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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가정상비약 '이명래 고약' 의 추억

‘이명래 고약’ 창업주이자 유진오 박사의 부인이었던 고(故) 이용재 여사 유품.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가지런하게 걸린 양장 일습이 정갈하다. 높낮이가 다양한 구두는 깔끔하게 손질돼 바로 신어도 될 듯하다. 서울 삼청로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관람객을 맞는 이 물건들은 고(故) 이용재(1921~2009) 여사가 입고 신던 유품이다. 이 여사는 서민들이 애용했던 종기 치료제 ‘이명래 고약’을 대량 생산했던 명래제약의 창업주로 유명하다. 선친 이명래(1890~1952) 선생이 전통 한방 치료법 등을 참고해 1906년 만든 고약을 가정상비약으로 대중화해 이름을 날렸다.



국립민속박물관 기증 자료전

 법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현민(玄民) 유진오(1906~87) 박사와 결혼해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부부로도 주목받았다. 그런 만큼 당대를 앞서가는 진취적 여성답게 패션 감각이 뛰어났다. 복식 자료 옆에 놓인 의료 기구와 이명래 고약 관련 자료들은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이용재(左), 유진오(右)
 이용재 여사는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여의전을 졸업하고 소아과 의사로 활동하며 병원에 오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에 눈 돌렸다. 70년대까지 종기나 다래끼 등 피부질환은 영양부족 상태였던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고질병이었다. 이명래 선생이 타계하자 막내딸이었던 이 여사는 아버지 어깨 너머로 본 고약 제조법을 발전시켜 56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제약회사를 세운다. 항생제 구하기가 어렵던 시절에 곪은 종기를 단번에 치료하던 명래 고약의 추억이 진열대 너머에서 살아난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기획한 ‘2013년도 기증 자료전’(2015년 3월 23일까지)은 이용재 여사 가족이 남긴 물건들 외에도 지난해 개인이나 단체 93곳으로부터 받은 4800여 점 중에서 고른 미공개 사료를 소개하고 있다. 고(故) 최중훈 선생이 50년 12월부터 52년 6월에 걸쳐 함북 청진에서 함남 흥남을 거쳐 거제도까지 흘러든 피난생활을 기록한 일기와 일지 4권이 한국전쟁의 미시사를 복원한다. 집안에 내려오는 어르신 손때 묻은 낡은 물건이 서민의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전시는 보여주고 있다. 천진기 관장은 “기증문화 활성화를 위해 해마다 이런 자리를 계속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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