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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조 교육감, 천천히 돌아가세요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한국인의 마음에 타협이란 단어는 아예 소멸됐을까? 조석에 부는 환절기 바람을 신선하게 맞고 싶은 작은 기대를 사정없이 부숴버리는 것은 사회 전역에서 발발하는 그악스러운 행태들이다. 야당 대표는 탈당!을 발했다 다시 접었다.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장은 대리기사를 폭행하고 붕대를 감았고, 층간소음에 격분한 젊은 가장은 인분을 뿌렸다. 쌀 관세 문제를 다루던 의원실에 농민들은 고춧가루를 뿌렸다. 아무리 무노동 국회라지만 극한 행동이었다. 조희연 교육감에게 자사고는 공공의 적이었다. 개혁보다 절멸(絶滅)을 택했다. ‘공교육 살리기’ 극약 처방이다.



 5년 전 ‘공교육 살리기의 총아’로 탄생한 자사고는 이제 ‘공교육 죽이기의 주범’으로 몰렸다. 총아와 주범 사이 교육환경은 그대로다. 이런 극약 처방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양산했다는 쓰린 경험은 잊었다. 조 교육감의 확신대로 당장은 후련한 한 방일지 모르나 한국인의 명문교 열망을 감안하면 곧 또 다른 엘리트 학교가 출현할 것이다. 명문은 자본주의 사회의 운명적 짝이다. ‘폐지!’보다 수월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구제하는 타협적 묘안은 아예 불가능했나?



 필자가 탐문한 바에 따르면 교육 현장은 들끓는다. 아니 그동안 들끓고 있었다. 일반고와 혁신고는 모처럼 단비를 만난 듯 회생 기대에 부풀어 있다. 서울 상계동 소재 일반고 어느 교사는 좌절감이 맴도는 교실을 붙들고 고군분투하기가 너무 힘겹다고 했다. 빈곤층 자녀가 12%나 되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명문대에 30여 명을 보냈다고 힘줘 말했는데, 교육청의 간섭과 인색한 지원이 그나마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했다. 구로구에 인접한 어느 혁신교 교사는 거의 체념 상태였다. 참여형 수업과 체험학습을 개발해 학구열을 지펴도 우등생이 자사고로 전학해버리는 현장은 말 그대로 멘붕이라는 것이다. 수능 1등급이 1~2명에 그치는 학교에 안심하는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200여 개에 달하는 일반고와 혁신고를 괴롭히는 일상적 문제는 열악한 재정이었고 교사와 학생이 결코 떨칠 수 없는 공통 정서는 자사고의 후방부대라는 열등감이었다. 진보진영은 자사고를 부자들의 계급 재생산을 위한 전초기지로 규정했다.



 비난의 표적이 된 자사고는 할 말이 많다. 부유층 학생들을 위한 입시학원이자 불공정 경쟁의 주범이라는 원성에 야속한 마음이 앞선다. 사실 자사고가 공교육 활성화에 기여한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25개 자사고 중 강북과 변방에 위치한 학교가 3분의 2에 달해 강북의 상대적 박탈감을 덜어주고 강남 열풍을 식혔다. 1990년대만 해도 생활지도에 급급했던 교실은 진학 열망이 높아졌고 교사들은 다양한 교과 실험으로 생기를 찾았다. 등록금은 비싸다. 하지만 재정은 여전히 쪼들리는데도 교실에 활기를 불어넣고 대학 진학률을 높였으면 그 공적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우리가 그나마 공교육을 살려냈다!’는 자부심은 ‘일반고 회귀정책’으로 유턴한 조 교육감에 의해 물거품이 될 조짐이다. 어찌할까?



 제도 개혁에는 ‘만들기 정치’보다 ‘폐기 정치’가 더 어렵다는 고유명제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 창출된 이해집단을 밀어붙이면 그만큼 무리가 따른다. 전교조의 화력 지원과 조 교육감의 고집도 거세지만, 교육부와 자사고의 항전의지도 얕볼 수 없다. 결국 법정소송으로 번질 것이 뻔한 이 극단적 대치를 생산적 동맹으로 바꿀 지혜가 우리에게 없는 것인가? 필자는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는 조 교육감의 정책에 대찬성이다. 그러나 자사고 전면 폐기에는 반대다. 자사고 폐기가 공교육 황폐화를 중단한다는 그 기본 가설이 의심스러워서다. 자사고 도입 이전에도 일반고 육성계획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실패했다. 신비의 명약이 없는 한국 교육에서 조 교육감이 내놓은 새로운 청사진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거기에 5년 동안 자사고 정책에 성실히 따랐던 학부모, 학생, 학교재단이 입을 타격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천천히 우회하라, 그리고 ‘변신을 유도하라’가 답이다.



 조 교육감이 등장하기 전 이미 교육부가 올해 1월 7일에 답을 내놨다. ‘중학 성적 50% 이내, 2차 면접’ 선발 원칙을 ‘성적 제한 없는 선 지원, 2차 면접’으로 전면 전환한 것이다. 면접에 혹시 자사고의 꼼수가 개입될 소지가 있지만 건학 이념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일반고와 차이가 거의 없어질 이 기준조차 수용될 수 없다면 자사고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 조 교육감의 일반고 사랑과 교육부의 개선의지가 의기투합하는 것, 일단 낭비적 싸움을 끝내는 길이다. 더 중요한 현안은 고교 무상교육의 실현이다. 그런데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대통령 공약이었던 고교 무상교육은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교육 한국’은 대체 어떤 미래 학생을 키워내고자 하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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