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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억겁의 세월이 빚었네…알프스 속살이 빛나네

융프라우 요흐역을 벗어나면 처음으로 마주치는 설원이 바로 알레치 빙하다. 1000만년 전에 만들어진 빙하가 23㎞나 뻗어 있다.


여기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지요. 바로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만년설 덮인 알프스 산맥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모두가 이 경치를 배경으로 소위 ‘인증 샷’을 찍지요.

스위스 알레치 빙하·체르마트 트레킹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풍경입니다. 1년에만 10만 명 가까운 한국인이 이곳 융프라우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진 속 풍경의 정확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융프라우라고만 알고 있지요. 눈앞에 드러난 거대한 얼음 세상의 이름은 알레치 빙하입니다.



1000만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알레치 빙하는 유럽에서 가장 긴 빙하입니다. 길이가 23㎞나 됩니다. 2001년 유네스코가 융프라우와 알레치 빙하 지역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유럽인의 버킷 리스트에 알레치 빙하 트레킹이 올라 있을 만큼 명성이 높지만, 국내에는 그저 융프라우의 배경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요.



먼발치에서만 보았던 알레치 빙하를 1박2일 걸었습니다. 최대 깊이가 900m에 이른다는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억겁의 세월을 거치며 다져진 빙하의 속살은 영롱하게 빛나는 에메랄드 같았습니다. 빙하를 헤치며 걸어보지 않고서는 마주할 수 없는 장관이었지요.



체르마트 슈텔리 호수에서 바라본 마터호른.


또 한 장의 사진도 눈에 많이 익습니다. 마터호른(4478m)이지요. 알프스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도 아닌데, 가장 유명한 산 중의 하나입니다. 이 마터호른을 찾아 전세계에서 스위스 남쪽의 외진 산골마을 체르마트로 모입니다. 마터호른 역시 눈으로만 즐기는 관광객이 더 많은 건 아쉬운 일입니다. 곤돌라와 산악열차를 타고 산봉우리에 올랐다가 기념사진만 찍고 내려가는 관광객이 수두룩하지요.



하나 눈요기만 하고 떠나기엔 체르마트에는 놀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1년 내내 스키를 타고, 산악자전거를 타고, 하이킹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마터호른을 벗삼아 걸었습니다. 눈으로 즐길 때보다, 알프스가 훨씬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week&이 스위스의 속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 방법을 소개합니다. 단순히 멋진 기념사진이 아니라 황홀한 추억을 남길 수 있습니다. 다소 수고스럽더라도 스위스를 몸소 느껴보시지요.



스위스의 자연은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답지만, 깊숙이 걸어 들어가 바라보는 자연은 더욱 아름답다.



이 스위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 두 곳을 체험하고 돌아왔다.



융프라우의 알레치 빙하 트레킹과 체르마트 마터호른 트레킹.



두 트레킹 모두 스위스의 자연을 만끽하는 경험이었지만, 두 트레킹에서 경험한 스위스의 자연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체르마트 고르너그라트 정상에서 리펠베르그로 내려오는 내내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를 만끽할 수 있다. 이맘때 스위스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트레킹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 된다




알레치 빙하 트레킹 Aletsch Trekking



‘거대한 입’이 쩍~ 포승줄에 묶인 죄인처럼 덜덜




1 빙하가 녹은 물이 강처럼 흐르다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진다. 2 새벽녘 콩코디아 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알프스 산양.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안쓰럽다. 3 알레치 빙하를 걷기 위해서는 쇠발톱 길이가 2㎝나 되는 크렘폰을 착용해야 한다.
융프라우 알레치 빙하 트레킹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코스부터 만만치않다. 빙하 구간 18㎞, 고산 지대 하이킹 코스 4㎞ 합해 모두 22㎞ 구간을 약 12시간 동안 걸어야 한다. 21년째 알레치 빙하 트레킹 가이드를 하고 있는 프레디(51)도 인사를 나누자마자 겁부터 줬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의 최대 깊이는 900m입니다. 추락하면 시체도 찾을 수 없습니다.”



프레디가 꺼낸 등산 장비도 범상치 않았다. 자일(로프)은 기본이고, 안전벨트 하네스, 빙하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쇠 발톱 같이 생긴 크렘폰까지…. 손쉬운 트레킹인 줄 알고 왔는데 장비는 몽블랑(4807m)을 등반할 때와 다름없는 것 같았다.



눈이 등산화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스패츠를 차고 하네스를 허리춤에 동여맸다. 프레디가 먼저 30m쯤 되는 자일을 자신의 몸에 맸다. 프레디의 자일에 한국에서 온 기자와 독일인 체육교사 등 모두 3명이 차례로 연결됐다. 언뜻 포승줄에 묶인 피고인들 같았다. 안자일렌 방식의 트레킹이다.



눈 덮인 융프라우 요흐역(3454m)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첫날 목표는 해발 2850m에 있는 콩코디아 산장이었다. 거리는 9㎞가 조금 넘지만, 예상 소요시간은 5시간이나 됐다. 한 발 한 발 조심해야 해서 시간이 한없이 걸린단다. 프레디는 “내 발자국만 따라 걸으면 안전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지난겨울에 내린 눈을 밟고 걸었다. 날씨가 추워 깊게 빠지지는 않았다. 베테랑 가이드답게 프레디는 크레바스를 용케 피해갔다. 고도가 내려갈수록 눈이 녹아서 질펀했다. 발이 푹푹 빠졌고 고어텍스 등산화에 물이 스며들었다. 가끔 동그란 구멍도 눈에 들어왔다. 빙하가 토해낸 숨구멍 같았다. “이것도 크레바스”라고 프레디가 알려줬다. 크레바스라고 하면 으레 ‘사다리를 걸쳐서 넘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지름이 30㎝ 정도로 작아서 그냥 뛰어 넘었다.



슬러시(진창이 된 눈) 구간을 빠져나오자 억겁의 세월동안 얼어 있던 빙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지 바른 곳은 빙하 녹은 물이 흘렀고, 주변 산에서 굴러온 바위와 빙퇴석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융프라우 요흐에서 빙하 위에 난 길처럼 보였던 것이 이 빙퇴석이었다. 지친 몸을 쉬어갈 콩코디아 산장은 499개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절벽 위에 있었다.



이튿날은 콩코디아 산장에서 케이블카역이 있는 엑기스호른(2869m)까지 약 12㎞를 걸어야 했다. 이 중에서 플라타(2380m)까지 8㎞는 빙하지역이고 이후 4㎞는 해발 2500m의 산악지역이었다. 콩코디아 산장에서 내려오자마자 크렘폰을 등산화에 동여맸다. 한국에서 챙겨온 아이젠을 내보이자 프레디가 고개를 흔들며 “발톱이 너무 작아 미끄러진다”고 핀잔을 줬다. 크렘폰은 1개 무게만 1㎏쯤 됐다. 발바닥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듯했다.



오랜 세월 빙퇴석 바위가 빙하에 쓸리고 깎여 만들어진 마운틴 크리스털. 알레치 빙하를 걷다 보면 주울 수 있다.
빙하도 어제 본 빙하와 완전히 달랐다. 올록볼록했고, 거북이 등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다. 프레디는 “코끼리 피부”라고 표현했다. 겉은 거칠어도 빙하의 속살은 에메랄드빛이었다. 은은한 파스텔톤의 빙하 속살은 자체로 빛이 나고 아름다웠다. 워낙 크레바스가 많아 지그재그로 걸었다. 프레디도 피켈을 꺼내들어 추락사고에 대비했다. 프레디는 가끔 큼지막한 크레바스 속으로 돌을 던져 깊이를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아무런 울림이 없었다. 그만큼 깊었다.



플라타에 다다를 즈음 프레디가 먼 산을 가리켰다. “마터호른입니다.” 생김새가 진짜 마터호른(4478m)이었다. “해발 2000m급 지역에서 마터호른과 융프라우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알레치 빙하뿐입니다.” 빙하를 빠져나와 엑기스호른으로 가는 길에 프레디가 “해가 갈수록 빙하가 줄어든다”고 걱정했다. “21년 전에는 지금보다 1m는 더 높았어요. 빙하가 다 녹으면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도 많이 사라지겠지요. 그때 스위스에 남는 건 시계와 은행뿐일 겁니다.” 프레디의 농담에 웃음이 나왔지만 왠지 씁쓸했다.



체르마트 트레킹 Zermatt Trekking



열차로 3089m 정상에 … 산 오르지 않고 내려오다




푸른 초원을 끼고 걸을 수 있는 체르마트 트레킹 코스.




체르마트행 기차에 올랐다. 마터호른 산자락 해발 1620m에 자리한 체르마트는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융프라우 요흐의 알레치 빙하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의 땅이라면, 체르마트는 여유가 흐르는 낭만의 휴양지라 할 수 있다.



체르마트에 도착하자마자 관광객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과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관광객이 뒤섞여 있는 풍경은 도무지 생경했다. 스위스정부관광청의 마티아스 크래머(35)가 이해를 도왔다. “체르마트에서는 복장만 봐도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어요. 산으로 올라가 스키를 탈 사람인지, 트레킹을 할 사람인지, 시내 주변에서 산책을 할 사람인지 말이죠.”



체르마트 주변으로 높은 산이 많지만, 오르기는 쉬운 편이다. 고르너그라트(3089m)·로트호른(3103m)·수넥가(2288m) 등 봉우리 정상부로 향하는 산악열차와 곤돌라가 수시로 운행하기 때문이다. 여기 체르마트에서는 어르신도, 장애인도 힘들이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다. 스키를 타거나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도 흔하다. 그래도 체르마트는 역시 트레킹이다. 체르마트에는 모두 400㎞ 길이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을 오르기보다는,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선호한다. 산에서 내려온다. 산악열차나 곤돌라를 타고 산을 오른 뒤 일부 내리막 구간만 선택해 걸으면 하루에도 두 코스는 너끈히 걸을 수 있다.



체르마트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손쉽게 알프스 봉우리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마터호른을 벗삼아 알프스 안을 걸었다. 산악열차로 고르너그라트까지 올라 정상부 주변을 돌고 리펠베르그(2582m)로 걸어 내려오는 4㎞ 코스를 먼저 걸었다. 정상부 풍경은 단연 압권이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알프스의 풍광은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광활했다. 스위스에서 가장 높다는 듀포스피체(4634m)부터 마터호른까지 산봉우리 29개와 고르너빙하·그렌즈빙하가 파도를 치듯이 역동적인 자태로 사방에 펼쳐졌다. 리펠베르그로 향하는 내리막 길에선 좀처럼 걷는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만큼 눈에 담아야 할 것이 많았다. 왼쪽으로는 알프스와 빙하가, 오른쪽으로는 산을 거슬러오르는 산악열차와 케이블카가 연신 그림을 만들어냈다.



산악자건거를 타는 이들과도 심심치 않게 마주쳤다. 체르마트가 세계적인 생태여행지로 불리는 까닭은 이 도시 안에서는 전기차를 뺀 모든 자동차의 출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체르마트 주민이 1990년 법을 만들어 여태까지 지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인 자연환경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다.



체르마트 시내에서만 자전거가 흔한 줄 알았는데, 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산 중턱에도 자전거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따로 있었고, 산악열차에도 자전거용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이 정도면 산악자전거족의 천국이라고 해도 좋을 법했다.



이튿날에는 블라우헤르트(2571m)에서 리펠알프(2211m)를 거쳐 체르마트로 내려오는 9㎞ 길이의 젠베그 코스를 걸었다. 지난 2010년 제주올레 6코스와 자매결연한 ‘5개 호숫길’과도 겹치는 길이었다.



수넥가까지 열차를 타고 올라간 뒤 곤돌라로 갈아타기를 약 30분, 블라우헤르트 정상에 내렸다. 해돋이 명소인 로트호른 바로 아래 블라우헤르트가 출발점이었다. 블라우헤르트 하산길은 돌이 많아 등산화가 필수라고 했지만, 경사가 무난한 편이라 걷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나무가 없는 터라 사방의 알프스 풍경을 구경하기에도 그만이었다. 변수는 날씨였다. 고산지대여서 변덕이 심했다. 이슬비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알프스가 운무로 휩싸였다. 어느새 마터호른도 밑동만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젠베그 코스는 제법 걷는 재미가 있었다. 골짜기를 건너는 길이어서 리펠알프로 가는 길에는 다른 트레킹 코스와 달리 오르막길도 만날 수 있었다. 옛날에 빙하가 있었던 골짜기를 걸으며 슈텔리·그린드예·그륀 등 크고 작은 호수도 끼고 걸었다. 젠베그 코스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곳은 슈텔리호수였다. 축구장만 한 호수 안으로 마터호른의 반영이 고스란히 스며드는 사진 명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름 낀 마터호른은 호수 안으로 들어오길 거부했다.



알프스의 속살은 밖에서 보는 것과 사뭇 달랐다. 눈으로 덮인 높은 산맥과 달리, 빙퇴석 지대인 핀델른 마을에서 리펠알프로 이어진 길은 각종 야생화로 뒤덮인 초원과 소나무숲의 세상이었다. 웅장한 마터호른, 만년설의 오랜 흔적인 빙하와 호수, 종잡을 수 없는 날씨까지 체르마트에서 바라본 알프스의 표정은 풍부했다. 안개를 헤치며 체르마트 시내로 돌아왔다. 마을 너머로 마터호른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여행정보=대한항공이 매주 화·목·토요일 인천∼취리히 스위스 직항편을 운영한다. 스위스를 여행할 때는 스위스 패스가 용이하다. 스위스 패스 한 장이면 철도·버스·유람선 등 스위스의 대중교통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체르마트에서 스위스 패스를 보여주면 산악열차 고르너그라트반을 비롯해 각종 케이블카를 반값에 이용할 수 있고, 마터호른 박물관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스위스 패스 어른 4일권(2등석) 221스위스프랑(약 24만원). 스위스정부관광청(myswitzerland.com/ko).



융프라우 알레치 빙하 트레킹은 전문회사(swissrockguides.com)를 통해야 한다. 1박2일 가이드 투어에 어른 469스위스프랑(약 52만원). 융프라우 요흐까지는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 산악철도를 이용해야 한다. 요금 왕복 200스위스프랑(약 21만원). 융프라우 철도 한국사무소(jungfrau.co.kr, 02-756-7560)가 발행하는 쿠폰을 가져가면 최소 30% 할인받을 수 있다. 융프라우 요흐에는 최근 초콜릿 공방이 새로 생겼다. 스위스 최대의 린트 초콜릿사가 운영하는 것으로 직접 초콜릿을 만들고 살 수도 있다.



글·사진=이석희·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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