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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작가이다 보니 여하간 책이 많은 편이고, 이를 그냥 놔두면 담쟁이 넝쿨이 어느새 성벽을 뒤덮어버리듯 소리도 없이 꾸준히 늘어나 나중에는 온 집안을 점령해버리기 일쑤다. 해서 몇 년에 한 번쯤 도서관에 기증하는 식으로 책들의 생태계 개체 수를 관리해주곤 하는데, 와중에 이십 대 초반에 열독했던 이념과 민주주의에 관련된 서적을 먼지 속에서 해후하게 되면 문득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회와 애틋함에 젖게 된다. 그때 그것은 책이 아니라 추억의 거울이자 옛 애인의 아픈 편지가 된다. 필경 그래서 그런 책들이 아직 내 서재 한 구석에 남아 있을 수 있는가 보다.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나 같은 날라리 대학생의 책장에도 저런 책들이 꽂힐 만큼 민주주의가 절박하고 불안한 시대가 무척 길고 고통스러웠더랬다. 아무튼 우리는 소위 ‘1987년 체제’로부터 산업근대화의 성공에 비견될 만한 정치민주화의 성공 또한 쟁취해낸, 거의 유일한 개발도상국이 될 수 있었다. 만일 이 뿌듯함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심장 없는 허수아비로 살아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심장이 얼마나 엄청난 피와 눈물의 대가들을 치루며 간직하게 된 빛나는 사랑이었던가를.

그러나 지금 우리의 아름다운 심장,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해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장은 야만적인 이념 대결이 호황이고, 국회 무용론은 입법독재 위에서 정색을 하고 있을 정도다. 사실상 대한민국은 정치심리학적으로는 늘 내전 상태라고 판단해야 옳다.

대체 우리는 왜 이런 한심하고도 살벌한 몰골로 전락하게 됐을까. 머지않아 ‘통일’이라는 해일이 몰아닥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차원이 다른 거대한 혼돈을 견뎌내야 할 텐데도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착각들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같은 이념이 아니라, 그저 방법론이다. 서로 피를 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공동체의 안위를 담보하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일뿐이다. 민주주의는 한 사회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만고의 진리가 아니며 도깨비 방망이는 더욱 아니다. 성숙한 민주주의자는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차선이 안 되면 차차선을 선택하며 인내한다. 장구한 독재시절을 거쳐서 그런지 우리는 민주주의를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만 보는데, 사실 민주적 질서와 그 작동원리는 절반 이상이 다름 아닌 ‘체념해주는 것’에 있다. 체념해주지 않기에 파국과 절망에 이르고 있다.

파시즘은 좌파니 우파니 하는 숙주를 전혀 가리지 않는다. 파시즘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질병이기에 변화무쌍하게 업그레이드되며 인간 자체에 흘레붙어 흑사병처럼 퍼진다. 이 참극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기에 황당하기까지 한데, 그것은 바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우스워서가 아니다. 전체주의라는 것이 워낙 신출귀몰하기 때문이다. 부주의한 민주주의는 삽시간에 전체주의로 변질된다. 전체주의는 재즈다. ‘무엇’이든 일단 재즈와 협연되면 그것은 그 순간 ‘무엇과 재즈와의 협연’이 아니라 ‘재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자는 자신의 정의(Justice)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한 사회의 좋은 스승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과정 속에서다. 민주주의는 지식과 지성으로 무장된 개인이 많을수록 파시즘에서 자유롭다. 우리는 우리가 무식하고 사리사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제발 순순히 인정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정신병원의 푹신한 소파가 아니다. 우리의 미친 궤변을 경청해 우리를 분석하고 치료해줄 정신과 의사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치료하는 자는 우리밖에는 없다. 현역 군인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가도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 그 둘은 모두 의회민주주의자들이 아니며 군인은 전장에서 싸우고, 혁명가는 거리나 감옥에 있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군인과 혁명가 같은 국회의원이나 그 지지자들이 너무 많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사랑이 아니라 성도착이 돼버렸다. 천국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의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누릴 수 있는 법이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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