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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걸레질·설겆이 … 인간개조 당하는 황제 푸이

1917년 7월, 베이징을 장악한 군벌 장쉰(張勳)은 푸이를 다시 황제에 추대했다. 두번째 황제 조복을 입은 푸이. [사진 김명호]
개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개혁을 하려면 인간부터 개조시켜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개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류 역사는 실패한 개혁자들만 양산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92>

신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자본주의가 체질에 맞는 중국인들을 탈바꿈시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개조에 성공한 사례를 만천하에 선전할 필요가 있었다. 1950년 8월, 전범관리소에 수용된 푸이는 특급 전범이었다. 누가 봐도 총살 감이었다. 자신도 소련에서 송환되면서 죽을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러나 중공은 푸이를 살려줬다. 대신, 특사로 풀어주는 날까지 9년 간 평민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켰다. 전직이 황제이다 보니 시키는 사람도 힘들고, 받는 사람도 힘들었다.

수용소 생활 1년 후, 생부(生父) 짜이펑(載灃·재풍)이 세상을 떠났다. 푸이의 담당자가 구술을 남겼다. “푸이는 친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슬퍼하거나 동요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한 방에 수용된 사람이 병으로 신음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수 천년 간 중국인들은 황제라는 이상한 동물에게 머리를 조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

전범 관리소는 취조도 병행했다. 자술서부터 요구했다. 검찰관이 기록을 남겼다. “푸이의 자술서는 거짓 투성이였다. 만주국 시절 푸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진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설득 시키기까지 4년이 걸렸다.”
푸이는 검찰관이 내미는 옛 신하들의 진술서를 보고 경악했다. “푸이는 잔인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다. 위선 투성이였고,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몽둥이로 때리고, 전기 고문과 물고문도 직접 했다. 항일 투사들을 직접 고문할 때도 있었다.”

별게 다 적혀 있었다. “푸이는 일만친선(日滿親善)의 제 1인자였다. 기록 영화를 보다가 일본 천황이 출현하면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미동도 안했다. 일본군이 중국의 도시를 활보하는 장면이 나오면 요란하게 박수를 쳤다. 일본이 무조건 투항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가관이었다. 내가 부덕해서 천황폐하께 큰 죄를 지었다며 자신의 뺨을 때려대며 통곡했다.” 전범 관리소는 푸이를 정식으로 체포했다. 푸이도 사실을 시인했다.

푸이는 서양의학을 믿지 않았다. 전통의학 지식은 해박했다. 중의(中醫)에게 전통의학을 전수하는 푸이(왼쪽). 1954년 4월, 푸순 전범관리소.
동북 3성을 소용돌이에 몰아 넣었던 한국전쟁이 끝나고, 국민당 잔존세력 소탕이 일단락되자 전범 관리소는 푸이의 개조를 위한 본격적인 교육에 돌입했다. 교육은 별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건 스스로 해결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옛 신하와 몸종들을 푸이와 한 방에 수용했다. 푸이의 일을 거드는 사람이 발견되면 엄하게 처벌했다. 환경은 인간을 변화시켰다. 푸이는 방 청소와 식기 세척을 직접 했다. 바느질과 빨래도 제 손으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밭에 나가 난생 처음 노동일을 하며 땀을 흘렸다. 대가로 종이 상자를 받았다. 별것도 아닌 물건이었지만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전통의학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서 환자들을 열심히 치료했다.

푸이 일행의 귀국과 전범 수용소 수용은 극비 사항이었다. 외부와의 접촉이나 서신 왕래도 불가능했다. 푸이가 애지중지하던 여동생들과 네번째 부인 리위친(李玉琴·이옥금)도 오빠와 남편의 귀국 사실을 몰랐다.

일본에 있던 푸제(溥杰·부걸)의 둘째 딸이 서신왕래의 물꼬를 텄다.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전범 푸제의 딸이다. 아버지의 행방을 알고 싶다. 귀국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소재를 알 길이 없다. 죽었다면 죽었다고 알려주고,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가족들에게 알려주는 게 도리다. 총리도 자녀가 있다면 내 말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편지만 주고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요구는 없다.”

읽기를 마친 저우언라이는 “그간 우리가 잘못했다. 이 애의 말이 맞다”며 전범들에게 서신 왕래와 가족 면회를 허락했다. 푸이는 네번째 부인 리위친의 안위를 궁금해했다. 소재를 파악해 달라고 요구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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