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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시오노 나나미의 '절호의 찬스'

박보균
대기자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77)는 자극이다. 그 감정은 극단을 오간다. 그는 『로마인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썼다. 그 작품들은 매력이다. 시오노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썼다. 그 글은 혐오다. 일본 잡지 문예춘추(10월호) 기고문이다.



 글 제목은 ‘아사히신문의 고백을 넘어서’다. ‘고백’은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1913~2000)의 자서전 논란이다. 요시다는 “군 명령에 따라 제주도에서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고 주장했다. 아사히는 요시다 관련 기사(1980~90년대)를 오보로 판단했다. 그리고 취소, 사과했다.



 시오노는 “유럽과 미국인들도 위안부 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됐으며 이런 변화는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기고문은 이렇게 단언한다. “인간은 부끄럽거나 나쁜 일을 했다고 느끼는 경우에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강조하는 성향이 있다. 반복해서 입에 올리다 보면 스스로 믿게 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술은 자기최면이라는 것이다. 그 판단은 위안부를 강제연행하지 않았다는 확신과 연결된다. 시오노 저서들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통찰을 추적한다. 그는 그 경험을 위안부 문제에 적용했다. 그 시도는 실패한다.



 위안부 증언의 본격적인 시점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위안부 할머니가 될 무렵부터다. 젊은 시절 할머니들은 과거의 상처를 숨겼다. 가족과 어른, 한국의 사회 정서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연륜은 내면을 달라지게 했다. 분노가 꿈틀거린다. 부끄러움은 뒤로 밀려났다. 분노는 용기를 낳는다. 폭로는 강제연행 당한 악몽의 탈출구다. 그 감정들은 인간성의 본질이다. 시오노는 연륜의 힘과 미묘함을 경시했다. 그의 인식은 편향과 오만이다.



 시오노 기고문에 긴급 제안이 있다. “네덜란드 여자도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야기(아사히 보도)가 퍼지면 큰일이다. 그 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자바섬 스마랑 사건이다. 1942년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은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다. 그곳은 네덜란드 식민지다. 일본군은 그 지역 네덜란드 여성들도 위안부로 동원했다.



 시오노의 조언은 늦었다. 네덜란드 하원은 “일본은 고노담화에 상충하는 발언을 하지 말 것”을 결의했다(2011년). 그 이야기는 유럽에서 퍼지고 있다. 네덜란드 시민단체(일본명예 부채재단)는 확산에 앞장선다.



 기고문은 “아사히 고백은 대처하기에 따라 절호의 찬스로 바뀔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공기 흐름을 바꿀 호기로 삼을 수 있을지는 국정담당자, 언론을 비롯한 일본인 전체가 고름을 짜낼 용기가 있는지에 달렸다”고 했다. 시오노가 심취한 마키아벨리가 떠오른다. 마키아벨리의 주요 언어는 기회와 결단이다.



 절호의 찬스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요시다 발언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어야 한다. 그것은 양심선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어진 폭로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육성 진술은 위력적이다. 요시다의 증언보다 결정적이었다. 아사히 오보 소동의 파장은 제한적이다. 요시다 증언이 빠져도 사실은 굳건하다. ‘강제 동원’의 진실은 헝클어지지 않는다. 절호의 조건은 충족되지 못한다. 고름을 짜낼 용기도 작동하기 힘들다.



 “신중과 인간미를 갖고 절제된 방식으로 진행해, 지나친 확신이 부주의하게 만들거나.”-마키아벨리의 『군주』(17장) 구절이다. 지나친 확신은 지적 탐욕을 낳는다. 시오노가 포착한 ‘절호의 기회’는 무산될 수 밖에 없다.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가와다 후미코(川田文子)의 『빨간 기와집』(1987년 간행)도 있다. 그 책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배봉기 할머니의 이야기다.



 아베 신조 총리는 아사히 사태를 활용한다. 우익 세력은 고노담화(1993.8)의 변경을 노린다. 하지만 고노담화는 요시다 진술을 반영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는 기억과 기록의 전쟁이다. 기억은 기록으로 전파, 보존된다. 한국은 기록정신에서 일본에 밀린다. 할머니들 구술은 나름의 짜임새를 갖고 있다. 그 완성도는 확장해야 한다.



 기록 전쟁은 세밀함을 요구한다. 그 전선에서 비분(悲憤)이 우선돼선 안 된다. 정치는 뒤로 물러서야 하다. 정치와 역사가 묶여 있으면 강개(慷慨)가 두드러진다. 사실과 진실의 추적과 축적 열정은 떨어진다. 아베 총리의 과거사 폭주는 멈추지 않는다. 그 대처는 강온을 겸비해야 한다. 정치와 역사, 정치와 문화는 나눠져야 한다. 그것이 혐한(嫌韓)세력의 확대를 막는다. 한류파의 재기를 도모한다. 역사전쟁은 열정과 세련미를 요구한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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