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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노란 리본 뜻은 변함 없건만

“그 노란 리본 좀 떼면 안 돼?” 오랜만에 시골에서 상경한 스님이 건넨 첫마디다. 내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이 크게 느껴졌던가 보다. 그 스님을 만나기 전, 청운동사무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명절에 집에도 못 가고 길바닥에서 눈물로 보내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송편이라도 해다 주고 싶어 다녀왔다. 어머니 한 분이 손수 만든 리본을 말없이 다가와 내 가슴에 달아주었다. 침묵은 때로 수 많은 말보다 더 진한 이야기를 건네는 법, 노란 리본은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아픔의 상징이었다. 그런 것을 다짜고짜 떼라 하니 속이 상했다. 이처럼 간혹 노란 리본을 보고서 정치적 편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잊지 말자는 리본인데 말이다.

요즘 너나할 것 없이 보았다는 영화 ‘명량’을 나도 보았다. 같은 것을 보고도 각기 다른 감명을 이야기한다. 내 눈엔 단 12척의 배로 백병전을 치루는 스님들이 보였다.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승병들의 모습을 우리 역사는 기억한다. 사명대사 같은 분은 죽을지 모를 왜군 진지까지 찾아가 회담을 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8개월간의 노력 끝에 전란 때 잡혀간 3천여 명의 동포를 데려왔다.

종교계의 노력이 어디 이뿐인가. 3·1운동 때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또 눈을 돌려보면, 달라이 라마는 나라를 빼앗기고 세계를 유랑하는 티베트인을 대표하고 그들의 아픔을 위로한다. 비폭력과 자비·용서를 권유하면서. 지난달 다녀간 프란체스코 교황은 한국에 와서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정치적 중립을 논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리본은 그대로였다.

세상은 종교가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의 가치가 보편적 선을 실현한다 해도,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종교인의 역할이다. 왜군에게 살육당하는 백성들을 보고 그에 맞서 스님들이 칼을 든 것도 그런 이유였으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종교인들이 나선 것도 눈앞의 고통에서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것뿐이다.

제 아무리 스님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고 해도, 결국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진상 규명을 통한 재발방지 노력은 학자나 정치인이 했다. 율곡선생의 ‘십만양병설’이나 유성룡의 『징비록』만 봐도 알 수 있다. 3·1운동에 종교인들이 참여했다 해도 정작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구체화는 정치인이 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생각하고 구체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정치인이 할 일이요, 국가가 할 일이다. 종교인은 그저 고통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면 그뿐이다. 그러니 종교인들이 광화문에 나가 기도를 한다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을 두고 정교분리를 논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오히려 국민들의 마음을 대신해 슬픈 이들을 위로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는가.

알다시피 종교인은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다. 좌도 우도 정부편도 아니다. 오로지 약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면 된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아이들을 위해 재를 지내고 극락왕생을 비는 것이 종교인의 몫이요,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바로 종교인의 역할이다. 그러니 노란 리본을 달았다고 해서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석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남은 과제는 국가와 정치인의 몫이니까 말이다.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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