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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불금·치맥·핫·섹시 … 노동보다 격렬한 우리의 휴식

일러스트 강일구
최근 인문학 붐이 일어나면서 강의 무대도 다양해졌다. 주부에서 청년백수, 최고경영자(CEO)에 이르기까지 참여계층의 폭도 넓어졌을 뿐더러 주제도 각양각색으로 분화하고 있다. 얼마 전 한 단체에서 강의 요청이 왔는데, 주제가 ‘인문학에서 본 휴(休)테크’란다.

<3> 초조함은 나에 대한 죄

휴테크? 순간 당황했다. 이런 단어조합도 가능한가? 이 낱말은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휴식이란 보통 테크놀로지에서 벗어나는 걸 의미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문득 “인간은 행복조차도 배워야 하는 동물”이라는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대인은 휴식조차도 테크닉처럼 익혀야 하는 존재’가 된 셈이다. 덕분에 ‘휴식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음양오행론에 따르면, 일년이 사계절이듯, 하루도 봄·여름·가을·겨울로 이루어져 있다. 3시 반에서 9시 반까지가 봄, 9시 반에서 3시 반까지가 여름, 3시 반에서 9시 반까지가 가을, 9시 반에서 3시 반까지가 겨울이다. 봄과 여름엔 펼치고, 가을과 겨울엔 거둔다. 이것이 우주의 대섭리다. 사찰이나 수도원 등에선 아직도 이 리듬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보통 3시 반쯤 일어나고 9시 반쯤 잠든다. 노동과 휴식이 계절의 리듬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인들이 이런 스텝을 밟기는 참 어렵다. 하여, 24시간을 대강 세 등분으로 나누어, 8시간은 노동을 하고 8시간은 잠을 잔다고 치자. 그러면 남는 시간이 8시간이다. 이 시간은 각자의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된다. 노동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오락과 쇼핑, 혹은 자기계발 및 취미생활 등등.

오장육부 매끄럽게 하는 수면이 최고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활동들은 친교와 성찰로 압축할 수 있다. 즉, 타인들과의 소통이 하나의 축이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또 다른 축이다. 해서 다시 정리하면, 하루의 절반은 노동과 친교로, 나머지 절반은 성찰과 수면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휴식은 당연히 후자다. 잠들지 못하는 영혼처럼 괴로운 일이 있는가. 그것은 노동할 때보다 더 고역이다. 불면증을 병으로 취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몸의 기운이 탁해진다. 그런 상태로 노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스트레스 지수가 더더욱 높아진다. 또 그런 사람이 친교를 나눈다면? 소통이 될 리가 없다. 해서, 친교라기보다는 쾌락 위주의 만남을 하게 된다. 술·게임·섹스·쇼핑 등. 미리 말하지만 쾌락은 절대 휴식이 아니다. 유형에 상관없이 호흡이 과격해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꼭 환기해야 할 사항은 쾌락이냐 휴식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은 호흡과 유연성에 있다는 점이다. 숨이 거칠어지면 세포가 강직된다. 물론 노동을 할 때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럴 때 스트레스는 몸에 긴장과 활기를 불어넣는 기능을 한다. 문제는 그 강도가 지나쳐서 심하게 억압을 느끼게 되는 경우다. 그러면 오장육부의 공명상태가 깨지면서 각개약진을 하게 된다. 당연히 질병과 번뇌가 싹트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휴식의 정의는 간단하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숨결이 고르게 되고 근육이 부드러워지는 것, 오장육부의 기운이 매끄럽게 순환하는 것, 이런 활동을 일러 휴식이라 한다. 수면이 최고의 휴식인 건 그 때문이다. 솔직히 잠만 푹 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노동과 휴식은 낮과 밤, 문명과 자연의 교차에 조응한다. 그러므로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내 안의 자연과 교감하는 길이다. 그러니 잠을 제대로 못자면서 에콜로지를 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성찰 역시 마찬가지다. 호흡이 유연해지고 내 안의 자연을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낭송이 가장 좋다. 반야심경이나 주기도문, 사서삼경 등 인류의 모든 경전들이 다 낭송을 위주로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리의 울림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평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곧 영성이다. 따라서 고전을 낭송함으로써 내 몸과 우주의 감응을 야기하는 것, 이보다 더 좋은 휴식은 없다.

여기서 핵심은 내용이 아니라 소리와 파동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대기권에는 평균 7Hz에서 10Hz 사이의 주파수대의 공명이 유지된다고 한다. 이른바 ‘슈만공명’이란 것인데, 놀라운 건 “이러한 슈만공명의 주파수가 인간의 뇌파의 평균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서정록 『잃어버린 지혜, 듣기』). 이런 주파수를 가진 책들이 바로 고전이다. 낭송이 최고의 양생술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보다시피 우리 시대는 휴식이 노동보다 더 격렬하다. ‘불금’‘치맥’‘핫’‘섹시’ 등의 낱말들이 그 증거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현대인에게 가장 어려운 미션이 휴식이라는 것을. 현대인들은 잘 쉬는 것, 푹 자는 것을 가장 어려워 한다. 불면증의 만연과 우유주사 파동이 그 좋은 예다.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그렇게 어렵게, 비싼 값을 치르면서, 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해야 하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아닌게 아니라 소위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진 이들일수록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노동강도가 워낙 센 탓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일을 마친 뒤에도 쉬지 못한다. 밤거리를 헤매거나 술과 회식으로 몸을 더더욱 혹사시킨다. 심지어 뒤늦은 귀가 이후에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밤새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야동 아니면 카톡에 열중한다. 밤을 잊은 영혼들! 당연히 다들 아프다. 그렇게 살고도 병이 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노동시간이 많고 업무가 과중한 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해소해가면 된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도 쉬지 못하는 이 고질적 패턴은 대체 어떻게, 누가 해결해주는가. 오랫동안의 사회적 투쟁을 거쳐 노동시간을 줄인 다음에도, 미친 듯이 일해서 화폐를 증식한 다음에도, 성공의 대열에 들어 노후대책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도 사람들은 쉬지 못한다. 쉬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게 문제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쉬지 못하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그게 존재론적으로 얼마나 무능력한 것인지를 자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휴식은 연습과 훈련 필요한 법
『동의보감』에 따르면 사람의 수명은 호흡의 숫자다. 살아갈 날을 품부(稟賦)받는 것이 아니라 호흡의 숫자를 타고나는 것이다. 호흡수를 적게 타고났어도 그것을 잘 활용하면 오래 살 수 있고, 반대로 아주 많은 숫자를 타고 났더라도 급하고 거칠게 써버리면 수명은 짧아진다. 그러므로 양생은 다른 것이 아니다. 호흡의 수, 곧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의 숨결이다. 우리는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잠깐씩 숨을 멈추는데, 숨이 멈추는 이 휴지 때의 주파수가 슈만공명의 주파수대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앞의 책) 즉, 호흡 중에서도 휴지 상태가 우주적 리듬에 가장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흡이 길어진다는 것은 들숨과 날숨을 길게 하라는 뜻이 아니고, 들숨과 날숨, 그리고 휴지의 길이가 같아지는 삼중주를 만들라는 뜻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술과 섹스, 분노를 다스려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행위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삼중주의 리듬이 깨지면서 충동과 균열이 패턴화되어 버린다. 예컨대, 화(火)기가 치성해 무시로 열에 들뜬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가만히 있어도,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화가 나고, 화가 나면 술이 땡기고, 동시에 성욕이 동하게 된다. ‘묻지마 살인’이나 ‘묻지마 자살’, 혹은 각종 성범죄들도 원리는 비슷하다. 격하게 소용돌이치는 호흡을 오랫동안 누르고 있다가 순식간에 빵! 터뜨려 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을 멘붕에 빠뜨리는 엄청난 사건들도 결국은 호흡의 숫자가 결정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는 속도와 과열에 대한 주술을 멈추지 않고 있다. 더 빨리! 더 멀리! 혹은 미쳐라, 사랑해라, 달려라! 이젠 열정을 넘어 광기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언어들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니 잠시라도 쉬면 죽을 것 같다. 이것이 불안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지금 이 순간도 영혼이 잠식된 신체들이 도처에서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카프카는 말한다. “초조해하는 것은 죄다!” 누구에게 짓는 죄인가? 바로 자기자신한테다. 양생적 차원에서 특히 그렇다. 자신에게 휴식을 허용하지 않고 계속 뭔가를 하라고 들볶는 행위이므로. 『서유기』에선 좀더 근사하게 말한다. “고수는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르는 자는 고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휴식은 곧 평화다. 내 안에 있는 평화의 리듬을 일깨우는 것, 그것이 휴식이다. 평화를 맛보지 못하는데, 어찌 세계평화를 꿈꾸고 염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만약 休테크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그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절기상 백로(白露)도 지났고, 곧 추분이 다가온다. 바야흐로 가을의 절정이다. 여름의 무성한 기운을 안으로 갈무리할 때다.

발산에서 수렴으로! 이것을 일러 금화교역(金火交易), 곧 우주의 대혁명이라고 부른다. 우주는 매년 혁명을 치른다. 그래야 겨울을 거쳐 다시 봄을 맞이할 수 있으므로. 노동과 친교, 성찰과 수면으로 이어지는 매일의 리듬도 같은 이치다. 그런 점에서 가을은 휴식과 평화를 훈련하는 계절이다. 일상의 혁명도, 인생의 고수가 되는 길도 거기에서 비롯되므로.



고미숙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일기 3종세트』 『달인 3종세트』 『 동의보감 3종세트』 등.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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