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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에 복무하는 노예로 전락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가 ‘역사의 이념-동서양의 역사관’을 주제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에서 강연한다. 대중에게 인문학을 알리고자 세운 ‘문화의 안과 밖(위원장 김우창)’의 33회차 강연이다. 26일 네이버 ‘열린연단’(http://openlectures.naver.com/)을 통해 무료로 강연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서양사로 석사를 마친 후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역사주의와 신문화사: 포스트모던 역사서술을 위하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역사이론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역사의 이념-동서양의 역사관’ 주제 강연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

이번 강연에서 김 교수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역사가들의 역사관을 비교함으로써 동서양의 역사 이념과 변천 과정을 살펴볼 예정이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B.C. 480~429)와 사마천(B.C. 145~86)을 위주로 강연을 풀어간다. 두 인물은 각각 서양과 동양에서 역사라는 서사를 처음 만들어낸 이들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각각 호메로스와 공자라는 ‘거인의 어깨 위의 난쟁이’라는 자의식을 바탕으로 역사를 썼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역사관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 차이가 만들어 낸 ‘나비 효과’를 통해 동서양의 확연히 다른 역사 이념이 만들어졌다.



‘서양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는 역사 서술의 목적을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후세가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동양 역사의 아버지’인 사마천은 역사 서술의 목적을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여 한 학파의 학설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즉, 서양의 역사 이념이 ‘기억(記憶)’에서 출발했다면, 동양의 역사 이념은 ‘천명(天命)’에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역사관의 차이는 그들이 존재했던 시대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우선, 호메로스가 ‘문학의 시조’라면, 공자는 ‘동아시아 철학의 태두’다. 서양에서는 문학에서 역사가 분리됐고, 동양에서는 경(經)으로부터 사(史)가 독립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헤로도토스의 역사 서술이 구술 문화에서 문자 문화로의 이행 과정에서 탄생했다면, 사마천의 역사 서술은 지배집단이 하늘과 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통신 코드였던 한자(漢字)의 발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서양의 경우, 고대엔 ‘티케(합리적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우연적인 사건이나 초월적인 운명)’, 중세엔 ‘신의 섭리’, 근대엔 ‘이성’이 역사를 추동하는 힘이었다. 근대의 ‘이성’이 탄생시킨 계몽사상은 역사를 교훈의 집합체에서 나아가 과거를 딛고 발전하는 진보의 개념으로 전환했다. 이로써 거대담론의 역사 이념이 출현했다.



하지만 근대의 거대담론으로서 역사 이념은 미래 역사의 진보를 위해 현재 인간의 삶을 희생할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에 복무하는 노예로 전락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20세기 말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가치에 주목하는 ‘미시사(微視史)’가 등장했다. 미시사는 거대담론의 해체를 통해 카오스 이론이 ‘나비 효과’라고 지칭한 것과 같은 ‘작은 역사들’이 촉발한 중대한 변화를 규명하고자 하는 역사학의 조류다. 또 1980년대엔 인간의 역사에 대한 사고의 지평을 우주의 차원으로 확대한 ‘빅히스토리(Big History)’가 세계 역사학계에 처음 등장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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