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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당제·중선거구제로 다양한 목소리 수용해야

최정동 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개조를 전면에 내걸었다. 관피아 척결과 공기업 개혁을 앞세운 국가개조는 이후 국가혁신으로 표현을 바꾸면서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국가혁신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이견과 우려가 적잖다. 국가혁신의 방향은 잘 잡았는지, 개혁 대상은 올바르게 선정했는지에 대한 학계와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사진) 국민대 교수를 만나 박근혜 정부의 국가혁신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대한민국 혁신의 조건]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진단

현 정부, 개조·혁신 구분 못한 채 접근
-국가개조론이 화두다.
 “국가개조와 국가혁신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내외적 환경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분업 체제가 가속화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신속하고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의사결정의 두 주체는 국회와 행정부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릴 능력도 구조도 갖춰져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주변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숙제는 더 많이 쌓여가지만 이를 풀어낼 메커니즘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세월호 국면을 봐라. 국회도 대통령도 관료도 아무런 결정을 못하고 있지 않나.”

 -박근혜 정부의 국가혁신을 어떻게 보나.
 “한마디로 레토릭에 불과하다. 국회와 행정부의 전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가운데 보다 큰 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접근 방식 자체가 틀렸다. 그러니까 이내 관피아 척결이 국가개조와 동의어가 돼버린 것 아니냐. 마치 공무원을 잡으면 국가개조가 다 되는 것처럼 난리를 쳤지만 지금까지 뭐 하나 달라진 게 있나. 이는 문제 해결의 순서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용어도 개조에서 혁신으로 바꿨는데.
 “혁신은 지속적인 개념인 반면 개조는 큰 맘 먹고 틀을 한 번 바꾸는 거다. 의미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국가는 꾸준히 바꿔가야지 개조하고 끝내는 대상이 아니잖은가. 매일 상을 뒤엎을 순 없지 않나. 용어를 쉽게 바꾸는 것부터가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결국 국회와 행정부의 개혁이 국가혁신의 핵심이며, 이를 국가적 과제 차원에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정치 혁신, 행정부는 정부 혁신으로 이어진다. 먼저 정치 혁신에 대해 물었다.

 -정치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의 정당과 국회는 의사결정 능력과 정책 역량이 제로에 가깝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국회의원 중에는 똑똑한 사람도 많지만 집합적 차원에선 결정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게 현실 아닌가.”

 -뭐가 가장 큰 문제인가.
 “정당이 뜻을 세우고 세력을 모으는 게 아니라 지역을 기반으로 필요할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 모아온 게 비극의 뿌리다. 자질과는 상관없이 대중적 지지가 좀 있다고 끌어들이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당의 전략도, 비전도 세울 수 없는 게 당연했고 문제가 생기면 뒤만 따라가기 바빴던 거다. 연평도 사태가 터져도 보온병을 들고 호통치는 것 말고 뭘 더 할 수 있었겠나(당시 피격 현장에 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불에 탄 보온병을 집어 들곤 북한이 쏜 포탄의 탄피로 착각해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당 구조 속에서는 포지티브하게 지지를 이끌어내는 건 언감생심이고 오히려 비난과 분노의 네거티브 정치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와 정당 위기론을 거론했다. “앨빈 토플러도 ‘의회는 농경시대의 유물’이라 하지 않았나. 산업혁명 이전에는 서구 의회에 상정되는 법안이 1년에 몇 십 개뿐이었지만 지금은 몇 천 개에 달한다. 이슈들은 훨씬 다양해졌고 이해관계 또한 복잡해졌다. 하지만 의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구조상 빠르게, 대량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많은 미래학자도 머지않은 장래에 정당은 소멸할 거라고 경고하고 있지 않나.”

 -해결책은 뭔가.
 “오늘날 한국 정치의 무능력 상태는 의회주의의 본질적 한계와 한국 정치의 특수성이 겹치면서 생겨났다. 이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이젠 중선거구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다당제가 되면 지금의 양당 구도가 담아내지 못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훨씬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을 거다. 절대다수가 아닌 완화된 다수의 통치 형태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 같은 구조에선 이순신 장군이나 안중근 의사가 와도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의회 권력을 분산해 새로운 21세기형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 때다.”

행정 투명화로 ‘철의 3각 유착’ 끊어야
-관피아 문제는 어떤가.
 “정당의 정책 능력이 떨어지니 여당도 대통령을 받쳐줄 힘이 없고, 결국 대통령은 관료들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당에서 사람을 데려다 키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당장 일이 급한데 청와대에 그럴 여유는 없다. 노무현 정부 때 보니까 정치인 출신 장관들조차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설파하긴커녕 서너 달만 지나면 오히려 부처의 대표가 돼서 대통령을 찾아오더라. 정당의 부실이 관료 천하와 직결되는 구조인 셈이다.”

 -모든 관료가 개혁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관료 자체가 악마는 아니다. 다만 관료제에 뿌리 깊이 내재돼 있는 전통적 병폐가 문제다. 무사안일, 형식주의, 복지부동, 부처이기주의 등이 그것이다. 사실 관료 입장에선 수많은 법과 규정이 전부 지뢰다. 잘못 밟으면 죽으니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인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과 비전, 능력을 가진 정치인 리더가 잘 이끌어 주면 관료도 빛나고 정부도 잘 운영될 텐데 청와대와 여당은 갈피를 못 잡고 야당은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으니….”

 -유착의 폐습도 비판 대상이다.
 “국회와 관료집단·기업 간 철의 3각 고리는 아무리 막아도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관료 출신들이 대형 로펌에 스카우트되는 건 재직 때 일종의 마일리지를 쌓았기 때문이다. 산하기관에 못 가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숨어서 유착하게 돼 있다. 이런 유착을 끝까지 추적해서 막는다? 불가능하다. 해법은 행정 과정을 투명화하는 길뿐이다. 미국에 수많은 로비스트가 있어도 큰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 돈을 받았고, 누구를 만났으며, 누구와 서신을 주고받았는지 전부 공개하기 때문이다.”

 -개방형 관료제가 해법으로 거론되는데.
 “외부 인사 영입은 필요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주의할 점이 훨씬 많다. 인재 풀이 좁은 데다 외부 인력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시장과 관료체제가 유착을 넘어 아예 일체화돼버리는 부작용을 낳기 십상이다. 특히 규제권이 강한 경제부처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대통령의 막강한 힘으로도 해결 못하나.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실제 정부를 운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관료들도 정권이 몇 번 바뀌면서 ‘나를 끝까지 보호해줄 사람은 선후배와 동료들이지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게 됐다. 여당도 2~3년만 지나면 레임덕 대통령 취급한다. 정권을 잡아도 정권의 주인이 아닌 거다. ‘명량 신드롬’도 그렇고 요즘 많은 사람이 새로운 영웅을 얘기하는데 철저한 정치·정부 혁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준비돼 있어야 지도자도 있는 법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잘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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