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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라이벌] (25) 굴짬뽕 vs 고추짬뽕

짬뽕. 뜨끈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 푸짐한 해물을 비교적 싼값에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죠.



이번에 소개할 두 집은 대를 이은 화교 중국집입니다. 이름은 똑같은 짬뽕이지만 두 집의 대표 메뉴는 다릅니다.



한 집은 하얀색 굴짬뽕, 다른 집은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한 고추삼선짬뽕이 인기입니다.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롯데호텔 무궁화 천덕상 셰프,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의 추천을 받아 5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5곳을 7월 16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한 후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안동장과 야래향이 각각 1, 2위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요청에도 불구하고 안동장에서 취재를 거절해 3위 송죽장을 소개합니다.



라이벌 (26) ‘비빔밥’ 결과는 9월 17일 발표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손두부’ 투표 방법은 19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얀 도전 … “그땐 화교라 진급도 안 되고, 내 가게 차렸죠”



굴과 채소를 볶은 후 닭 육수를 넣고 끓인 광동식하얀굴짬뽕. 굴과 채소에서 나온 즙이 진한 국물의 비결이다.


“중국 요리? 우리 땐 공부 못하면 다 중국 요리했어요. 화교학교 같이 다니던 애들 중 특출나게 공부 잘하는 몇 명만 유학가고 나머진 다 중국집에 취직했죠.”



 중화 요리 45년 경력의 송성복(63) 야래향 대표는 중국 요리 입문 계기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19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서울은 아서원·호화대반점·팔선·홍보석 등 중식당 호황기였다. 이를 이끈 게 화교들. 송 사장도 그중 하나다.



 18살이던 69년 반도호텔(롯데호텔서울 자리) 중식당 용궁을 시작으로 아서원 등 당대 최고 중식당에서 요리를 배웠다. 아버지에 이어 중식 요리사 길에 들어선 것이다. 당시 주방 분위기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고됐다.



 “국자로 맞았어요. 때리러 오기도 귀찮으니까 손잡이가 긴 국자로 때렸죠. 선배 앞치마랑 양말도 다 빨아야 했고요. 뭐라도 하나 더 배우려고 참은 거죠. 선배들 어깨너머 틈틈이 배우기도 하고, 요리 나갈 땐 뭐가 들어가는지 일일이 수첩에 적기도 했어요. 그래야 안 잊어버리잖아요.”



 유명 중식당에서 경력을 쌓은 후 79년 대한항공 조리부에 입사했다. 보수가 좋았지만 4년이 채 안 돼 회사를 나왔다.



 “화교라 그런지 진급이 안 되더라고요. 똑같이 일하면서도 차별 대우를 받으니 화가 났죠. 퇴직금도 있겠다, 이젠 나도 사장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83년 송 사장은 안양에 태화루라는 중국집을 열었다. 주변 공장 다니는 사람이 많은 데다 ‘맛있다’는 입소문까지 나면서 제법 장사가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돈은 별로 못 벌었다.



 “그땐 다들 현금으로 계산했거든요. 공장마다 장부를 만들어 외상으로 먹고 나중에 받는 식이었죠. 그런데 하루 아침에 문 닫는 공장이 그렇게 많은 거예요. 외상값으로 한달에 몇 백만원씩 그냥 날렸어요. 100만원 벌면 40만원은 수금을 못했죠. 돈이 없으니 식재료상에 돈을 제때 못 주고, 질 나쁜 걸 줘도 그냥 써야했어요.”



① 송성복 사장이 굴과 채소를 볶고 있다. 송 사장은 “요리는 손맛”이라며 “정성들여 볶아야 한다”고 했다
 손맛이 아무리 좋아도 안 좋은 재료로는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없었다. 결국 가게 문을 닫고 태평로 사보이호텔 중식당인 호화대반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 만인 92년 회현동에 다시 가게를 열었다. 이번엔 잘 될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매장에서 100여m 떨어진 곳이었는데 규모가 33㎡(10평) 남짓으로 작았다. “명동 화교학교가 있어 화교들이 많은 데다 신세계백화점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다”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다. 야래향이라는 이름도 친구가 지어줬다고 한다.



 “내가 밤잠이 없어요. 밤에 꽃을 피우는 야래향이 나랑 잘 어울린다면 가게 이름을 지어줬어요. 가게 앞에 저 화분이 야래향이예요. 밤이 되면 꽃이 피고 향이 짙어져서 좋아요. 중식도 점심보다는 저녁에 많이들 오거든요. 중식당이랑 잘 어울리는 이름이죠.”



 당시엔 야래향이라는 이름의 중국집이 드물었다. 그러나 송 사장의 야래향이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 곳곳에 생겼고 지금은 200여 개에 이른다.



 야래향의 성공은 태화루의 실패가 약이 됐다. 메뉴와 경영 방식을 다 바꿨다. 메뉴를 확 줄이고 배달을 포기했다.



 “테이블이 다섯 개밖에 없을 정도로 작아서 혼자 다 했어요. 메뉴가 다양하면 손이 많이 가니까 한 가지로 승부하기로 한 거죠. 다른 집은 일반 짬뽕, 삼선짬뽕, 볶음짬뽕 등 다양하지만 우리는 굴을 넣었죠. 종류도 빨간 것과 하얀 것 두 개만 했어요. 처음엔 손님들이 당황하더라고요. 삼선짬뽕 달라는데 없다고 하니까. 그런데 먹어보고는 다른 거 달란 소리 안 하더라고요.”



 야래향 대표 메뉴인 굴짬뽕은 이때 처음 나왔다. 굴을 센 불에 볶으면 진득한 즙이 나와 국물이 진해진다. 굴짬뽕은 굴에서 나온 즙 덕분에 구수하고 맛이 깊다. 굴 신선도가 중요할 수밖에 없어 요즘도 매일 통영에서 직접 굴을 받는다. 통영산이라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인근 시장에 달려가 신선한 것을 사온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더더욱이 중국집은 배달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그걸 안했다. 배달원 구하기 힘든 데다 수금한 돈과 오토바이까지 갖고 도망가는 배달원이 적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배달하는 동안 식거나 면이 불어 제대로 된 맛을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점차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2년 만에 바로 옆 치킨 가게를 인수해 매장을 넓혔다. 매장이 세 배나 넓어졌는데도 식사 때마다 사람들로 꽉 찼다. 그렇게 9년쯤 지난 2001년 재개발로 가게를 비워야 했다. 그래서 간 곳이 동부이촌동이다. 아파트 단지에 있었지만 회현동 시절과 똑같이 배달을 하지 않았다.



② 밀가루뿐 아니라 쌀가루까지 섞어 식감이 쫄깃한 면. ③ 굴은 매일 통영에서 직접 받는다. ④2002년 확장 이전한 회현동 야래향 외관.


 “처음엔 낯선 곳인데다 홍보가 안되서 힘들었어요. 반 년쯤 지나니까 동네뿐 아니라 원래 야래향에 오던 손님까지 멀리서 차 끌고 찾아오더라고요.”



 하지만 1년 만에 회현동으로 돌아왔다. 2년 넘게 가게세도 제대로 못 낼 만큼 장사가 안되던 한식집 자리가 나온 거다. 원래 야래향이 있던 데서 멀지 않은 데다 권리금이 없었다. 동부이촌동 가게는 형에게 맡겼다.



 동부이촌동 시절이든 회현동 시절이든 20년 넘게 장사를 하며 송 사장이 지키는 원칙이 있다. 정성이다.



 “요리는 손맛이에요. 손맛은 정성에서 나오고요. 짬뽕은 채소와 해산물을 볶아 만드는데 이때 건성건성 볶으면 국물이 진하지 않아요. 볶음밥도 팬을 한 번 돌리는 것보다 서너 번 돌리면 더 맛있어요. 기름기가 날아가면서 밥이 더 고슬고슬해지거든요. 그래서 직원들한테 늘 빨리 하지 말고 정성껏 하라고 강조하죠.”



 체인을 내라는 제안이 많이 들어오지만 늘 거절한다. 가게를 더 넓히거나 분점을 낼 생각도 전혀 없다.



 “가게가 넓어지면 손님 한 명을 대하는 정성이 그만큼 소홀해질 수 밖에 없잖아요. 분점도 마찬가지예요. 중국 요리는 즉석에서 볶아내야 하는데 어떻게 매장마다 같은 맛을 내겠어요.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래야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빨간 위로 … “고생해봐서 어려운 사람 맘 잘 알아요”



새우·소라·오징어·조갯살 등 해산물에 청양고추를 넣은 고추삼선짬뽕. 해산물이 풍성하고 국물이 칼칼하다.


‘송죽장 때문에 영등포에 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江南通新 독자가 맛있는 짬뽕집으로 송죽장을 추천하며 보내온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송죽장은 이처럼 영등포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맛집으로 유명하다. 사실 중국집은 흔하기 때문에 오래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1952년부터 63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만 봐도 맛은 어느 정도 검증된 셈이다.



 송죽장 역사는 1대 신무송(2002년 작고·전 화교외식업협회장)씨가 신길동에 가게를 열면서 시작됐다. 19살이던 1941년 국공내전과 중일전쟁 등을 피해 고향인 중국 산둥을 떠나 한국에 온 신씨는 한국에서도 6·25전쟁을 겪는 등 고생 끝에 52년 가게를 열었다. 당시는 가게를 직접 찾는 손님보다 배달주문이 더 많았다. 오토바이가 흔할 때가 아니라 리어카에 짜장면을 싣고 다녔다. 인근 방직공장과 맥주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근로자가 고객이었다. 한 번에 50~60그릇씩 싣고 배달을 다녔다. 이후 문래동을 거쳐 70년 무렵 지금 가게 자리로 옮겨왔다.



 신씨 맏아들인 신연경(62·남) 대표가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은 건 90년대 후반이다. 신 대표는 송죽장이 처음 문을 연 52년에 태어난 ‘송죽장 둥이’다. 중식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중화요리를 배웠다. 성인이 된 후 무교동에서 따로 중국집을 열어 장사를 제법 잘했으나 아버지를 도우려고 90년대 후반 자기 가게를 접었다.



①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신연경 대표. ② 단무지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매장에 설치한 전용 냉장고. ③ 4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죽장 외관.


 “아버지가 도와달라고 한 건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죠. 당시 연세가 일흔 정도셨으니 자식 중 한 명은 아버님을 도와 가게를 맡아야 했어요. 역사가 그렇게 오래됐는데 문을 닫을 순 없잖아요.”



 신 대표가 송죽장을 맡은 90년대 후반은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시름에 빠졌을 때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워주고 싶어 개발한 요리가 고추짬뽕이다.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단다.



 “사람들이 다들 힘이 없잖아요. 힘내라고 짜장면 볶을 때 청양고추를 넣고 볶아봤어요. 매콤한 맛이 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짬뽕도 마찬가지예요. 청양고추를 잘게 다져 넣으니까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나더라고요.”



 청양고추를 넣은 짬뽕과 짜장면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신 대표식 짜장면과 짬뽕을 보려는 사람들로 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는 “캡사이신을 넣어 자극적인 매운맛을 내는 요즘의 매운 짬뽕과는 다르다”며 “그런 짬뽕은 먹을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라고 했다. 매운맛을 내되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2006년 인근에 쇼핑몰 타임스퀘어가 문을 열면서 가게를 찾는 손님은 더욱 늘었다. 정작 쇼핑몰 안에 식당이 수십 개 있었지만 송죽장의 인기를 넘는 곳은 별로 없다.



 늘 길게 줄이 늘어서지만 실제 기다리는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길게는 2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손발을 맞춘 직원 덕분이다. 주방은 튀김, 면뽑기, 면삶기, 칼질하기, 면잡기, 메뉴 불러주기 등 분업이 다 돼 있어 요리를 금세 만든다. 절대 미리 만들어 놓은 요리를 내지는 않는다. 면까지도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뽑을 정도다.



④ 면은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뽑아낸다.
 “한 번은 근처 중국집에서 면 빌리러 왔길래 밀가루 포대를 줬죠. 그랬더니 황당해하며 공장에서 뽑은 면 없냐고 묻더라고요. 우리는 그런 거 안 써요. 공장에서 만들어진 면 쓰는 곳이 꽤 있는데 그렇게 하면 면발이 탱탱하지 않고 금방 불어요. 주문하면 바로 뽑아서 삶습니다.”



 60년 넘게 역사를 이어온 비결을 묻는 질문에 신 대표는 “특별한 게 없다”면서도 기본을 강조했다.



 “뭐 특별한 건 없어요. 신선한 재료를 쓰고, 깔끔하게 위생을 유지한다는 것 정도? 그런데 그건 기본 아닌가요. 요리는 재료가 신선해야 제맛이 나거든요. 아무래도 식재료상이랑 오래 거래했으니 그만큼의 신뢰가 쌓여 좋은 물건을 받을 수 있겠죠.”



 비결은 하나 더 있다. 신대표가 늘 계산대를 지키는 거다. 그는 “주인이 주방을 모르면 요리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다”며 “나는 10년 정도 주방에서 일해 요리가 나오는 것만 봐도 잘 된 건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요리와 함께 살펴보는 게 식사를 마친 손님 반응이다. 요리가 입맛에 맞았는지, 다른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살뜰히 챙긴다.



 오래된 집이라고 전통만 답습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한다. 2010년엔 가게를 리모델링했다. 25일이나 가게 문을 닫고 대대적으로 공사를 했다. 실내는 깨끗하게 새단장했고 주방은 직원들이 일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또 좌식 형태 룸은 테이블로 바꿨다. 고객 대부분 신발 벗고 앉는 좌식이 불편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단무지·양파 전용 냉장고를 매장 안 두 곳에 설치했다.



 “단무지 있는 곳을 잘 보세요. 선반이 아니에요. 신선하게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를 놓은 거예요. 중화요리 기본인 단무지부터 신선하게 먹을 수 있도록 했어요.”



 배달도 없앴다.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켰기에 단골 중에는 가게 바로 앞 영등포 지하상가 상인이 많다. 이들은 여전히 배달을 원하지만 4년 전부터 가게를 찾는 고객을 감당하기도 어려워 배달을 없앴다. 이 모든 게 “송죽장의 역사를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에서 나온 거다.



 “아버지가 송죽장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소나무와 대나무를 뜻하죠. 두 나무 모두 항상 변함없잖아요. 추운 겨울도 잘 이겨내고요. 가게를 하면서 왜 힘든 때가 없겠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면 생각이 안나요. 앞으로도 지금까지 잘 이겨내온 것처럼 계속 이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글=송정 기자 asitwer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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