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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관두고 철학자 … 인간 왜 존엄한지 궁금했다

서울대 김현섭 교수는 판사를 그만두고 철학을 공부했다.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철학을 공부할 수 있어서 유학 시절 매일 춤 추고 노래했다. [김춘식 기자]


스물한 살에 사법고시에 붙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다. 서울의 한 지방법원에 판사로 임용됐지만 일 년 만에 그만뒀다. 그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올 3월 서울대 철학과에 부임한 김현섭(36) 교수 얘기다.

김현섭 서울대 철학과 교수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행복 … 첫 단추는 잘하는 것 재미 붙이기"



그의 이력을 듣고 “왜” 라는 생각이 든다면 세상사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5년 전, 그가 뉴욕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때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왜 남들은 못 돼서 안달인 판사를 그만두고 인기없는 학문인 철학을 선택했나요.” 5년간 인터뷰를 미뤄 온 그가 마침내 기자를 만나 내놓은 답은 간단했다. “철학이 너무 좋아서요.”



 그는 평생 모범생이었다. 대원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엘리트 법조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그는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2001년, 서울대 철학과 석사과정에 등록한다.



 - 어떻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정신적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어요. 중학교 때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읽었는데 너무 놀라 책을 갈가리 찢어버렸어요. 우주와 인간이 결국 물리적 구성체라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신이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는 거잖아요. 삶이 머잖아 끝난다는 것도 두려운데 그 유한한 삶에 의미와 방향을 줄 수 있는 무언가도 없다니. 그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철학적 질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 그럼 사법시험은 왜 쳤나요.



 “사시는 법대를 갔으니 자연스럽게 보게 된 거예요. 그때 했던 공부가 지금은 큰 자산이 돼요. 법은 지혜의 축적이니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사회를 규율해야 하는지에 대한.”



 - 판사란 직업을 다들 선망하죠. 그 직업을 버리는 데 미련은 없었나요.



 “당시엔 철학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다른 건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진했던 게, 유학을 다녀오면 직장을 잡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자체도 없었어요. 미혼이라 부양할 가족이 없어 더욱 그랬겠죠.”



 -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는 게 보통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될 거예요.



 “법 공부를 할 때도 판례나 법조문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부 때 법철학 교수님께 질문을 드린 적이 있어요. ‘인간이 존엄하다면 법이 어때야 하는지는 이해하겠는데, 인간이 왜 존엄한지는 모르겠다’고요. 그때 ‘넌 철학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철학이란 학문은 갈수록 인기가 없어져요.



 “전 철학에 대한 갈증이 더욱 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는 삶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너무 바빠서 그 생각을 오래 할 여유가 없는 거죠.”



 - 어떻게 살아야 할지보다 어떻게 돈을 벌지 궁리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부(富) 자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사람들에게 왜 돈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돈이 있으면 자유로우니까’라고 답하죠. 그럼 결국 좋은 건 돈이 아니라 자유잖아요.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많은 돈은 필요 없겠죠. 자유로우면 뭘 할 거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즐거운 일을 하겠다’고 말하죠. 그럼 돈을 버는 것도 결국은 원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하기 위한 것 아닐까요.”



 - 철학 공부가 그렇게 찾은, 원하는 일인가요.



 “유학 가서는 정말, 매일 춤을 추고 노래를 했어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훌륭한 선생님과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철학 중에서도 제가 공부하는 윤리학이 너무 좋아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죠.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는 건 쉬운 게 아닌데, 그걸 찾은 게 저로선 행운이죠.”



 -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이 닿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제 얘기가 오만하게 들릴까 걱정이에요. 전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후배들에겐 ‘일단 잘하는 일을 해보라’고 권해요. 잘해야 재미있고, 재미있어야 오래할 수 있거든요.”



 - 요즘 학생들은 내가 잘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질문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안타까워요. 여러 가지를 배워보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문제 풀이나 입시에만 매진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하고 나중에 고민하게 되면 늦잖아요.”



글=임미진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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