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방전 휴대폰과 우울증

저녁 모임이 있었다. 친구 K가 들어와 앉자마자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선물이라도 주려나 싶었는데 휴대폰 어댑터였다. 종업원을 불러서 콘센트의 위치를 물었다. 다른 친구도 생각났다는 듯이 자기 것을 꺼내 혹시 충전서비스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종업원은 익숙한 듯 여러 대를 받아 가져갔다.

“아이폰 6 기다리다가 생활이 안 돼…”

오래된 아이폰 유저인 K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배터리가 낡아서 오후만 되면 배터리가 반도 남지 않을 때가 많은데 교환이 불가한 기종(機種)이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외출할 때마다 어댑터를 꼭 챙겨야 해서 가방이 무거워진단다. 어쩌다 맨몸으로 나오면 불안해진다고도 했다. 잠시 짬이 날 때 평소 같으면 인터넷 검색이나 SNS를 했는데 배터리가 간당간당할 때는 자제하고, 통화도 최대한 짧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상하게 사는 게 재미없고 위축되며 자신감도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고 K가 스마트폰 중독자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냥 빨리 약정이 끝나고 새 휴대폰이 나와 교체하기만을 바라는 보통의 사회인이다. 평소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냉소적 시선을 지녀 “우울증은 존재하지 않고 엄살일 뿐이며, 우울증 없는 사람은 없다”고 믿던 그를 교화할 좋은 기회를 잡았다.

“우울증은 마치 너의 오래된 휴대폰 같은 마음의 상태야.”

일러스트 강일구
K는 무슨 황당한 얘기인가 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말인즉 우울증은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돼 버리는 병과 같다. 보통은 사용 후 충분히 충전하면 하루 종일 쓰는데 문제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밤새 충전하더라도 금방 방전돼 버린다. 마찬가지로 우울증에 걸리면 일상생활을 하는 것, 뭔가에 집중하는 것, 흥미를 갖는 것,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마음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니 일상이 위축돼 대인관계나 사회 활동을 할 때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울증에 빠지면 잠을 충분히 못 자고 식욕도 떨어진다. 이는 배터리 충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K와 대화를 나누다가 보니 내 휴대폰의 배터리도 눈금이 거의 없었다. 나는 가방에서 보조배터리를 꺼내 갈아 끼웠다. 새 배터리 덕분에 내 휴대폰은 다시 완전 충전됐다. 이유 없이 자신감도 함께 충전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나와 K를 포함한 현대인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마음은 보조배터리가 없어 갈아 끼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쾌속충전을 할 어댑터도 없다. 그러니 방전되면 우리의 뇌와 정신은 ‘우울증 모드’로 들어간다. 이때는 마치 오래된 휴대전화기처럼 조심해서 잘 충전해 사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울해진 마음은 원인을 찾아 교정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과거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이란 ‘휴대전화’를 과잉 사용하게 해 배터리를 쉽게 소진시켜버리고 있다. 아이폰같이 갈아 낄 수도 없는 나의 마음을 잘 지키려면 미리 사용관리를 잘 해야 한다.

내 얘기가 다 끝났는데도 아직 K의 핸드폰은 충전 중이었다. 나는 “한 번 방전되면 회복도 힘든 법”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듣기 싫었는지 K는 술을 들어 내 잔을 채웠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