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들은 한마디 경구(警句)를 좌우명으로 삼곤 한다. 경구는 바둑을 이끄는 힘이다. 예로 다카가와 가쿠(高川格·1915~86) 9단은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을 즐겨 휘호했다. 그의 기풍은 말 그대로 유장(悠長)했고 본인방 9연패 위업을 쌓았다.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1925~2009) 9단은 단 한 음절 ‘뢰(磊·돌무더기가 밀어닥치는 형상)’를 강조했다. 그의 기풍은 글자 그대로 두터웠고 스케일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성(誠·마음을 다함)을 즐겨 쓰는 이창호(39) 9단은 누구보다도 반상과 하나가 됐다.
평범한 말이라도 큰 승부사가 말하면 울림은 다르다. 조훈현(61) 9단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게 승부”라고 했다. 평범하지만 깊은 승부 철학이었다. 많은 기사가 동감을 표시했고 위안을 얻었다. 때로는 파격도 있었다. 서봉수(61) 9단은 젊은 시절 바둑이 뭐냐고 질문 받았을 때 “나무 위에 돌 놓는 행위”라고 했다.
프로의 반상 철학엔 딜레마도 있다. 이광구(58) 바둑평론가는 “마음에 경구를 가지면 그 경구가 자충수(自充手·스스로를 얽어매는 수)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며 “하지만 경구가 하나도 없다면, 지향점이 없기에 승부사로서는 의지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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