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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중국인과 같이 살아가기 ②

이정재
논설위원
중국인이 바꿔 놓은 한국은 서울 명동과 제주의 거리 풍경뿐만이 아니다. 구구한 설명 대신 숫자 몇 개를 보자. 진실은 늘 숫자 뒤에 숨어 있다지 않은가.



 첫 번째 숫자는 54.7%다. 중국 자본이 올 들어 7월 말까지 사들인 한국 주식은 1조8900억원어치다. 외국인들이 사들인 주식의 54.7%다. 50은 과반수다. 50을 넘게 가지면 주도권을 쥐게 된다. 한국 기업의 주가는 중국 자본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실제 아모레퍼시픽(화장품)이나 리홈쿠첸(전기밥솥) 같이 중국인이 즐겨 찾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 주가는 1년 새 두세 배 뛰었다.



 어디 그뿐이랴. 요즘 한국의 인수합병 시장은 중국 자본의 독무대다. 중국 자본의 한국 투자는 올 상반기에만 9600억원, 6년 새 80배가 늘었다. 아가방·키이스트(연예기획사) 등 100억원 이상 투자도 9건이다. K투자자문사 K사장은 “한국 기업과 중국 자본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가 가장 큰 돈이 된 지 오래”라며 “중국 자본과의 친분 여부가 국내 금융업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숫자 5807억원, 중국인이 제주도에 소유한 땅의 공시지가를 합한 금액이다. 5년 전보다 넓이는 296배, 금액은 1452배 늘었다. 5억원 이상 휴양시설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5년 후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투자이민제가 2010년 도입된 후 일어난 일이다. 제주엔 요즘 몰려드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은 지난여름 모처럼 제주도를 찾았다가 신라호텔을 가득 메운 중국 관광객을 보고 “여기가 중국이야, 한국이야” 하며 놀랐다고 한다. 급기야 ‘중국인 장기매매 조직이 상륙했다’ ‘자본으로 위장한 중국 마피아가 날뛴다’는 악성 괴담이 퍼질 정도였다. 이런 괴담은 대개 이유도 근거도 없이 반중국인·중국 자본 정서를 부추긴다.



 세 번째 숫자 3.2%.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이미 변화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권이다. 세계 명품의 28%를 소비한다. 이런 중국에 우리는 주로 부품·소재·자본재를 팔아왔다. 중국 기술 수준이 높아질수록 팔 수 있는 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올 들어 8월까지 우리 수출은 지난해보다 2% 넘게 늘었지만 중국에 대한 수출은 되레 4% 넘게 줄었다. 더는 중국 옆에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적당한 기술과 제품만으로 중국에 팔아먹을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네 번째 숫자 330만원. 중국인 한 사람이 지난해 해외여행에서 쓴 평균 금액이다. 10년 전(987달러)보다 세 배 넘게 늘었다. 늘어난 요우커(遊客)의 씀씀이는 한국의 관광수지 통계도 바꿔놓았다. 지난 7월 한국의 관광 수입은 16억1590만 달러(약 1조6500억원)였다. 역대 최고다. 7월엔 한국인의 해외 관광도 사상 최대(18억2370만 달러)를 기록했지만 관광수지 적자 규모는 13년 만에 최저로 되레 줄었다. 중국 관광객 덕분이다. 요우커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의 42%를 차지했다. 일본의 3배다.



 숫자들이 보여주는 중국은 두 얼굴이다. 어떤 숫자는 우리 경제에 독이고 어떤 숫자는 약이다. 여기까지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중국인·중국 자본의 규모다. 많아지면 달라진다. 사용자가 많아지면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뜨는 식이다. 중국인이, 중국 자본이 이 땅에 많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최고 기업 순위가 바뀌고, 더 이상 중국 수출로 먹고살 수 없는 시절이 올 것이며, (지금 북한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중국인이 던져주는 사탕을 과거 미국인의 초콜릿처럼 아이들이 받아먹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기업인은 몇 년 전 중국 경제의 약진이 두렵다며 이런 말을 했다. “한·중의 5000년 역사상 우리 세대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를 받고 산 최초이자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그의 불길한 예언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숫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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