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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워싱턴의 국화파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두 달 전인 8월 19일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이곳에서 열린 ‘과거사와 동북아의 발전’ 세미나에선 데니스 블레어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이날 참석한 미 행정부의 전직 인사로 최고위급이었다. 블레어 전 국장은 역사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정치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야스쿠니신사 방문이건 독도 또는 다케시마 방문이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정치지도자의 행보는 신중하고 세심해야 한다는 제언에선 맞는 애기인데 어째 비유가 떨떠름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침략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게 일본을 자극하는 독도 방문과 상징성에서 같을 수 있을까. 제3자 입장에서 봐도 독도는 한·일 양국의 문제이지만 야스쿠니신사는 주변국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다. 사사카와(笹川)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블레어 전 국장은 지일파로 알려져 있다.



 이보다 앞선 그달 13일 브루킹스연구소. 스트로브 탤벗 소장이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하다 지나가듯 ‘워싱턴의 국화파’를 언급했다. 부상하는 중국이 국익 추구를 앞세우는 단호한(assertive) 국가인지, 이를 넘어서는 공격적인(agressive) 국가인지를 설명하다 중국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기류까지 함께 분석하면서다. 그는 느릿하게 “이 도시엔 국화파(the chrysanthemums)라고 불리는 분들이 있다. 워싱턴에서 국화파는 평생을 일본 연구에 집중했던 외교관이나 싱크탱크 연구자들”이라고 슬쩍 꺼냈다. 미국의 학계와 국무부 외교관들로 구성됐던 일본 전문가 모임인 ‘국화클럽’과 같은 맥락이다.



 굳이 국화파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워싱턴 조야에 작동하는 일본의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한 싱크탱크의 수장은 “최근 일본을 찾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 피로증’을 거론해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 점잖게 표현했지만 쉽게 말해 한국이 과거사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바람에 피곤하고 불쾌하다는 반응이 일본 측에서 계속된다는 얘기다.



 지난 18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7회 ‘서울·워싱턴 포럼’에서 실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도쿄에 있을 때 ‘왜 갑자기 (위안부 이슈와 같은) 전쟁의 유산이 등장했는지, 서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한국이 밥상을 차린 모임에서도 일본 측 입장이 전달된다.



 각국이 국익을 위해 돌진하는 워싱턴 민간 외교의 현장에서 국화파가 등장하는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력과 인지도를 앞세운 일본의 외교력 앞에서 한국 외교가 어떻게 국익을 펼칠지는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일본과는 과거사 외에 협력해야 할 공통 현안도 많다. 한쪽에선 협력하면서 다른 쪽에선 무궁화파를 키워야 하니 한국 외교가 갈 길이 멀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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