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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이문열 묻고 안경환 답하다





안 "검찰 역사 보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의구심 가질 만"
이 "우리 사회 분열의 밑바닥엔 대의제·다수결 원칙 실종"

이문열(이하 이):한국 사회가 불화한 모습이 울적한 심정이 될 지경으로 제게는 강하게 다가옵니다. 그 불화가 분노와 분열로 치닫는 상황이라 더 걱정인데요. 사회공동체가 이런 상태로 지속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늘 마음에 품고 있던 걱정거리라 안 선생에게 솔직하게 묻고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안경환(이하 안):오늘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그런 불화를 풀고 분노를 조금이나마 눅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7월에 장편대하소설 『변경』을 재출간하셨지요. 이 작가 작품은 언제 어떤 상황이든 정서적 애착이 갑니다. 2003년 이 선생 스스로 절판시켰던 작품을 손보아 낸 『변경』을 다시 읽으며 그 얘기가 제게 밀착돼온 것이 밀양이라는 특수지역에 깃든 공동의 추억 때문인 듯싶습니다.



 이:동갑이긴 하지만 제가 안 선배의 밀양국민학교 1년 후배지요. 아마도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이 같기 때문에 더 애틋했을 겁니다.



 안:사적으로 보면 우리 둘 다 아버지가 북으로 간 문제 때문에 자식으로서 겪은 일이 각기 상황은 다르다 해도 정서적 배경이 같은 셈이니까요. 1980년대까지 한국 역사를 ‘변경 이론’으로 설명하신 점에 처음부터 공감했어요. 우리를 세상 사람들이 진보와 보수로 나눈다 해도, 그래서 각자 극과 극으로 갈라져 걸어가고 있다 쳐도 우리가 합의 본 것이 있지요. 대한민국 역사는 그나마 성공한 역사라는 겁니다.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기에 이 나라는 계속 변하며 발전한다고요.



 이:그렇지요. 여기저기서 자꾸 불러내 우리 두 사람이 몇 번 대담을 했지만 크게 어긋난 일은 없었지요. 앞으로 더 괜찮은 나라가 될 것이라 낙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죠.



 안:세속적 평가로는 좌와 우, 극으로 갈린다 해도 우리 둘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늘 이 선생께 독자로서 열등감을 느껴왔고, 작가 혹은 예술가의 특권을 지닌 이로서 존중해줘야 한다는 선망을 지녀왔어요. 그래서 ‘이문열 작가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온다’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이:법학계 원로이시니 이 사회가 최근 보이고 있는 불일치와 분열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지, 원론적으로 궁금했던 점들을 여쭙고 싶습니다.



 안:법을 통한 성찰은 이 선생이 더 깊으시죠. 내가 더 낫다는 확신은 없어요.



 이:요즘 걱정되는 게 국회의 모습입니다. 대의제(代議制)와 다수결의 원칙이 실종됐어요. 근간에 보면 여와 야, 가릴 것 없이 대의제와 다수결 제도에 불복하는 모습입니다. 불일치가 반감으로 이어지고 그 적대적 관계가 불복으로 구조화되는 형국이죠.



 안:그런 느낌이 충분히 듭니다. 회복 불능으로 가기 전에 반전이 있어야 할 텐데요.



 이:최근 정권들에서 이런 불복이 더 완고해지는 모양새입니다. 정권이 출발하는 초장부터 나타나 말기까지 불안요소로 작용하니 큰일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탄핵으로 콧등을 까고 시작하더니 이명박 정부도 광우병 파동으로 시작해 5년 내 정신없이 돌아쳤죠. 이제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단단히 발목이 잡혔습니다.



 안:미리 전제할 것은, 한국 상황이 특수하다는 겁니다. 대의제나 다수결 원칙은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자유민주주의의 출발로 합의를 본 내용이죠. 의회 제도에서 다수당이면 다 하느냐, 하는 점에서는 영국이나 유럽에서 다소 유연하게 전향적으로 운영하는 추세입니다. 영국 의회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날을 잡아 오후에는 소수당이 발의한 내용을 먼저 심의하게 하는 소수 의견 조정의 길을 열어놨어요. 대통령제를 하는 미국에서는 건국 당시에 의회와 행정부를 분리하는 보완책을 썼죠. 영국을 따르다 보니 의회 제도가 다수가 횡포를 부리는 독재가 되더라, 해서 의회 권력의 일부를 떼 내 행정부를 만들었어요. 의회 제도가 발달 안 된 나라들에서 미국 제도를 수입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기자 ‘신대통령제’, 즉 대통령 중심제로 간 거죠.



 이:1960년대 한국이 받아들인 게 이 신대통령제 아닙니까.



 안:그런데 이 제도가 미국 밖으로 나가 남미나 아시아로 가서 독재가 되니 ‘죽음의 키스’라 부른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여당이 대통령 당(黨)이고, 의회 다수당이 되는 추세였죠. 다수당과 행정부가 당정협의회로 한통속이 되면 이 다수들에 대한 제동을 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래서 한나라당 때 국회의 직권상정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국회 선진화법이 나왔죠. 의회에 4년, 대통령에게 5년, 일정 권력을 줬으니 불복을 안 하는 게 좋지 않으냐, 적절한 운용의 타협을 가져올 묘는 뭐냐는 거죠.



 이:불일치와 불화의 두드러지는 예가 말의 혼동입니다. 어떤 때는 너무 많은 혼용, 극단적으론 같은 말과 단어가 정반대의 의미로까지 쓰여 혼돈을 가져옵니다. 그 단적인 예가 민주(民主) 아닐까요.



 안: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 실제 힘은 세 군데에서 나옵니다. 국가 제도 권력, 자본, 미디어지요. 여기에 NGO(비정부기구), 즉 시민사회가 등장해 제 몫을 주장합니다. 시민단체들이 검증도 안 받은 채 직접 민주주의를 취해 활동하다 보니 당황스러운 상황들이 발생하게 된 겁니다.



 이:이제는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이 미디어와 융합해 힘을 키웁니다. 트위터·페이스북·유튜브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발달 안 했으면 NGO들이 지금처럼 힘을 못 썼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성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자꾸 퇴색하는 느낌이에요. 특히 선거를 앞두고 이미 확정된 채 살포되는 선입견이나 쏠림 현상은 이 나라를 불화로 내모는 주범이에요. 그런 외풍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어진 구조에서는 반응할 수밖에 없게 돼 있어요. 외면 못 하는 바람에 진실이 왜곡되고요. 선거가 끝나고 허위가 드러나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거죠. 그런 대중 집단의 이성을 믿고 한 표를 맡길 수 있나 싶어요.



 안:선거는 집단의 이성이라 할 수 없죠. 어쨌든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대안은 뭘까요. 국가 공권력을 고집하면 조지 오웰이 소설로 음울하게 전망한 『1984년』 같은 디스토피아 형태가 되는 거죠.



 이:제 경우,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축적한 사회 경험을 숙고해서 질문을 보내면 답은 5분 내에 돌아와요. 긴 시간 장치를 해서 보낸 질문에 대답은 순간이란 거죠. 단 두세 줄로 단문화해서 암시코드를 넣어 물으니 꼼짝없이 포위돼 당한다는 느낌입니다.



 안:구체적으로 경험해 본 사람은 제도를 못 믿죠. 한가하게 얘기 못 하고. 그래도 사람이 능력이나 지위 정도가 어느 정도 올라서 있으면 과한 비판과 중상모략이라도 웬만하면 참아주고 넘어가주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이:제가 당한 경험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거라면 저도 이젠 맷집도 생기고 해서 되도록 그러려고 합니다만(웃음).



 안:이 작가가 강자이기 때문에 약자가 비판한다 치면 어떨까요. ‘약자가 정서적으로 떼를 쓴다’ 셈 치는 거죠. 대부분의 나라나 제도 속에는 ‘소수당이 주도하는 날’이 있어요. 덜 정제된 목소리도 받아주는 아량이죠. 2003년인가요. 이 선생이 『변경』을 절판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린 계기 말입니다. 형편없는 행패를 부린 이들이 들고 나온 게 ‘문화 권력’이란 말이었죠.



 이:난 ‘문화 권력’이란 말에 거부감이 많아요. 권력은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지닌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인데요. 나는 그런 지목을 받을 때까지도 전혀 실감하지 못했어요. 그저 문화혁명 때 많은 문인 예술가의 목을 조른 ‘반동 학술권위’ 또는 ‘반동 문화예술권위’로 몰린 것이로구나, 생각했지요.



안경환 서울대 법과대 명예교수(왼쪽)와 이문열 작가는 1948년생 동갑내기다. 나이는 같지만 이 작가가 경남 밀양국민학교 1년 후배라 안 교수를 선배로 깍 듯하게 모신다. 안 교수는 “밀양의 추억 덕에 이 작가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온다”고 했다. 흔히 진보와 보수로 성향이 갈리는 두 사람이지만 마음은 형제로 통한다. [신인섭 기자]




 안:1980~90년대까지 이 작가가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셨죠.



 이:얘기가 좀 빗나가는데, 나는 요즘에 오히려 문화 권력을 실감해요. 문학으로 예를 들면 작가들의 정치적 지지행태가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지난 30년 여섯 번의 대선에서 일반 유권자의 지지행태는 어느 쪽을 여야로 하든 45대 55의 비율 안에서 움직여왔습니다. 아마 지난 대선의 52대 48이 평균에 가깝겠지요. 그런데 지난 선거에서 작가들의 지지행태는 9대 1 혹은 10대 0으로 보일 만큼 한 정파에 쏠려 있었습니다. 물론 내심은 그렇지 않은 작가들도 있었겠지만, 그렇다 쳐도 그렇게 작가들에게 ‘진의 아닌 의사표시’를 강요한 한 문단의 주도세력, 그렇게 몰고 간 이념적 배후는 엄청난 문화 권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책 몇 권 더 팔고 부황한 대중적 인기를 좀 더 누렸다고, 그것도 정치적으로 그렇게 몰린 것보다는 지금의 문화 권력이 훨씬 더 권력답지요.



 안:작가 중 누가 권력자냐 하면, 독자층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가 상징적 권력을 쥐는 것 아닐까요.



 이:너무 순진한 추측 같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이 지금 문화 권력의 독과 수단이 된 이후로, 그리고 인터넷의 댓글과 단문이 대중적인 서평을 주도하게 된 이후로 나는 독자를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안:떼쓰고 억지 부리는 이들을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웃어 넘겨버리면 어떨까요.



 이:좋은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애는 쓰는데 그렇게 되기에는 힘이 드는군요.



 안:피해 발생을 염두에 두고 지레 제도를 강화하면 오히려 무리가 옵니다.



 이:하지만 이미 피해가 발생했고, 그 피해가 사회나 개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쳤는데도, 예외적 경우의 표현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억지를 쓰고 있는 기분입니다. 보수(保守)도 이 부분에서는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고.



 안:보수가 어때서요. 약자를 보호하는 좋은 전통 아닌가요. 2006년에 제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 시민사회에서 ‘너무 보수적 인물’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어요. 그런데 다른 쪽에서는 ‘과도하게 진보적이다’라는 또 다른 반대 이유를 밝혔지요. 그런가 하면 ‘이슈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이다’는 평도 나왔어요. 어떤 신문에 글 쓰느냐에 따라 사람 평가가 달라지는 게 이 사회입니다. 나는 한때 도하 모든 일간지에 글을 썼습니다. 쪼개지 말고 사회 전체를 바라보며 합리적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합니다. 물론 양쪽 끝에 서 있는 애들은 웃겠지만요.



 이:저는 지금 한국 사회의 불화·불일치·내부 분열 등은 제도나 법률의 지나친 방임이 강화된 것 아닌가 싶은데요.



 안:시시콜콜 제도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면 부작용이 너무 크지요. 그 폐해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 두 사람 다 공감하는 부분이 그런 것 아닙니까. 지난 세월 문제는 많았지만 대한민국은 성공한 역사였다는 것 말입니다. 장편대하소설 『변경』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산업·근대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각기 기여한 점이 서로를 보완해 준 것이지요. 이 둘을 분리해 극대화하면 안 되죠.



 이:프랑스 작가 겸 역사가인 막스 갈로가 쓴 『프랑스 대혁명』을 보니 혁명의 진행을 어느 정도는 차단할 수 있었는데 파리 고등법원이 한동안 방임에 가까운 태도로 사법적 규제를 미루어 결과적으로 방조한 혐의가 있다는 암시가 있던데요.



 안:입법·사법·행정을 놓고 보면 사법부는 속성상 능동적 역할을 못 해요. 마지막 단계에서 균형은 잡을 수 있죠. 대부분의 경우, 판사는 현 제도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가능한 지키는 쪽으로 갑니다. 돌출 사고나 새로운 생각을 안 해요. 법을 공부하는 젊은 학도 때에는 소수 의견에 마음이 갑니다. 하지만 법대(法大)는 다수 의견을 배경으로 탄생한 겁니다. 그래서 법이 당당한 거고요. 대개 1심 법원에서 새 판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걸러지기 때문이지요. 뭐든 고착되면 안 됩니다. 숨통을 터줘야죠. 호주제를 예로 들어볼까요. 결국 몇십 년 만에 무너졌어요. 시대 발전이 원동력입니다. 구체적 피해자와 당사자 원칙으로 가야죠. 사형제도 그래요. 유럽도 원래 사형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더 많았어요. 하지만 정치적 결단을 내린 거죠.



 이:원래 물음으로 돌아가지요. 그런 뜻에서 민중봉기를 방조한 것이라면 프랑스 고등법원의 결단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요즘 품게 되는 법률적 의문 중 하나가 세월호와 관계된 부분인데요. 제가 아는 바로는 법 제도가 판사나 검찰 쪽에 제척(除斥: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특정한 사건의 당사자 또는 사건의 내용과 특수한 관계를 가진 법관 등을 그 직무의 집행에서 배제하는 것)이나 기피(忌避:법관, 법원 직원 따위가 한쪽 소송 관계인과 특수한 관계에 있거나 어떠한 사정으로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다고 여겨질 때 다른 쪽 소송 당사자가 그 법관이나 직원의 직무 집행을 거부하는 일) 사유가 있으면 안 되는데 그게 완전히 없어졌나요.



 안:금전이나 친인척 관계가 있으면 안 되죠. 세월호의 경우는 현재 특별검사법으로만 할 것인지, 진상조사위원회를 따로 꾸릴 것인지가 관건이죠.



 이:피해자의 친인척이나 피해자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검사가 되길 희생자 가족들이 바라는 건 아닌지요.



 안:검사가 누가 되든 주체가 누가 되느냐가 문제겠죠. 현재 국가 권력이 너무 깊숙이 개입돼 있어 특별검사가 제대로 못 할까봐 걱정하는 거겠죠. 특별검사법은 수사 시간이 너무 짧아요. 진상조사는 시간을 충분히 길게 잡고 깊이 있게 해야죠. 8명 위원 중 세 사람은 법무부 차관 등 권력의 일부로 이미 정해져 있고 나머지 4명 중 두 사람은 여(與), 두 사람은 야(野)로 배분돼 있어요. 누가 임명하면 밝힐 것이고, 또 누가 임명하면 은폐할 것인가, 말들이 많은데 다 아닙니다. 법원이 판단할 일이죠. 정부가 너무 관여해 왔다고 보고 그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관피아’란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이:사람들이 제멋대로 얘기 안 하고, 희생자 가족들 곁에 야당만 안 붙어 있어도 순리대로 풀리지 않을까요.



 안:야당과 희생자들이 한편이 된 건 좀 기이한 현상이지만, 정부와 여당이 워낙 강력 반대하고 진실 규명에 인색한 데다 역대 검찰의 역사를 보면 의구심을 가질 만해요.



 이:결국 불일치가 분열로 가는 거군요.



 안:분열을 조장해서 득을 보는 세력이 있으니까요.



 이:‘광장’은 근대 이후로는 뭔가 큰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인데, 지금은 개인이 ‘인터넷 광장’을 늘 어슬렁거리는 시대가 됐어요. 잠시만 벗어나 있어도 불안한지 강박적으로 손이 가더군요. 거기 많이 노출되면 사람들이 그저 따라가요. 제대로 된 사용법을 알려주고 지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마음 상하면 외면하세요. 사실 거기엔 중요한 정보가 별 게 없어요. 그 뿌리를 흔들면 하루, 이틀 금세 사라져버리죠.



 이:인터넷 광장에 상주하는 이들이 말썽이에요. 반복 기법으로 자신들이 다수를 대표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요. 잔인하고 자극적인 말의 특별한 효용으로 효과를 극대화하죠.



 안:그래서 상식 이하 말들이 나오는 겁니다. 저질과 저속으로 분칠한 말들이죠. 그렇다고 중국처럼 그 광장 자체를 차단해야 할까요.



 이:차단은 반대합니다. 계몽 차원에서 ‘광장 사용법’을 얘기하는 이가 필요해요. 오해와 착시에 대한 지적도 필요한데 너무 안 하고 있어요. 정화됐다고 하는데 저는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좌우건, 여야건, 양쪽 다 똑같이 악성 글을 유포해요. 범죄성을 띠어간다고 봅니다.



 안:소통 매체가 점차 달라지니까요. 아무래도 신문이나 잡지, 책 등 거름 기능이 입증된 인쇄 매체가 정화하고 계몽해야겠죠.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있으니 그 매체 안에서 자정이 일어나야 순리겠죠.



 이:대통령 선거 6번을 겪으며 점점 비관적인 생각이 들어요. 특히 최근 네 대통령의 임기를 넘기면서 한층 더 강화되는 듯한 불복의 구조화를 보며.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모두 임기 중 너무 보호를 못 받았어요. 취임 초부터 막말 속에 패대기쳐졌죠. 국가원수 모독죄가 폐지되어선지 모르지만.



 안:미국도 독립국가로 출발 당시는 정치 제도 모델이 영국밖에 없으니 대통령에게 국왕의 권력을 준 셈인데요. 지금은 맞지 않죠. 국민이 주인이니 대통령에게 청와대 전세 5년을 준 셈 치는 겁니다.



 이:나라의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권을 줬으니 어느 선까지는 대통령을 지켜줘야죠.



 안:대통령 선거에 대한 불복은 함부로 하면 안 되죠. 국정을 잘하도록 비판하면서도 도와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이 빠지면 위기 상황으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더더욱 국민과 소통해야 하는데 세월호 참사 때는 그게 잘 안 됐죠.



 이:그렇다고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왜 안 오느냐’ ‘그 시간에 뭐 했느냐’ 따지면서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건 아니죠. 날이 가물다고 왕을 목매다는 고대 왕국이 부활한 것도 아니고.



 안:선거 과정에 하자가 없으면 정당한 권력으로 인정해야죠. 감시와 비판은 해야 하지만 권위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도 다소 강한 하소연에 위협을 느끼면 안 됩니다. 국민이 임기 동안 정당한 권력을 준 것이니까요.



 이:이런저런 사건들로 올해는 특히 불화를 넘어 편가르기, 진영 논리 등으로 분열이 너무 심해 자꾸 나쁜 상상을 하게 돼요.



 안:그래도 합리적 중간계급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희망을 보고, 이 나라가 계속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이들 말입니다.



 이:불행하게도 그 중간계급이 요즘 인터넷 광장에서 제일 많이 휘둘려 우왕좌왕하는 것 같아 걱정되고 아쉽습니다.



 안:자, 한번 볼까요. 한국 사회에서 50대 이상이 생각하는 것, 30대 이하가 생각하는 것이 다른 까닭이 뭘까요. 그 간극이 왜 벌어졌는지,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무엇보다 내가 젊은 친구들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것이 많아져 우울해요. 내 자식들도 이해가 안 되니 말이죠. 그럴 때는 내가 왜 이럴까. 불화가 심화해서 그런가, 몰이해 탓일까, 착잡해지죠.



 안: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며 젊은 학생들과 생활하고 대화하면서 왜 저럴까, 많이 생각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에 대해 표준 중앙일보 독자라면 동의할 것입니다. 지금 20대부터 40대까지 세대, 그들이 한창 활동하며 살 무대는 우리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인터넷 정보망에 노출돼 더 치열한 세상이 될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받은 고통보다 그 사람들 고통이 더 크고 힘들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단 얼마라도 판단 자료를 제공해야죠. 저 사람들 생각을 수용하면서 뭘 해줄까, 무엇을 도와줄까 궁리해야죠. 앞으로 이 나라가 덜 쪼개졌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이:이제 내가 이 세상을 쓸 세월보다 저희들이 살아갈 세월이 더 많으니 니들이 잘 만들어봐라, 하고 방관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게 잘 안 돼요.



 안:부탁이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변경』 후속으로 1980년대 이후를 다룰 대하 장편을 쓰실 때는 주된 독자를 지금 20~30대로 잡고 쓰셨으면 합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염두에 두고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경험의 지혜를 담은 소설을 선물로 주세요.



 이:우리끼리 이렇게 하는 얘기는 쉬운데 그들에게 말을 건네려면 힘들어요. 젊은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게 여러 장치를 하려 애는 쓰지만 말이죠. 1980년대 앞머리에 한국 역사를 뒤바꾼 중요 사건이 많았는데 어떤 건 이미 화석화된 것도 있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으니 더 밀도 있게 노력해야죠.



 안:동시대를 힘들게 살아오면서 그중에서도 행복했던 것 중 하나가 이문열 선생의 문학작품과 함께 한 일입니다. 우리 세대가 이 선생 작품에 투영됐다는 것, 보람 있었어요.



이문열은 …



1948년 서울 출생. 경북 영천·영양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한 뒤 77년 대구매일신문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 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돼 등단. 데뷔 초부터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 『금시조』 등 관념론적 색채를 지닌 능란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였다. 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호암예술상 등 수상. 세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뒤 부악문원 대표로 있다. 주요 작품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호모 엑세쿠탄스 』 『변경』 등이 있다.



안경환은 …



1948년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법과대를 졸업하고 미국 샌타클래라대학 법학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권 전문가로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서울시민 인권헌장제정 시민위원회 위원장이다. 최근 한국인 최초로 국제인권법률가협회 위원에 선임됐다. 서울대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고 지금은 명예교수. 인물 평전 『조영래 평전: 희망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인권 수상록 『좌우지간 인권이다』 『시대유감』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등을 썼다.



[인터뷰 후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이라지만 생각이 통하는 푸근한 고향 동무




때로 우리 둘을 나란히 불러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이들은 경남 밀양에서 함께 보낸 어릴 적 동무라는 점을 높이 치는 것 같다. 두 사람 다 아버지가 좌익 활동에 투신한 뒤 가족을 버리고 북으로 간 배경을 지녔다는 공통점도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그가 『변경』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밀양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 있어서일 것이다.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기분일지도 모른다. 밀양초등학교 때는 스쳤고, 밀양중학교 시절에도 무덤덤했던 우리가 오히려 장년이 되어 이렇게 무릎을 자주 맞대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문학청년이다. 작가에 대한 그의 예의와 경탄은 더 큰 꿈을 위해 포기한 자신의 무지개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의 꼼꼼하고 문학성 짙은 글을 보면 좋은 도반 하나를 놓쳤구나 싶기도 하다. 그는 1년 선배이자 동료였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평전을 썼고, 박정희 시대의 문제적 인간이라 할 황용주(1918~2001) 전 문화방송 사장의 평전도 10년 품을 팔아 기록했다. 우리 둘 다 관심이 큰 소설가 이병주(1921~92)의 평전도 집필하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평전 문화가 척박한 한국 땅에서 평전을 향한 그의 열정은 길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번 대담 자리에 오른팔에 보호대를 하고 나왔다. 인대가 늘어나 수술한 뒤였는데 “우익이라 오른쪽이 망가진 모양”이라는 뼈 있는 농담을 던져서 걱정을 덜어줬다. 해묵은 장맛을 풍기는 고향 선배이자 동무인 그가 오래오래 함께 걸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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