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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드시던 수라상, 낙선재에 차렸답니다

제3대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원장을 창덕궁 인근 서울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만났다. 23~24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재현하는 전시회를 갖는다.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으로부터 궁중음식을 전수받은 황혜성 선생의 맏딸이다. [안성식 기자]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으로부터 전수받은 궁중음식이 왕가의 마지막 처소였던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서 재현된다. 23~24일 낙선재에서 열리는 ‘궁중음식, 낙선재로 돌아오다’를 통해서다. 낙선재는 순종의 계비인 순정효황후를 비롯해 고종의 아들 부부인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 고명딸 덕혜옹주가 여생을 보낸 곳이다. 지난 16일 이번 전시에서 궁중음식의 재현과 상차림을 담당하는 한복려(67) 궁중음식연구원장을 만났다. 한 원장은 궁중음식연구가 고 황혜성 선생의 맏딸이고 어머니인 황 선생은 낙선재에서 고종과 순종의 음식을 담당했던 고 한희순 선생의 제자다. 한 원장의 기억을 빌려와 입말로 재구성했다.

어머니가 처음 낙선재를 찾아가신 건 1944년, 당시 스물다섯 살 무렵이었어요. 일본여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숙명여전에서 조선요리를 가르치실 때였는데 막막했던 거지요. 그래서 무작정 낙선재를 찾아가신 거예요. 그곳에서 나이 많은 주방상궁을 만났는데 그게 한희순 선생이셨죠. 당시 궁녀들은 안국동 별궁에서 궁궐로 출퇴근을 했는데 한 선생이 주로 별궁에 나와계실 때 어머니께 이것저것 알려주셨나 봐요.

어린 저도 안국동에 곧잘 따라다녔답니다. 그때 맛본 표고버섯 된장찌개가 아직도 기억나요. 당시 궁녀들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돼 있어서 표고버섯 꼭지를 말려 된장찌개에 넣었거든요. 그게 제법 고기 씹는 맛과 비슷하답니다.

수라상
 저는 30대 후반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궁중요리에 입문했어요. 어머니 권유로 일본에 요리 유학을 다녀온 뒤랍니다. 어머니는 71년에 궁중음식연구원을 세우셨고 같은 해에 한희순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조선왕궁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지정이 되셨습니다. 2년 뒤에 어머니께서도 2대 기능보유자가 되셨어요.

저는 어머니가 2006년 돌아가신 이듬해에 3대 기능보유자로 지정이 됐습니다. 서울시립대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저는 늦깎이에 궁중요리를 시작했지만 식품공학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땄답니다.

 낙선재야말로 제가 이전부터 꿈꿔왔던 장소예요. 이건 전시회 안내서인데요. 여기 낙선재 월문 앞에 차려진 수라상 좀 보세요. 과연 궁중음식의 본거지답지요.

 저는 궁궐이 구경만 하고 휙 지나가는 곳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원해서 궁궐에 입혀줘야지요. 낙선재의 경우 조선왕가의 애환이 담긴 곳이에요. 저는 음식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해주렵니다. 물론 요즘 사람들에게 ‘궁중음식이 최고다’라고 이야기하진 못해요. 우리 식생활이 달라졌잖아요. 하지만 궁중음식의 으뜸이 신선한 식자재였듯, 바쁘다고 가공식품만 먹는 요즘 사람들이 좀 걱정스럽습니다.

 이번 전시기간에 낙선재에 차릴 음식은 어머니와 한희순 선생이 57년 함께 저술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考)』를 참고했습니다. 그 책에 나온 요리법, 상차림을 따라 낙선재 안에 전시해 놓을 거예요. 고종이 낙선재에서 수라를 받던 모습도 재현할 겁니다. 궁중 잔칫상에 올라갔던 음식들을 만드는 법도 알려드릴게요. 구절판과 다식, 곶감꽃, 잣솔 등이지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창덕궁이 이곳 연구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데요, 그런데 이 연구원 안에도 낙선재가 있답니다. 음식을 통해 즐거워한다는 뜻에서 착할 선(善) 대신 음식 선(膳)을 붙였거든요. 창덕궁 낙선재를 본받고 싶었기 때문이죠. 드디어 그 낙선재로 돌아가 수십 년간 지켜온 궁중음식을 선보일 수 있게 됐네요.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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