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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김우중의 북한 경험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책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와중의 대우그룹 해체가 ‘김대중 정부에 의한 기획 해체다’와 ‘시장의 요구다’가 대립하는 논란을 불렀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이런 진실게임과는 별도로 김우중의 책에는 우리 대북정책에 참고할 중요한 교훈이 들어 있는 데 주목한다.



 김우중이 책에 쓰고 기자의 e메일 질문에 대답한 걸 보면 그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기간에 정부 밀사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20회 정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 남북관계 개선의 물밑작업을 했다. 노태우 때는 “총무처 관인이 찍힌” 특사 임명장까지 받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직접 설득해 남북기본합의서(1991.12) 실현에 일조를 했다. 그가 김일성의 신뢰를 얻은 비결은 정부 대표들은 할 수 없는 바른말을 하는 것이었다. 김우중은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소련·동구권 해체의 경과를 김일성에게 자세히 설명한 뒤 북한에도 김 주석 동상이 많은데 그것들이 쓰러지고 체제가 흔들리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고언을 했다.



 김우중은 노태우에게 김일성과의 회담을 적극 권했다. 소련·동구권 해체로 북한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는 그때가 정상회담을 열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노태우는 일단 동의는 해놓고 망설이다 정상회담은 슬그머니 없던 일이 돼버렸다. 노태우는 김우중에게 정상회담을 무산시킨 이유를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김우중은 김일성으로부터 김영삼과 만나겠다는 언질을 받고 정상회담 준비를 도왔다고 썼다. 그 정상회담은 94년 7월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장사꾼”이다. 그가 정부의 백채널로 북한을 왕래하면서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북한에 남포공단을 세웠다. 정부와 기업인의 생산적인 윈-윈이다. 그는 김일성에게 중국의 동북3성에 중국의 땅, 북한의 인력, 남한의 기술과 자본이 투자된 경공업단지를 세우자는 제안도 해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북한 근로자 2만 명으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20만 명까지 고용한다는 큰 비전이었다.



 괴거에 일어난 일을 “그때 이랬더라면” 하고 묻는 앤티팩추얼(Anti-factual) 역사 기술은 무의미하지만 그때 노태우·김일성 회담이 성사됐거나 김영삼·김일성 회담 직전에 김일성이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김우중만의 것이 아니다.



 백채널의 빛나는 업적이 김대중 정부의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현대그룹의 대규모 대북사업이다. 요시다 다케시라는 재일동포 기업인은 김일성이 신뢰하는 친구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들의 우정은 아들 세대로 이어져 요시다 다케시와 김정일은 친구가 되었다. 그는 90년 일본 정계 실력자 가네마루 신과 김일성 회담 성사, 95년 일본 쌀 15만t 지원, 2002년 총리 고이즈미의 방북 실현에 숨은 공로자였다.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은 요시다의 인맥에 착안해 요시다-이익치(현대증권 회장) 라인을 이용하여 금강산 같은 큰 대북사업을 하고, 그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인계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은 요시다-박지원 라인의 역사적인 작품이다.



 외국에도 백채널이 역사를 만든 사례는 많다. 62년 일촉즉발의 쿠바 미사일 위기의 해결도 존 스캘리라는 ABC 방송 국무부 출입기자와 소련 대사관의 KGB(소련 비밀경찰) 지부장으로 연결되는 백채널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인연으로 스캘리 기자는 나중에 유엔 대사를 지냈다. 69년 서독 빌리 브란트 정부 출범 직후 발레리 레드녜프라는 소련 문예지 리테르투르나야 가제타 부편집인이 인터뷰를 빙자하고 브란트의 외교 특보로 동방정책을 설계한 에곤 바르를 만나 소련 총리 알렉세이 코시긴의 밀서를 전달했다. 소련 기자의 바르 접촉은 이듬해 서독·소련 관계에 큰 획을 그은 모스크바 조약으로 첫 결실을 봤다. 서독·소련의 모스크바 조약으로 브란트 정부의 동방정책은 고속질주하면서 통일의 토대를 닦았다.  



 이런 사례들만으로도 체제 간, 국가 간 관계가 오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백채널이 마술사 같은 신통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비선라인을 극도로 기피한다. 지난해 7월 말 북한에 탄탄한 인맥을 가진 재미 정치학자 박한식(조지아대) 교수가 김양건-원동연 라인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청와대는 묵살했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백채널 기피가 현명한 선택 같지 않다. 김우중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북 밀사로는 기업인이 적임이고 한국에는 그런 역할을 할 만한 기업인도 있다. 공식 라인으로 막힌 남북관계를 못 뚫었으면 제3의 길을 모색할 때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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