랑랑. “싸이의 ‘챔피언’은 연주 이틀 전 악보를 받았는데, 너무 어려워 집중 연습했다”며 “고된 연습 없이는 무대에 올라 만끽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일 오후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 랑랑(郞朗·32)이 싸이의 ‘챔피언’ 전주를 피아노로 ‘두들겼다’. ‘쳤다’는 표현은 좀 부족했다. 피아노 의자는 사실 필요가 없었다. 거의 선 채로 싸이와 함께 춤췄다. 하긴, 그는 중국의 한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건반과 오른손 사이에 오렌지를 끼운 채 굴리며 쇼팽을 연주한 적도 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 랑랑
과장된 무대 매너 말들 많지만 연 150회 전 세계 초청 콘서트
"이번같은 공연은 일종의 파티 … 싸이·메탈리카, 좋은 현대음악"

 하지만 랑랑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고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여는 ‘진지한’ 연주자다. 콧대 높은 악기 제작사 스타인웨이가 150년 역사상 처음으로 ‘랑랑 에디션’을 제작해 헌정한 인물 아닌가. 엄숙한 클래식 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 랑랑은 ‘정체 불명’의 연주자다.



 이날 개막식 출연 전 랑랑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랑랑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이날 인터뷰를 토대로 해서 세가지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풀어본다.



 1. 그는 정말 피아노를 잘 치나.(※아래 괄호 안의 ○, ×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마디로 표기한 것이다)



 (○) 테크닉이 완벽하다. 음악적 감성 또한 남다르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BBC 다큐멘터리에서 “음악 분위기 뿐 아니라 화성 변화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주자는 드물다”고 말했다. 그가 전세계 콘서트홀에서 한 해 150회 초청받는 비결이다.



 왜 잘 치는가가 더 중요하다. 기자와 인터뷰에서 랑랑은 “많은 사람이 내가 타고나서 잘 치는 줄 안다. 하지만 나는 10분만 시간이 남아도 연습하는 피아니스트”라고 말했다.



 랑랑은 18일 자정 서울의 한 호텔에 체크인 했다. 방에는 미리 부탁한 전자 피아노가 놓였다. 그는 “새벽 1시부터 2시 반까지 연습했다. 다음 달 독주회에서 칠 곡들이었다. 연습을 마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더 이상은 바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주자는 운동선수와 같아서 언제든 감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천아시안게임 개막 공연에 출연, 싸이의 ‘챔피언’을 연주하는 랑랑.
 2. 그는 대중음악 뮤지션인가.



 (×)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은 랑랑이 출연한 다섯 번째 스포츠 행사다. 2006년부터 독일·남아공·브라질 월드컵,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연이어 나왔다. 함께 연주한 가수들 면면을 보자. 메탈리카, 허비 행콕부터 한국의 인순이·엑소까지. 하지만 랑랑은 “난 분명히 클래식 연주자고, 콘서트홀을 가장 좋아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달에만 미국·유럽에서 모두 다른 협주곡 8곡을 소화해 연주했다. 모차르트·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 등 묵직한 고전음악이었다.



 “올림픽 개막식, 그래미 시상식 등에서의 연주는 하나의 여가 활동, 파티 같은 것”이라고 했다. 또 “음악을 최대한 많은 사람과 연결하는 것이 내 사명인데, 21세기의 대중 앞에서 소나타만 연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싸이·메탈리카는 아주 좋은 ‘현대 음악’이다”라고 덧붙였다.



 3. 그의 인기가 오래갈까.



 (○) 현재 랑랑의 ‘몸값’은 세계 톱 수준이다. 한국에선 독주회 한 번에 억대 출연료를 받는다. 유럽에서는 티켓 판매에 따라 출연료가 올라간다. 팝 스타급 대우다.



 하지만 “일등 피아니스트는 목표가 아니다. 내 진짜 꿈은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리하게도 연주자의 한계에 갇히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랑랑 아카데미’를 베이징·뉴욕에 세우고 총 400명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랑랑은 “가장 어린 학생은 세 살이고, 잘 자란다면 나보다도 좋은 피아니스트가 될 재목이 많다”고 소개했다.



 1999년 그가 세계무대에 깜짝 데뷔했을 때, 모두가 성공을 점쳤던 것은 아니다. 과장된 연주 스타일, 무대 매너 때문이었다. 하지만 랑랑은 10년 넘게 일류 자리를 지켰다. 랑랑은 “공연할 때 단 한 번도 긴장한 적 없고, 무대를 점점 더 즐기고 있어 나도 놀랍다”는 말로 다음 10년의 또 다른 성장을 예고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랑랑=1982년 중국 선양(瀋陽) 출생. 베이징 중앙음악원, 미국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1999년 앙드레 와츠의 대타로 시카고 심포니와 협연하며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베를린필·빈필 등과 협연한 최초의 중국인 피아니스트다. 2007년 포브스 중국어판은 그의 수입을 1억5000만 위안(당시 환율로 약 180억원)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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