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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어쩌나, 아이비리그 비정규직 신세





금융계 '귀했던 몸'의 추락
취업시장서 왜 고전 하나



























유학파의 위상에 영향을 끼친 여러 사건을 담은 실제 신문 제목들.
영어만 잘 하면 만사형통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학파 몸값이 대단했죠. 하지만 이젠 명문 아이비리그 졸업자도 국내에서 원하는 직업을 갖고 좋은 대우를 받기 쉽지 않습니다. 고액 연봉을 주던 외국계 금융사 등 이들을 수용할 좋은 일자리가 많이 준 탓도 있지만 유학파만의 영어 프리미엄은 사라지고 그 대신 국내파의 조직 적응력을 요구받기 때문이라는데요. 유학파의 흥망성쇠를 한번 따라가 볼까요.






유학파, 좋은 시절 다 갔네



“유학파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로 특권이었죠. 원하는 직장에 좋은 조건으로 가는 건 뭐, 기본이고요. 경제·경영쪽 전공이라면 대부분 연봉 높은 외국계 금융사나 명문 경영대학원(MBA) 진학이 쉬운 경영컨설팅회사에 갔습니다. 국내파는 직장 구하기조차 힘들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유학파에게 취업걱정은 다른 세상 얘기였어요.” 1990년대 중반 명문 시카고대를 졸업하고 국내의 한 외국계 금융사에서 경력을 시작한 40대 A씨 얘기다. 과장이 아니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까지 받았던 당시 외환위기 여파로 국내 시중은행을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대량 실직자가 발생하고 청년 실업자가 속출했지만 유학파만은 예외였다.  



여름학기를 한국에서 보내려는 교포와 유학생으로 늘 붐볐던 연세대 국제어학당 로비의 게시판엔 외환위기 와중에도 해외 고급인력을 찾는 증권사 등의 채용공고가 끊이지 않았다. 캐나다 오타와대를 졸업하고 다양한 경력 끝에 현재 국내의 외국계 헤드헌팅 회사에 다니는 김기욱(41) 상무는 “어학당에 다니던 유학생과 교포는 졸업 전이라도 서류나 필기시험 없이 곧바로 취업 면접을 볼 수 있었다”며 “특히 유학파는 한국말이 서툰 교포와 달리 영어는 물론 한국어까지 잘하니 어디서든 반겼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4년 현재. 유학파의 위상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추락했다. 조건 보고 골라가기는커녕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졸업한 유학파조차 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외국계 금융사의 단기 계약직 자리도 구하지 못해 당혹해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 우리 사회에 그간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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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권력에서 수단으로



A씨는 자신이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을 유학파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미국의 MBA 출신뿐 아니라 학부만 나온 유학파 역시 좋은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에 진출하거나 진출을 앞둔 외국계 금융사들이 앞다퉈 유학생을 뽑아갔다”며 “외국계는 국내 금융사와 달리 공채를 하는 게 아니라 그 학교 졸업생 등 인맥을 통해 미국 현지에서 알음알음으로 채용하다보니 SKY명문대를 나왔다해도 국내파가 외국계 금융사에 발을 들여놓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92년 외국인에게 국내 주식시장을 개방하는 등 한국경제의 글로벌화를 계기로 외국계 증권사가 국내에 쏟아져 들어왔다. 증시 개방 이후 4~5년 새에 10곳 넘는 지점과 법인이 새로 세워질 정도였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일자리를 채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한국 진출 초기 대부분의 외국계 금융사는 대표를 한국인이 아닌 본사 사람으로 채웠는데,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외국인 고객 상대뿐만이 아니라 사내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도 영어 구사자가 꼭 필요했다. 차라리 한국어를 못할지언정 영어는 필수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국내 대학 졸업자 가운데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인력이 흔치 않아 교포나 유학파 몸값이 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다시 말해 질 좋은 일자리는 많고, 그 자리를 채울 수있는 조건(영어 구사 능력)의 인력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입사 1~2년차에 1억원대 연봉을 받을만큼 몸값이 뛴 거다. 또 이들을 원하는 곳이 많으니, 점점 더 좋은 조건을 보장받으며 쉽게 이직할 수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대 중반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김주하·강수정 등 당시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히던 유명 여자 아나운서의 배우자로 한동안 유학파 출신의 외국계 금융사 종사자가 유독 많았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고액 연봉에다 웬만하면 명함에 간부 타이틀을 새겨주는 직함 인플레이션 덕에 외국계 금융사에 다니는 금융인은 그야말로 결혼시장에서도 상종가를 쳤다.



유학파를 원한 건 외국계 금융사뿐만이 아니다. 국내 주요 기업도 우수인력유치를 명목으로 유학생을 대거 뽑았다. 외국계 금융사나 컨설팅 회사를 선호하는 유학생을 데려오려니 국내파보다 혜택을 더 줄 수밖에 없었다.



RBS·베어스턴스 임원을 지낸 경영자문사 머큐리 밸류 파트너스의 서영석(51) 대표는 “10~20년 전만 해도 영어권 대학을 나오거나 유명 MBA를 따온 사람은 국내 대기업에서 ‘조기 승진 대상자’로 여겨졌을 정도”라며 “골라서 취업하고, 어딜 가도 대접받던 시절”이라고 기억했다.



영어 구사력이 그만큼 대단한 능력으로 평가받았다는 얘기다. 말로 하는 의사소통뿐 아니라 보고서 등 문서 역시 영어로 작성할 수 있어야 능력을 인정받았다. 투자 보고서를 쓰는 증권사 리서치 인력이 대표적이다. 2006년 ‘영어가 권력이다’라는 제목의 한 일간지 기사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영어로 분석 보고서를 쓸 수 있는지 여부가 애널리스트를 1류와 2류로 나누는 기준이 됐다. 우리 증권사에는 영어로 보고서를 쓰지 못하는 2류가 없다”는 삼성증권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이 나올 정도다. 지금은 분위기가 물론 사뭇 달라졌고, 현재 이 증권사 애널리스트 31명 중 학부를 해외에서 나온 유학파는 단 두 명 뿐이다. 영어가 권력에서 수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학 프리미엄? 이젠 무용지물



유학생 프리미엄이 급속하게 사그러든 건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야기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다. 근원지인 미국 월가가 휘청였고, 급기야 대표적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인수합병이 잇따랐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금융사도 인력을 대거 감축하는 구조조정에 나섰다. 한국 금융시장은 월가에서 기침만 해도 심한 몸살을 앓는 변방인데, 세계금융의 중심지가 흔들리니 한국 시장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리먼브라더스 임원을 지낸 SK플래닛의 함우곤(40) 사업개발 팀장은 “한국은 금융·서비스업 규모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인력시장에 충격이 더 컸다”며 “기존 인력도 감원하는 통에 유학생을 비싼 돈 주고 따로 챙겨 뽑을 여유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제아무리 영미권 명문대를 졸업해도 국내에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오죽하면 2009년엔 적지 않은 유학파가 과거 고졸 출신이 주로 담당하던 은행 창구직 직원에 대거 지원할 정도였다.



이후 서서히 회복하던 국내 금융계 일자리는 올 들어 다시 큰 폭으로 줄었다. 올 7월 외국계를 비롯한 금융권 취업자 수는 84만 5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5.4%(4만9000명)나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 수는 50만명 이상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그렇다보니 외국계는커녕 저축은행이나 심지어 대부업체에도 유학파가 몰린다.



함 팀장은 “내수 침체 장기화로 대기업 투자가 부진하면서 관련 서비스를 하던 국내외 금융사 사정도 덩달아 나빠졌다”며 “금융사를 포함해 국내 외국계 기업이 유학파에게 제공하던 연봉은 10여년 전에 비해 최소 20% 가량은 줄었다”고 말했다.



일자리와 혜택이 동시에 사라진 셈이다.



펜실베니아대학 재학 중 국내에 진출한 한 영국계 투자은행에서 인턴을 하기도 했던 B씨는 “학벌에 스펙까지 나름 착실히 취업 준비를 했다고 확신했다”며 “그런데 막상 일자리를 알아보니 갈 곳이 없어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까스로 한 외국계 금융사에 들어가기는 했다. 연봉은 전보다 많이 줄어든 4000만원대 수준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비정규직이라 곧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과거엔 비정규직이라도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오히려 몸값을 ‘뻥튀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여느 기업의 비정규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분 불안에 떤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게 악화하다보니 이미 취업에 성공한 사람도 불안해하기는 매한가지다. 한 아시아계 은행을 다니는 20대 유학파 C씨는 지난해 말 가까스레 계약직 신세를 벗어났다. 하지만 이 은행이 최근 일부 사업을 국내에서 철수시킨 뒤 좌불안석이다. 그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잠을 못 잘 정도”라며 “무늬만 정규직이지 사실상 무기계약직 신분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들이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경쟁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요구하는 인재상이 달라진 요인이 크다. 한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인 30대 유학파 D씨는 “영어 능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소수인 정규직은 영어를 잘 하는 금융 전문 변호사나 세무사가 꿰찬다”고 했다. 영어가 아니라 다른 전문성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그 이후 국내의 내수부진으로 일자리가 줄어든 요인에 더해 한국 시장이 커진 것도 역설적으로 유학파의 설 자리를 점점 비좁게 만들고 있다. 영어보다 차라리 한국어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한국 진출 초기 자국 출신을 한국 법인이나 지사 대표로 보내던 외국계 금융사들은 점차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토종에게 기회를 주기 시작했다. 헤드가 국내파로 채워지면서 아래 직원도 굳이 유학파를 기용할 이유가 없어졌다. A씨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외국계 금융사는 교포와 유학생 위주로 채용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절반 이상이 국내파”라고 말했다. 서 대표도 “요즘엔 유학파나 교포 출신 임원도 우리나라 사정에 익숙한 국내파를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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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파에 밀려



국내 대졸자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각종 스펙과 정보로 무장한 국내파가 유학파를 위협하고 있다. 유학파는 국내파에 비해 인턴 등 실무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고 취업 관련 정보에 어둡기 때문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인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4학년인 최연수(24)씨는 “미국에서 가급적 인턴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지만 국내파 경쟁자에 비해 여전히 경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E(27)씨는 부족한 인턴 경험을 약점으로 꼽았다. 지난해 한 미국계 금융사에서 인턴 기간 동안의 실적으로 한 명을 채용하는 조건으로 3개월간 근무했는데 결국 국내파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그는 “국내파는 방학마다 인턴을 하니 경력이 나보다 앞서더라”며 아쉬워했다.



최근 들어 금융사를 비롯해 각 기업에서 유학파보다 국내파를 더 선호하는 건 유학파의 경쟁력이 국내파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임원 F씨는 “최근 하버드대 출신과 서울대 출신에게 각각 한글 리포트를 맡겼는데 하버드대 출신의 한글 글쓰기 능력이 너무 부족하더라”며 “설사 한국어 능력은 갖췄더라도 외국계 역시 점차 현지화하는 만큼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유학파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유학파의 강점이던 영어 구사력도 이젠 국내파보다 그리 우위에 있지 못하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조기 영어교육 일반화와 외국어고 출신 인력의 대거 배출 등으로 우리 사회의 영어소통 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고 말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대학 경영학과는 (금융계 등) 취업에 용이하게끔 강의 커리큘럼을 짠다”며 “국내파 취업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학 열풍도 한풀 꺾이는 추세다. 지난 2008년 21만여 명에 달하던 유학생 수는 2011년 26만 명까지 늘었다 2013년 현재 22만 명으로 내려앉았다.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게 예비 유학생을 키우는 외고나 자사고 국제반 수 추이다. 서울 외고 6개교 중 대원외고와 한영외고만 국제반을 운영하는데, 이마저도 매년 지원학생이 줄고 있다.



한 외고 교감은 “과거 유학파가 누리던 인센티브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이 때문인지 3~4년 전엔 학년당 90명에 달하던 국제반 학생이 현재 3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글=안혜리·조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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