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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근의 시대공감] 모난 탁자 위의 ‘비정상 회의’

미국 뉴햄프셔주엔 명문고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가 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졸업한 학교다. 1931년 재벌 자선사업가 에드워드 하크니스가 이 학교를 찾았다. 획기적인 새 교육방법을 고안하는 것을 조건으로 거액의 기부를 약속했다. 학교는 타원형 탁자에 교사 1명과 학생 12명이 둘러앉아 토론식으로 수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예수가 열두 제자에게 한 교육방식과 비슷하다.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며 토론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다. 하크니스는 만족하며 거액을 기부했다. 이것이 하크니스 테이블(Harkness Table)의 유래다.

학생들은 일방적인 강의를 듣거나 받아쓰기를 하지 않는다. 각자 철저히 준비하여 발표하고 토론함으로써 스스로 학습한다. 이 학교는 하크니스 테이블에서의 토론식 수업 결과, 졸업생의 30%를 아이비 리그에 진학시키는 명문고로 자리잡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2인, 총 13명으로 구성돼 있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 11층에는 113m²의 전원합의실이 있다. 대법원장실 옆방이다. 거기에는 원형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대법관들은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전에 원탁에 둘러앉아 치열한 법리 논쟁을 펼친다. 가까이에서 얼굴을 쳐다보면서 숨소리까지 들으며 의견을 개진하고 격론을 벌일 수 있는 구조다. 우리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 판결이 거기에서 생산된다.

전원합의체는 국민통합의 용광로이자 정책법원의 상징이고, 갈등과 분쟁의 최종 해결장이다. 대법원의 사건이 폭주하니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최적의 전원합의체 정신에 맞지 않다. ‘상고법원’을 신설하거나 대법원에 대법관 아닌 ‘대법원판사’를 두는 것이 13인의 전원합의실 원탁을 제대로 활용하는 길이다.

1980년대에 지지통신 서울특파원을 지낸 적이 있는 반한(反韓) 인사 무로타니 가쓰미가 최근 낸 문고판 『THIS IS KOREA』(산케이신문출판)는 세월호 참사의 사회문화적 배경, 즉 원인(遠因)과 이를 기화로 분출한 한국의 사회갈등을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한국의 약점을 파고든 책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장관을 능가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이 참석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가 법제도와는 달리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며, 총리는 일본의 관방 부장관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야유하고 있다. 한국의 실제 권력 라인은 대통령-비서실장-수석비서관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왜 이렇게 보였을까.

대수비의 회의 장면을 TV로 보면서 나는 두 가지를 아쉽게 생각했다. 첫째, 사각형 탁자에 나란히 마주 앉아 회의하는 모습이 너무나 어색하다. 옆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구조여서 토론식 회의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원탁으로 바꾸면 회의가 달라진다. 활발한 의견 개진과 실질적인 토론이 가능해진다. 대수비는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및 수석비서관 10명으로 정확히 13인이다. 13명은 원탁에 빙 둘러앉아 국정을 논의하기에 딱 맞는 인원이다. 하크니스 테이블이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같다.

둘째는 대수비의 공개 문제다. 언제부터인가 대수비에서 대통령이 중요한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누군가를 질책하는 장면을 외부에 공개하고 있는데, 이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청와대 내부의 은밀한 회의를 공개할 이유도 없다. 비서관은 어디까지나 뒤에서 일해야 한다. 그래서 ‘비서’이고 직급도 내각보다 낮다. 공식적인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중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헌법상 국정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국무회의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춘추관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통일준비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법률가인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배석자는 총리 이하 내각만이 아니었다. 비서실장 이하 비서진이 정확하게 양 날개를 이루어 배석하고 있었다. 비서진을 내각과 대등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물론 이 장면은 권력 운용의 메커니즘과 정치 현실로만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헌법기구 외의 비공식기구가 실권을 갖는 것은 내부에서는 몰라도 겉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위험하다. 내각은 없고 수석비서관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말할 때, 이런 것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헌법이 다스리는 법치국가다.


황정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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