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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개인 일탈” 의미 축소 … 외부선 “내부 붕괴일 수도”

다른 판사의 판결을 공개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의 글에 대해 사법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인 양승태 대법원장. [중앙포토]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올린 글을 놓고 사법부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대법원은 “금기(禁忌)를 깬 사건”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 ‘원세훈 판결’ 비판 이후 법조계

지난 12일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에서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서울중앙지법의 (무죄)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썼다. 재판장인 이범균(50·21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심사를 목전에 앞두고 입신영달에 중점을 둔 ‘사심’이 가득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 바깥에 있는 법조계 친구들조차 얼마나 큰 사건인지 모른다. 법원을 둘러싼 잡음이 많다 보니 으레 있는 일처럼 생각하지만 법원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사건을 놓고 법조계 안팎의 의견은 엇갈린다. 고위법관 출신들은 “사법부 독립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일탈행위”란 의견이 많지만 소장판사들과 법원 바깥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사회 갈등의 최종해결 역할을 해야 할 사법부의 보신주의나 법원 내부의 소통부족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법부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김 부장판사의 행동이 정치적 성향을 내포한 데다 그동안의 금기를 깬 것으로 판단한 데서 비롯됐다. 법관윤리강령 4조5항은 ‘법관은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법원 고위간부는 “평석(評釋·학술논문 등으로 다른 법리적 견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비난에 가까운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스스로 판사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대법 “김 판사, 스스로 독립성 부정”
김 부장판사와 함께 법무관으로 일했다는 지방법원 A부장판사는 “법무관 시절에는 활달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법관 임용 후에도 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법리에 자신감을 갖는 편이었다고 들었다. 소식을 못 듣고 있다가 재작년 ‘횡성한우’ 판결 사건 때 ‘이 친구였구나’ 하고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A부장판사의 기억대로 비교적 조용한 판사생활을 하던 그가 세인의 이목을 끈 것은 2012년부터다. 김 부장판사는 자신이 항소심을 맡았던 이른바 ‘횡성한우’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자 코트넷에 “대법원이 교조주의(敎條主義)에 빠져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며 반발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횡성에서 2개월 미만 키운 뒤 도축한 소는 횡성한우가 아니다”라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명확한 규정이 없는데도 2개월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유죄판단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원심을 파기했었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서면경고를 받았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함께 근무했던 B부장판사는 “조용했지만 자기 고집이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지만 법리에 있어 자기 견해가 강한 편이었다”며 “횡성한우 사건 이후 주변에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어긋나면 대화나 토론으로 풀기보단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는 편이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법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넘었지만 해당 법원장의 징계청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최근 “법원이 신뢰를 얻기는 어렵지만 국민들의 믿음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이번 사태가 법원 조직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일탈’이라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사법부 전체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며 “다만 사회적 파장과 충격을 감안해 김 부장판사 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뇌부 ‘보신주의’에도 비난 목소리
젊은 판사들과 법원 바깥에선 조금 다른 기류가 흐른다. 임관 5년째를 맞는 수도권 지방법원의 C판사는 소통의 부재를 말했다.

“사법부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다. 그런데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눌 기회는 별로 없다. 일하다 보면 새벽에나 퇴근하기 일쑤지만 선후배 법관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대화할 시간이 없다.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직장인이 될까 두렵다.”

C판사는 “법관들이 주변과 소통하지 못하면 독선의 덫에 빠지거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하기보다 언제든 일탈의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 수뇌부의 ‘보신(保身)주의’를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합의부 배석판사로 있는 D판사는 “사회 갈등이 점점 첨예해지고 있는데 갈등의 최종해결 역할을 해야 할 사법부가 최근 들어 ‘무난한’ 판결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D판사는 “법관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며 “사법부가 권력과 여론의 향배에 따라 좌고우면하거나 조직보호를 위해 어중간한 결론을 내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젊은 판사가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법원 바깥에선 대법원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대법관 출신의 한 원로 법조인은 “부장판사급 법관이 사법부의 금기를 깬 것은 단순히 개인의 불만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며 “사법부는 내부 구성원과의 합의도 이뤄야 하지만 사회 구성원과의 소통에도 힘써야 하고,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법원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아니라 내부의 붕괴로 무너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도 “사법부가 같은 학교, 같은 시험, 같은 경력으로 유지해 온 통일성에 집착할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법관 출신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영환 교수는 “법관으로서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임엔 틀림없지만 국민들의 의견을 일부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법부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튀는 판결, 튀는 판사가 마치 사법부의 권위를 무너뜨릴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조직을 긴장시키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긍정적 역할이 있다”며 “어차피 법원은 50%의 당사자에게는 욕을 먹게 돼 있다. 100점을 맞으려 하지 말고 51점만 맞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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