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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문제 삼아 공직 제한하는 건 위헌"

시대 거스르는 '신연좌제'



연좌제 역사와 전문가 해법
봉건시대 유물 … 국민통합 걸림돌
1894년 갑오개혁 때 이미 금지
"자기 잘못만 책임지는 게 법 정신"

대한민국 헌법 13조 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8일 연좌제 피해자에 대한 첫 국가 배상 판결을 내렸다. 1966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북한에 납치된 안학수(당시 23세·사망 추정) 하사의 동생 안용수(62)씨가 주인공이다.



 안씨는 형이 자진 월북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연좌제로 고통을 당해야 했다. 68년 고교에 입학한 뒤 매달 2~3번씩 ‘가족 동향보고’를 이유로 보안사 지부에 불려가 구타와 함께 ‘거꾸로 매달기’ ‘물고문’을 받았다. 이후 서울교대에 입학해 초등학교 교사가 된 다음에도 보안사 요원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등 사직 압력을 받은 끝에 3년 만인 80년 그만둬야 했다.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반복성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교장이던 아버지는 문교부 교재창 노무원으로 인사발령이 난 뒤 강제 사직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안씨의 피해를 인정해 “국무총리 산하 납북피해자보상심의위원회는 9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안씨는 “90년대까지 납북자 가족들은 감시를 받으며 살아왔다”며 “남북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연좌제는 국민통합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납북된 제헌의원 김상덕(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장)씨의 아들 김정륙(79) 전시납북국회의원유족회 회장도 “‘월북 좌익’의 아들이란 꼬리표 때문에 직업도 가질 수 없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가족이란 이름의 주홍글씨’로 불려온 연좌제는 왕조 시대 역모죄에 대해선 부모·자녀 등 가족을 함께 처벌한 데서 유래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죄인 본인 외에 친족에 대한 연좌 형률은 일절 시행하지 않는다”는 고종의 칙령으로 폐지된 뒤 공식 법 제도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좌익 및 부역자, 월북·납북자 가족들이 사실상 연좌제의 고통을 당하며 살아야 했다. 75년 제정된 사회안전법은 좌익사범에 대한 보호관찰제도를 도입하고 ‘요시찰 카드’와 동태 조사를 통해 가족까지 감시했다. 80년 5공화국 헌법에 “모든 국민은 자기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연좌제 금지를 명시했음에도 사상범 사찰 카드는 90년대까지 존재해왔다. 또 다른 연좌제의 흔적은 공무원 및 국영기업체 직원 등을 임용할 때 적용되던 신원조사제도였다. 국가정보원은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관련 규정을 삭제하기 전까지 ‘본인 및 배후 사상관계’를 포함시켜온 것이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80년 헌법에 연좌제 금지를 명문화한 데 대해 “당시 친일파 후손은 별 문제가 안 됐지만 월북·납북자·보도연맹 관련자 등의 자손이 공직 임용 금지 등 각종 불이익을 받는 문제가 있었다”며 "야당 제안으로 여야가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영 전 헌법재판연구소장은 “연좌제는 조선시대 사색당쟁 때 본인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죽이고 귀양 보내던 봉건시대의 유물”이라며 “자신의 잘못만 책임진다는 근대법의 자기 책임 원칙에 명백히 반하기 때문에 우리 헌법도 연좌제 폐지를 명문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은 “누구는 아버지가 친일파라서 또는 월북자라서 안 된다는 정서에는 문제가 있다”면서 “헌법으로 연좌제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가족을 이유로 공직 임용에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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