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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동독 지도층 배제 … 주민에겐 자치 개념 심어줘

최정동 기자
통독 후 구 동독 지역 지방정부를 관장하던 엘리트층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독일 정부의 큰 숙제였다. 모두 다 들어내면 행정기능을 충당하기 어렵고, 그대로 두자니 인적 청산이 곤란해질 판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회 의원인 카이 아부샤트(45·사진)는 “동독 시절 정부에 매우 깊게 연루돼 있던 인물이 통일 독일 지방행정의 지도책임을 맡는 건 배제돼야 했다”고 말했다.

[통일 대비 지자체 역할 세미나] 독일 베스트팔렌 주의원 카이 아부샤트

그는 1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 대비 지방행정체계 구축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과제’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해 통독 후 지방정부의 통합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 행사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원장 이승종)과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한국사무소 대표 라스 안드레 리히터)이 공동 주최하고 중앙SUNDAY가 후원했다.
그는 “통일 이후 체제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분단상황보다 더 큰 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며 지방행정체계의 통합을 미리 준비하라고 권했다. 그는 베스팔리카시 부시장을 지낸 뒤 현재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회 의원으로 지방자치분과 소속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 서독과 동독의 행정구조는 어떻게 달랐나.
“서독이 각 지역의 자치성을 존중하는 데 반해 동독은 철저히 중앙집권형이었다. 서독은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연방주의 국가다. 연방이 연방상원이나 연방의회와 같은 기관을 통해 국가 전체를 위한 입법기능을 수행한다면 전국의 16개 주(州)는 각각의 고유성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건 최하위 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다. 형식적으로는 주에 속하지만 ‘게마인데는 법률 내에서 자기 책임하에 지역의 사안을 다룰 권한이 보장되어 있다’는 독일기본법 28조 2항에 의거해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게마인데는 시·군·구와 같은 기초단체인 듯싶다.
“독일엔 ‘보충성의 원칙’이란 게 있다. 즉 하부 단위에서 스스로 조정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상위 행정단위에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극장이나 박물관을 운영할 것인지, 건축 개발에서 어떤 지역을 제외시킬지 등은 철저히 지자체 스스로 행하고 중앙정부의 개입을 차단토록 돼 있다. 시민의 욕구가 무엇인지 현장이 더 잘 알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독은 어떠했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면서 동독은 57년 지방자치라는 개념 자체를 폐지했다. 동독에는 주가 아닌, 14개의 구역(Bezirk)이 있었는데 자치권을 갖지 못했다. 읍·면·시와 같은 지방 행정단위는 국가행정의 최하위 기관에 불과했으며 유치원·문화시설·체육시설 등 서독에선 지자체 영역에 속하는 분야가 동독에선 국영기업에 넘겨졌다. 이들 기관은 사회주의 통일당의 정치적 간섭을 받거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 그렇다면 통일 과정에서 파열음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90년 독일 통일은 하나의 완전체 국가를 새로 건국하는 게 아니었다. 동독이 서구화된 서독에 가입하는 형식이었다. 서독의 법적·행정 시스템을 동독에 이식시켰다는 얘기다. 행정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도 어려웠지만 더 힘든 건 마인드였다. 이전까지 동독 지방 공무원은 중앙정부의 지시에만 따라 움직이지 않았겠나. 그들이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주적 서비스를 한다는 건, 그야말로 엄청난 혼란이었다.”

- 그 과정에서 동독 정부에 깊게 연루된 인물을 배제시킨 건가.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면서 구제체에 협력했던 이, 특히 행정기관의 대표로 정권에서 밀접하게 활동했던 이를 새 행정체제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했다.”

-배제의 구체적 기준이 있었나.
“분명한 기준을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개인별로 놓고 판단해야 했다. 다만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지도자적 책임을 수행했던 이, 예를 들어 최고위 행정수뇌라든가 특정 파트의 장(長) 등은 제외시킨 반면 그 아래 일종의 동조자라 할 수 있는 일반적인 행정인력은 흡수했다. 이들은 행정기구의 연속성을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이다.”

상위 몇 퍼센트까지 제외시켰는지, 어떤 기관장이 해당되는지 등 세밀한 배제 과정을 듣고 싶었지만 답변은 원론적 수준에 머물렀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교수는 “우리로 말하면 과장 레벨까지는 다 잘랐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동독 핵심 인사를 배제시킨 자리에 서독 행정인력이 갔을 텐데 동독 지역주민과 마찰은 없었나.
“각 지역마다 특징이 다르니 일괄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내 마을을 내 손으로 이룩해 만들어보자’는 지역자치의 개념을 전파하는 게 중요했다. 서독 인사들의 역할은 그거였다. 서독이 우월하니 동독을 가르치겠다는 사고는 위험하다. 서로의 특성이 있다는 걸 존중하고,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자치의 필요성과 혜택을 동독 주민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통일 이전 무엇을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하나.
“교류다. 동·서독 도시 간엔 자매결연이 많이 있었다. 86년 서독의 자를루이와 동독의 아이젠휘텐슈타트가 첫 공식 파트너십이었다. 이후 89년까지 98개 도시의 동·서독 자매결연이 이뤄졌고, 통일이 진행되면서 90년 10월에는 그 수가 무려 854개에 이르렀다. 서로 다른 두 도시 주민들이 음악이나 스포츠대회 등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게 됐다. 상호이해의 폭을 크게 넓힌 것이다. 이게 통독 후 이질적인 행정구조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거부감을 없애는 초석이 됐다.”

-팽팽한 군사적 대치상황에 있는 남북한에선 통일 이후의 지방행정체제를 구상하는 게 먼 얘기처럼 들린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이 남녀 사이의 끝은 아니지 않은가. 결혼하고도 맘에 안 들면 이혼하듯, 세밀한 통합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통일은 깨지기 쉬운 껍질에 불과하다. 아직은 통일이라는 화두에 붙잡혀 통일 이후까지 내다보지 못하겠지만 통일이란 느닷없이 올 수 있으며, 통일 이후 체제를 안정화시키지 못하면 분단상황보다 더 큰 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 그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국가의 세포라 할 수 있는 각 지자체와 그 안에 속한 지역 주민이 매끄럽게 섞이는 게 필수적이다.”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엔 아부샤트 의원 외에 한부영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대외협력단장과 레탄차우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국장이 기조 발제를 했다. 지크프리트 헤어초크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동아시아지역본부장이 축사를 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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