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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스코틀랜드 투표 결과의 의미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연합왕국(United Kingdom), 즉 영국은 넉넉한 표차로 살아남았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일부로 남게 됐다. 여왕의 공식 칭호 또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기타 해외 영토로 이루어진 연합왕국의 여왕, 영국연방의 수장이자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전하’로 유지될 것이다. 숨가쁘게 긴 호칭 안에는 오랜 안정의 역사가 담겨 있다. 안도감이 손에 잡힌다. 파운드화 가치는 반등했고, 모든 것을 걸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한숨을 돌렸다.



 스코틀랜드 유권자의 55%가 독립에 반대했다. 이번 투표는 마침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된 상황에서 치러졌다. 민주주의는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 지역에서 사산아(死産兒)가 됐다. 미국에서는 불화와 반목으로 마비됐다. 점점 더 돈에 순종하는 모습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부와 달리 우물쭈물하는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성장이나 불평등 해소를 이룩하지 못한 채 21세기의 문제아로 전락했다.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상기시켜줬다. 참여율이 높았다. 각 정파와 정파의 지지자들은 서로 의견이 달라도 정치적 예절을 지켰다. ‘찬성(Aye)’과 ‘반대(Nae)’는 투표가 끝나고 함께 맥주를 마셨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의 지도자 알렉스 샐먼드는 이번 주민투표를 두고 “민주주의적 과정의 승리”라 표현했다.



 스코틀랜드 사람 5명 중 2명 이상이 독립을 지지하는 표를 던졌다. ‘찬성’ 투표자 중 다수가 청년이거나 저소득자이거나 청년 저소득자였다. 런던이 누리는 이기적인 호황과 영국을 통치하는 보수당 특권층에 대한 소외감을 보여준 것도 이번 ‘민주주의적 과정’의 또 다른 의의다.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상 유지를 희망한 것도 아니다. 선거 결과를 존중한다면, 캐머런 총리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스코틀랜드와 다른 지역에 파격적으로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 기술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기술은 2500년 전 도시국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우리 일상에서 구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게 민주주의의 미래다.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 지방에 분리독립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지방들로 구성된 연합국가는 투표를 거쳐야 연합이 더 강해졌다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다.



 관용과 양식(良識)은 영국의 반석을 이루는 가치다. 일전에 BBC 라디오 방송을 들었는데, 스코틀랜드 주민투표에 대한 뉴스 다음에 나온 것은 중국이 분리주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한 저명한 위구르 학자에 대한 소식이었다. 분리주의는 중국에서 사형 판결을 받을 수도 있는 중죄다. 중국 정부의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을 비판한 일함 토티 경제학 교수는 사실 한족과 대화를 주장해온 온건파로 분류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온건한 분리주의자들도 운이 좋아야 사형을 피하고 징역형을 살게 된다.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의 이 사례는, 스코틀랜드 투표에 내포된, 민주주의는 수호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을 보여준다. 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결코 하찮은 게 아니다. 투표가 곧 자유다. 계몽주의 시대를 주도했던 스코틀랜드는 우리에게 시의적절한 교훈을 안겨줬다.



 우리 가족은 전후 영국으로 이민을 왔다. 대영제국이 축소되던 때 각 대륙에서 영국으로 되돌아가는 역이민의 시대였다. 영국에 돌아온 이들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나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고모할머니 벳시 트롯우드의 품으로 돌아와 집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할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새로 영국에 합류한 이들을 향한 편견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지는 자유주의적인 나라의 전통이 더 강했다. 이번 투표 결과도 관용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름다운 런던 리젠츠 공원을 거닐며 이슬람 사원의 높은 뾰족탑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정말 그토록 복잡한 걸까. 신앙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믿음을 인정하고 공동의 이상을 발견할 수는 없는 걸까. 가끔은 가능하지만 수백 년이 걸린다. 스코틀랜드가 포용성 있는 정체성을 유지하기로 한 날, 영국의 이슬람교 지도자·단체·신자 100여 명은 영국 억양의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요원이 미국인 기자를 참수한 만행에 대해 “경악과 혐오를 느낀다”는 성명서를 냈다. 그야말로 의미 깊은 날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캐머런 총리에게 또 다른 교훈을 안겨줬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내에서 유럽연합(EU)을 가장 열렬히 지지한다. 애초 독립을 원한 이유 중 하나도 잉글랜드 보수파의 비위를 맞추고자 EU 탈퇴를 언급한 캐머런에게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캐머런은 재선에 성공할 경우 EU 탈퇴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주민투표의 승리가 캐머런의 입지 강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승리를 거둔 합리주의와 경제적 이익, 관용, 개방성, 다양성과 문화적 통합주의는 유럽 속의 영국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확히 할 때가 왔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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