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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친구처럼 … 발뻗고 즐기는 ‘글로벌 열린 음악회’

1 프롬스의 메인 행사장인 로열앨버트홀. 빅토리아여왕의 부군인 앨버트공을 기리기 위한 공연장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1층 앞자리를 입석으로 만들어 800명의 청중에게 당일 공연 직전에 표를 판다. 2 로열앨버트홀의 외부 모습. 3 프롬스 마지막 날인 13일 저녁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프롬스 인 더 파크’. 공원 잔디밭에 의자 등을 가져와 먹고 마시면서 편안하게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즐기는 행사다. 4 올해는 뮤지컬 ‘메리 포핀스’ 원작 탄생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관객들이 영국 국기가 새겨진 ‘메리 포핀스’ 의상을 입고 즐거워하고 있다. 5 지난달 로열앨버트홀에서 공연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모습. 오른쪽 끝은 예술 감독 정명훈씨, 왼쪽 끝은 생황 독주자 우웨이. [사진 Proms 페이스북·BBC/Chris Christodoulou]
‘본 공연 오후 7시 시작. 식전 공연 오후 5시부터. 입장은 오후 3시부터 가능.’ 지난 13일 영국 런던의 한 복판인 하이드 파크에 있는 ‘BBC 프롬스 인 더 파크(BBC Proms in the Park)’ 입구에 붙은 안내판이다. 세계 최대 클래식 축제인 프롬스는 올해 7월18일부터 9월13일까지 58일에 걸쳐 90개 이상의 공연·행사를 펼쳤다. 9월 둘째 토요일에 벌어지는 마지막 날 공연은 야외공연과 실내공연이 동시에 벌어지는데 이날 찾은 곳은 런던의 야외공연장이었다. ‘프롬 라스트 나이트(‘프롬 인 더 파크’의 애칭)’로 불리는 야외 공연은 런던뿐 아니라 벨파스트, 스완지 등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올 119년째, 세계 최대 여름 클래식 축제 ‘BBC 프롬스’

런던 공연 하나만 해도 5만 명 이상의 관객이 입장하는 초대형 무대다. 오후 3시쯤 도착했는데도 줄은 이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3시 정각에 맞춰 공연장 문이 열리자마자 진풍경이 벌어졌다. 입장한 관객들이 너도나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입구에서 무대까지 달려도 5분이 넘게 걸리는 널찍한 공간이었다.

입장한 관객은 가족·친구들과 함께 준비한 음식을 먹고, 와인·맥주를 마시며 가을 하늘을 즐겼다. 간이 접이 의자에 테이블까지 가져와 여유롭게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즈 등으로 상을 차린 가족도 적지 않았다. 담요를 깔거나 준비해온 간이 의자를 펼쳐 자리를 잡은 프로머(프롬스 관객)들이 계속 이어졌다. 잔디밭에서 열리는 피크닉이나 가족 야영장의 모습이나 진배없었다.

음식 차려놓고 국기 흔들며 환호
세계 최대의 여름 클래식 음악 행사라는 ‘BBC 프롬스’의 마지막 날 야외공연장의 자유로운 풍경이다. 단순히 클래식 음악만 즐기는 연주회가 아니라 이를 통해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찾는 축제의 모습이다. 프롬스는 단순히 영국인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세계인의 축제였다. 눈에 보이는 순으로 스웨덴·노르웨이·네덜란드·벨기에·독일·프랑스·브라질 등등 다양한 깃발로 관객들은 자신들의 출신 국가를 알리고 있었다. 일본에서 왔다는 한 부부는 곰 인형과 국기를 흔들어 눈길을 끌었다. 영국 요크셔 출신이라는 한 가족은 요크셔의 상징인 백장미 깃발을 무대 중앙에 내걸기도 했다. 그 옆에는 웨일스 출신의 관객이 붉은 용이 그려진 웨일스 깃발을 내걸었다. 두 자매가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모습도 보였다.

대중 가요와 재즈 등 온갖 음악이 범벅이 된 식전 공연이 끝나고 이윽고 본 공연이 시작됐다. 프롬스 축제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문화행사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흑인 소프라노가 고운 음색으로 자국 민요를 부른 뒤 이탈리아 테너와 함께 오페라와 뮤지컬의 아리아 이중창을 선뵀다. ‘피시맨 프렌즈’라는 이름의 남성 중창단이 나와 굵은 중저음의 화음을 선보였다. 곳곳에서 감탄사가 이어졌다.

경쾌한 자메이카풍의 음악이 나오자 관객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춤을 추며 리듬을 즐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노동력이 부족하자 중남미 서인도 제도의 일부인 자메이카에서 대규모로 이민자들을 받았다. 이들은 노동력과 함께 문화도 영국으로 가져왔다. 이를 통해 서인도제도의 흑인문화는 영국 현대문화의 일부가 됐다. 서로 다른 문화가 결합해 새로운 즐거움을 만드는 문화 하이브리드(혼성)의 전형이다.

뮤지컬 ‘메리 포핀스’ 50주년을 맞아 메리 포핀스 특집행사도 꾸며졌다. 시민이 음악행사도 즐기면서 영국 문화산업의 저력도 쌓는 행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장 뒤덮은 관객들의 ‘떼창’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관객이 모두 함께 노래 부르는 싱어롱 행사였다. 영국의 애국적 노래가 주류였다. 주요 노래는 프로그램에 가사가 나오기도 했다. 전반부 클래식 공연은 BBC의 라디오3와 BBC2 텔레비젼으로, 후반부 애국주의 음악 공연은 BBC1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각각 전국에 생중계된다. 이 공연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통적으로 가벼운 대중적인 클래식 공연에 이어 영국의 애국주의적인 작품으로 이뤄진 이날 공연은 후반부에서 가장 영국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후반부 공연에선 애국주의 작곡가 엘가의 행진곡이 ‘희망과 영광의 땅(Land of Hope and Glory)’이라는 가사와 함께 불리고, 헨리 우드의 ‘영국 바다의 노래 환상곡’으로 이어진다. 실내 공연이 열리는 로열앨버트홀과 대형 화면으로 연결해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실내·야외 공연장 양쪽의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시인 제임스 톰슨(1700~1748)이 작사하고 작곡가 토머스 아른(1710~1778)이 곡을 쓴 ‘지배하라, 브리타니아여(Rule Britania!)’라는 곡에 이르면 공연은 절정에 이른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따라 부르는 것은 물론 리듬을 타고 너도나도 깃발을 힘차게 흔든다.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은 물론 붉은 십자가의 잉글랜드 깃발, 푸른 바탕의 흰 십자가가 그려진 스코틀랜드 깃발에 붉은 용이 그려진 웨일스 등 영국을 이루는 지역의 깃발은 물론 노르웨이· 스웨덴·벨기에·네덜란드·독일 등 다양한 나라의 국기가 공연장 여기저기를 아로 새겼다. 1740년 당시 스페인 해군을 물리차고 해상제국으로 떠오르던 영국에서 등장했던 애국주의적인 노래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브리타니아(브리튼의 라틴어)를 제목과 가사에 넣어 두 나라의 통합도 상징한다.

친근한 뮤지컬 음악에서 시작된 싱어롱은 영국의 여러 애국주의적인 음악을 거쳐 국가인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로 끝났다. 후반부에선 곳곳에선 ‘더 퀸(the Queen)을 외치며 건배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영국을 사랑하라’는 행사가 아니라 ‘내가 이래서 영국을 사랑한다’는 고백이었다.

대중과의 벽 없앤 생활 클래식 진수
프롬스 축제는 클래식 음악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벤트였다. 클래식이 대중들이 어렵게 여기는 벽 높은 음악, 소수의 특정인들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오랫동안 친한 친구처럼 늘 함께 해왔던 음악임을 보여줬다. 누구도 스트라빈스키보다 비틀스를 사랑하는 대중의 기호를 천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음악은 듣는 이들이 좋아해야 그 생명이 유지된다. 실제로 ‘라스트 나이트’ 공연에선 재즈는 물론 스타 발굴 프로그램인 ‘브리튼 갓 탤런트’에 출연했던 스타들이 부르는 크로스 오버 음악, 컨트리 음악을 비롯해 아일랜드 탭 댄스와 결합된 인도 음악, 서인도제도 자메이카의 흑인 레게음악, 80년대 디스코 뮤직· 뮤지컬 음악, 남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뱃노래 음악 등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함께 사람들의 삶 속에서 함께 사랑 받아왔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것이 진정한 클래식임을 보여준 현장이었다. 기나긴 국제화의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온 영국 문화의 현주소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프롬스가 세계인의 축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자유로운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잘 차려입고 불편한 자세로 들어야 하는 음악이 아니라 편하게, 즐겁게 즐기는 자유형·방목형 음악행사라는 사실은 프롬스 생명력의 원천이다. 클래식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기는 놀이다. 그래야 비로소 클래식이 힐링의 도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마지막 밤 공연 지휘자인 핀란드 출신의 사카리 오라모는 “클래식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클래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수학이며 삶의 치료제”라고 말했다. 그는 “프롬스가 세계인의 축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객석을 가득 메워준 프로머(프롬스 관객)들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대중에게 외면당하는 예술은 그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다. 대중이 사랑하는 예술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한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 비틀스 음악이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런던=정지원 자유기고가 michaela94@hotmail.com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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