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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노순택 "수상한 시절에 수상한 작업으로 수상까지 했다"

사진가 노순택, 사진 = 김도훈 인턴기자
"사회가 썩어야 예술이 잘 된다. 서울은 많이 썩었기 때문에 예술이 잘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2014 올해의 작가’ 사진가 노순택
국가 권력의 시선 고발
분단이 만든 모순된 풍경 찍어
카메라의 무능하고도 교활한 속성 파헤친 전시로 호평

17일 오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노순택(43)은 백남준(1932∼2006)의 말을 인용했다. 노씨는 국립현대미술관의 '2014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국내 유일의 '국립' 미술관에서 1995년부터 매년 선정해 온 한국 미술의 대표 작가에 사진가가 꼽힌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20년 가까이 국가 권력의 모순을 쫓아다니며 고발하고 조롱하는 사진을 찍었던 노씨다. 소감은 이랬다. "수상한 시절에 수상한 작업으로 수상까지 했다."



그의 이번 전시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은 국민을 바라보는 국가 기관의 시선을 다루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따라다니는 카메라, 그 현장을 쫓는 작가 자신의 카메라의 시선이 중첩된다. '무능한 풍경'이란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풍경을, '젊은 뱀'은 다른 매체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뜨겁고 교활한 사진의 속성을 뜻한다. 최근 사회적 참사를 겪으면서 언론을, 사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작가의 자기 반성이 담겼다.



노씨는 분단 현실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 왔다. 오랜 시간 고착된 사실처럼 무심코 받아들여지지만 분단이 실은 우리 일상 가까이 있으며,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전시장은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북한 아리랑 공연, 용산 참사, 연평도 포격사건 등에서 그가 찍어온 수많은 사진들로 이뤄져 있다. 사건 현장의 풍경, 그곳의 애달픈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 이들을 찍었다. 때문에 전시장은 우리의 지난 20년의 압축판이자 한국 현대사의 증언록이다. 인화한 사진에 노씨는 단정한 손글씨로 짧은 글을 적어내려갔다. 거기엔 찍힌 사람들의 사연과 찍은 그의 사정을 담았다.





심사위원단은 노씨가 "사회적ㆍ정치적 이슈를 다루면서 카메라의 본질과 사진작가로서의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며, 성취도가 높고 현장의 격렬함에도 우리의 인식을 뒤트는 유머감각이 뛰어난 점이 인상 깊다"고 평했다. 심사엔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숙경 런던 테이트 아-태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구로다 라이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학예실장, 톰 트레버 전 영국 아르놀피니 현대미술센터 관장 등이 참여했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학보사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졸업 후 교수신문 등에서 일했다. 주류 미술계 밖에서 나타난 그는 이제 분단의 현실을 담는 드문 사진가로 국내외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ㆍ서울시립미술관, 독일 F.C.군틀라흐 컬렉션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개인 작업을 하는 모든 이들의 일차원적 문제는 ‘나의 이번 작업으로 다름 작업이 가능하게끔 하는 일, 즉 작업이 나를 끌고 나가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성과는 다행스러운 일이죠.”



평택 대추리 주민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밀양과 강정 주민 등 그의 사진에 찍힌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는 그는 평택 대추리에 용역 깡패들이 왔을 때 농민들이 볏짚을 태우며 저항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처절한 풍경이었는데, 인화지로 뽑아놓고 보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근사하더라. 사진은 얼마나 저열하게 근사한 것인가.” 세월호 참사 직후 “나같은 어중이 떠중이까지 가선 안 될 듯해서” 팽목항에 가지 못했다는 그는 요즘, 참사가 만든 우리네 기막힌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은 설령 누군가의 고통을 찍더라도 그것을 아주 근사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근사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노씨는 "나는 의심에 기반해 작업을 해 왔다. 사건의 극적 분수령이 아닌 그 전과 후를 보여줌으로써 감동과 설득을 배제한 채 보는 이로 하여금 사고하고, 석연치 않게끔 하는 사진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후 그가 남긴 메모는 이랬다. “저는 노순택이 아니라 모순택입니다……‘국가가 벌인 못된 짓들을 시시콜콜 쫓아다니며 욕을 해댄 작업’을 근사한 벽면에 걸고, 혹은 책으로 옮겨 당신의 눈에 띄도록 한 것이 저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모순이기도 했고, 모순되게도 미술의 세계에서는 모순이 아니기도 했습니다. 당신에게 그 장면들은 무엇이었습니까.”



◇전시는 11월 9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14'는 4인의 후보작가 전시다. 노씨 외에 구동희의 '재생길', 김신일의 '이미 알고 있는', 장지아의 '금기는 숨겨진 욕망을 자극한다' 등 4인 각각의 개인전이다. 연초에 후보 작가를 선정한 뒤 각 4000만원 상당의 창작 지원금으로 꾸린 전시를 놓고 심사해 최종 수상자를 결정하는 형태로 2011년부터 개편됐다. 미술관이 있는 서울대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키는 비틀린 구조물로 전시장을 채운 구동희,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간극을 탐구한 김신일, 몸ㆍ고문ㆍ욕망을 키워드로 금기에 도전한 장지아 등 4인 4색의 전시가 지금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형성한다. 02-2188-6000.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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