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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21) 터키

딸 지원이가 다니는 아시에 아아오울루 아나돌루 고등학교의 2013학년도 졸업식 모습. 터키 공립 고등학교는 4년제라 9~12학년이 다닌다.


터키에 산 지 14년째다. 우리 부부는 한국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촬영 등을 하러 오면 장소 섭외와 통역을 도와주는 방송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처음부터 사업 때문에 터키에 온 지라, 아이 교육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못했다.

한국 같은 주입식 교육, 그런데 아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는 이유는



 그래서인지 터키에 온 후 교육 정보가 없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미국이나 북유럽 등 교육 선진국과 달리 터키는 교육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없어 직접 발로 뛰며 하나하나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터키는 외국인이라도 공립학교에 입학하는 데 전혀 차별이 없었다. 초·중·고 모두 마찬가지다. 내국인과 똑같은 조건으로 입학 가능하다. 딸 지원이는 우리 부부가 터키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한국에 있다 2008년 초등학교 4학년 때 터키로 왔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의 재학증명서와 터키 거주허가서를 갖고 관할 교육청에 공립학교 입학 신청서를 제출하자 일주일도 채 안 돼 거주하는 학군 내 학교로 배정받을 수 있었다. 공립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중·고교 입학도 당연히 현지 아이와 똑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공립 고교, 연합고사 성적 따라 배정



터키 공립학교 분위기는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주입식으로 진행하는 강의 위주 수업이나, 자율성보다 엄격함을 강조하는 교사의 모습 등이 한국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학비는 무료이고 1년에 학교 행정비로 20만원 정도를 내는데, 이것도 기부금 명목이라 강제성은 없다. 돈을 내지 않아도 불이익을 당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터키 공교육이 선진국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은 자녀를 주로 국제학교에 보낸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굳이 공립학교에 보낸 데는 이유가 있다. 남편과 나는 터키를 제2의 고향으로 삼은 터라 한국으로 다시 터전을 옮기는 건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이 역시 터키를 고향으로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국제학교에 보내면 나중에 동창들이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 뿔뿔이 흩어질 게 걱정이 됐다. 이곳에 친인척도 없는데 동창마저 없으면 터키에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 거다. 그래서 현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립학교를 택했다.



 터키 공용어는 영어가 아닌 터키어다. 공립학교를 보내고 싶어도 언어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겪어보니 터키어는 정말 배우기 쉽다. 일단 어순이 한국말과 똑같기 때문에 단어만 외워 문법에 끼워 맞추면 금세 따라할 수 있다. 우리 지원이는 워낙 어릴 때 터키에 와서 현지 아이처럼 터키어를 쉽게 배웠지만, 중학생 즈음에 온 한국 아이들도 길어야 6개월이면 의사 소통에 지장 없는 수준까지 오르는 걸 보면 확실히 다른 언어보다 쉬운 편이다. 나 역시 터키어를 한마디도 모른 채 이민을 왔는데도 1년 정도 지나니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지난해 열린 학교 대항 스포츠 대회. 이스탄불에 있는 고등학교가 모두 참여했는데, 이 학교는 6개 종목에서 트로피를 받았다.
 우리 가족이 사는 움라니에(Umraniye)는 관광지로 유명한 이스탄불 외곽에 있는 인구 밀집 지역이다. 터키도 한국만큼 교육열이 높아 부모의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 자녀를 대학까지는 가르치고 싶어한다.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움라니에 학부모 역시 자녀가 좀더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 학교에 진학하길 원한다. 본격적인 입시는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 이뤄진다. 과거 한국의 연합고사와 비슷한 고교 진학 시험을 치른 뒤 그 성적을 기준으로 1지망부터 10지망까지 희망 학교를 적어 낸다. 그중 합격한 학교에 다니게 된다.



 지원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스탄불의 아시에 아아오울루 아나돌루 고등학교다. 터키 고등학교는 일반 국립고와 기술·직업 국립고로 나뉘는데, 아시에 아이오울루는 일반 국립고 중에서도 성적 상위자가 다니는 명문학교에 속한다. 설립한 지 5년 밖에 안돼 시설도 좋고 학력도 우수해 많은 중학생들이 진학하기 원하는 학교다. 전교생이 1200명 정도로 규모가 큰데,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권 학생도 지원이 딱 한 명뿐이다. 그외에 외국 학생이 서너 명 있긴 있긴 하지만, 국적만 외국에 둔 터키 학생이다. 결국 지원이는 이 학교의 유일한 외국 학생인 셈이다.



 그래서 처음엔 지원이가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외국인이라고 따돌리진 않을까, 반대로 너무 과도한 주목을 받아 아이가 부담스러워하면 어쩌나 고민했다.



 막상 학교에 가보니 일부러 따돌리고 소외시키기는커녕 연예인 보듯 호감을 보이는 친구가 더 많았다. 먼저 지원이에게 “한국에서 왔냐”고 묻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말을 건넸다고 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도 지원이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너무 많아 누구와 함께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터키는 빈부 격차가 꽤 심한 편이라, 오히려 자국 학생끼리는 계층간 구분 탓에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원이에게는 누구나 스스럼없이 대해줘 고마울 따름이다.



 사실 지원이 친구뿐 아니라 대다수 터키 사람은 한국인을 굉장히 좋아한다. 한류 영향도 매우 큰데, 최근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인기리에 방영돼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 남편이나 내가 거리를 다니다보면 낯선 터키 사람이 손을 흔들며 현지어로 “한국 좋아요”라고 말하며 친절하게 미소 짓는 걸 자주 본다.



교과 과정 경쟁보다 협력 강조



2013년 6월에 열린 9학년 학부모 회의 모습. 학년별 모임이 끝나면 학급별로 담임 교사와 만난다.
지원이 말을 들어보면 터키 학교에서 가장 재미있는 수업은 역사다. 특히 아시에 아아오울루 고등학교가 위치한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라 역사 공부에 제격이다. 히타이트문명에서 로마 문명, 오스만 투르크 제국 등 다양한 문명과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라 역사 공부의 의미가 한층 더 와닿는 모양이다. 역사 수업 과제는 주로 학생 서너 명이 조를 짜서 원하는 주제의 프로젝트를 해오는 것이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스탄불 이곳저곳을 탐방하며 과제를 한다.



 다른 과목은 대체로 한국 학교처럼 교실에 앉아 교과서로 공부하는 주입식 수업으로 이뤄진다. 터키 정부가 외국어 공부를 강조하는 편이라 중학교 때부터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와 독일어까지 배운다. 이런 외국어 수업 역시 한국처럼 문법과 단어 암기 위주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유창한 실력을 갖추기 어렵다보니 터키도 한국처럼 외국어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한국 교육과 비슷한 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확연하다. 시험은 학기별로 중간고사 두 번과 기말고사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을 치른다. 시험 기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교사가 과목별로 수업 일정에 따라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1년 내내 시험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시험 일정만 보면 공부에 시달려 힘들 것 같지만, 정작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늘 어울려 다니는 모습이 국제학교처럼 자유로운 분위기다.



 잦은 시험에도 학생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 이유는 평가 방식이 한국과 달라서인 것 같다. 터키는 절대평가로 학생의 성적을 내고, 순위는 매기지 않는다. 또 시험 점수 외에도 수업 태도나 프로젝트 과제 등 다양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최종 성적을 매긴다. 프로젝트 과제는 대부분 친구와 함께 조사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방식이라 서로 협업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평가 방식 덕분인지 터키 학교는 한국 학교에 비해 훨씬 우호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다.



학교 행사에 터키친구들과 함께 한복을 입고 참여한 박지원양(왼쪽).
 교사 모습 역시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아시에 아아오울루는 한 반 정원이 35명 정도다. 인원이 많다보니 교사 한 명이 수업을 이끌어가기 위해 다소 엄격한 생활 태도 지도를 한다. 바른 수업 태도와 질서를 강조하는 모습은 한국 교사와 많이 겹친다. 차이점은 학부모와 굉장히 긴밀하게 소통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정한 교사와의 만남 시간은 한 학기에 두 번 정도인데, 이때가 아니더라도 상담은 수시로 가능하고 학생 개개인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해 짚어준다. 교사가 먼저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스타일이라, 학부모 입장에서도 학교 문턱이 아주 낮게 느껴져 자주 찾아가게 된다.



 앞서도 말했듯 터키는 핀란드나 폴란드처럼 ‘교육 천국’은 아니다. 학교 시설도 지역별 차이가 커, 깨끗한 신설학교와 달리 낙후 지역은 한국의 1980년대 교실처럼 열악한 곳도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가는 부분도 분명 있다. 교육청에서 중고생 전체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해 이미 전자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고, 학업에 열중하면서도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하는 교과 과정도 훌륭하다.



엄마 류정아(오른쪽)씨와 딸 박지원양.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엄마 류정아(41·터키 이스탄불 움라니에),

딸 박지원(16·아시에 아아오울루 아나돌루 고등학교 10학년)

정리=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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