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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괴상한 변형 한복은 파격 아닌 고정관념의 산물

‘저고리 없는 한복’이라는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 피켓요원 의상(사진)은 개막식 전부터 네티즌 사이에 논란이 많았다. 이혜순·박술녀 같은 유명 한복 디자이너들도 이 의상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아시안게임 피켓요원 의상 논란

이혜순씨는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사(9월 17일자 12면 ‘Critics dress down modern hanbok’)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복의 저고리 길이, 치마와의 비례 등은 역사적으로 계속 변화해 왔지만 저고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 저고리 없는 변형 한복을 개인적으로 입을 수 있겠지만,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행사에는 적합하지 않다.”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 피켓요원 의상. [뉴스1]
익명을 원한 또 다른 유명 한복 디자이너는 한복 치마에 서구의 스트랩리스 드레스(끈 없이 어깨와 팔을 모두 드러낸 드레스)를 적용한 것을 가리키며 이런 말을 했다.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결합을 꼭 이렇게 문자 그대로 하는 식으로 해야 할까.”

아시안게임 개막식 중계에서 문제가 된 피켓요원 의상을 유심히 보니, 그 말이 정말 와 닿았다. 저고리 없이 어깨를 드러낸 게 선정적이라서 불쾌했다기보다, 한복과 서구의 이브닝드레스를 각자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고 상상력도 없이 피상적으로 합쳐놓은 것 같아 불편했다.

한복과 상관없는 보통 스트랩리스 드레스도 이브닝파티 용도이지, 스포츠행사 개막식 피켓요원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한복 치마로 이런 드레스를 연출하고, 거기에다 본래 정장용, 방한용 모자인 조바위와 본래 방한용인 토시를 추가한 모습은, 한복과 서구 이브닝드레스 모두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무관심의 산물 같다. 그리고 어차피 전통 그대로의 한복이 아니라면, 현대적인 옷에 한복의 선·색감·질감을 은근하게 적용하는 방법도 있을텐데, 그게 아니라 한복 치마, 조바위, 토시 등의 요소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파격적인 실험이 아니라, 마치 ‘한복을 현대적으로 변형하시오’라는 시험문제를 강박적으로 상정하고 거기에 제출한 1차원적 답안 같다.

햇빛 아래 정적인 공간에서 특히 아름다움을 발휘하는 한지를 아시안게임 개막식처럼 저녁에 열린 역동적인 야외행사의 옷 재료로 쓴 것도 어색하다. 이것 역시 한지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강박적 의무감에 대한 성급한 답 아닐까.

이런 식으로 국가에서 주최하는 행사를 위해 전통미를 현대화한 디자인이 어색한 결과를 낳는 것을 그전부터 많이 보아 왔다. 그에 관여하는 사람도 많아 디자이너 한 사람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시안게임 피켓요원이 무조건 치마 저고리의 전통 한복을 입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 피켓요원 의상만 해도 두 가지 이상의 대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전통에 좀 더 충실해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대응할 만한 조선시대 대규모 의례의 의상을 참고하는 것이다. 왕실의 진연에는 여인들이 그냥 치마 저고리를 입지 않는다. 내외명부 여인들은 겉옷으로 원삼을 입었으며, 무희들은 황초삼(원삼과 비슷한데 소매가 짧아서 안에 입은 저고리 소매가 드러나는 진노랑색 겉옷)을 입었다. 피켓요원들이 원삼이나 황초삼을 적당히 현대적으로 변형한 겉옷을 입었다면 아시안게임 개막식이라는 대규모 의례에 잘 어울렸을 것이다.

둘째는 개막식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피켓요원의 의상이 꼭 한복이거나 한복을 변형한 의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자체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것이다. 옷은 전반적으로 현대적 실루엣의 수트나 원피스로 하면서 의상 색깔을 고려청자의 비색으로 하거나, 분청사기와 청화백자의 멋들어진 무늬를 넣을 수도 있다. 조선 백자의 질감과 형태를 의상에 적용해서 기하학적 실루엣의 파격적인 옷을 만들 수도 있다. 꼭 한복이어야만 한국의 미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전통미를 현대화하려는 시도 자체는 좋다. 다만 그게 어색한 결과를 낳지 않으려면 역사문화적 맥락에 관한 연구가 좀더 있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소심한 변형이 아니라 아예 틀을 깨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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