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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향기] 왕한년 “천원은 태극 자리 … 1착의 가치는 논할 수 없다”

1958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왕두현(望都懸) 유(劉)장군의 묘(墓)에서 출토된 석제(石製) 바둑판. 현대와 달리 17줄 바둑판이다.
바둑이란 무엇일까? 고래(古來)로부터의 질문이다. 만약 바둑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어떻게 두어야 할지도 알 것이다. 그 답을 찾는 마음이 3000년을 흘러왔다.
누군가 답을 찾았다. 글을 썼다.

<11> 바둑의 기원


“冬至後左旋 夏至後右旋 冬至逆三 成一七四 夏至順三 成九六三 冬至起坎 一而逆歷三宮 成七自七宮 逆歷三宮 成四 故一七四 夏至起離 九而順歷三宮 成三 … 奇門劍家曰 逆三大者 是也 …”
(동지 이후는 (해가) 왼쪽으로 돌고, 하지 이후에는 오른쪽으로 돌며…)

19세기 말 ‘기국해(碁局解)’의 일부다. 1964년인가 바둑 잡지 『기원(碁苑)』에 “해석이 어려우니 함께 연구해 봅시다”라는 취지로 게재되었다. 40여 년이 흐른 후 이 글은 또다시 월간 『바둑』에 실렸다.

무슨 내용일까. 절기(節氣)와 마방진 같은 숫자, 주역, 간지(干支), 병법 … 이런저런 것들이 뒤섞였다. 여러 가지 다른 체계를 잡다하게 섞어서 바둑의 절대적인 답을 찾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체계는 쉽게 하나로 모아질 수 없다. 모으면 오류가 도처에 발생한다. 그래서 아무도 해석 못했다. 정신도 초점도 없는 글이다.

밤하늘 닮은 중국 출토 석제 바둑판
바둑의 역사 3000년. 갖가지 철학과 관념이 출몰했다. 마술적(magic)인 정신과 신화적인 이해, 합리적인 사고가 역사를 이뤘다. 바둑이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 천원(天元·바둑판 위의 정중앙에 자리)과 결부된 답은 오랜 기간 바둑을 수놓았다.

명말 청초 왕한년(汪漢年)은 국수(國手)였다. 그는 첫 수를 천원에 즐겨 두었다. “천원은 태극(太極)의 자리. 태극은 출발점이니 천원 1착은 그 가치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문학의 고전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원(元)은 시작”이라 했다.

기보 천문의 실험으로 도사쿠에 도전한 산테쓰(흑).
18세기 일본 최초의 역인 정향력(貞享曆)을 만든 천문학자 야스이 산테쓰(安井算哲·1639~1715)는 바둑에도 일류였다. 그는 천문(天文)의 이치가 반상에도 살아 있으리라 가정했다. 1670년 본인방 도사쿠(道策·1645~1702)에게 천원 1착으로 도전했다.(기보)

당시 많은 기사들이 천원에 첫 수를 두곤 했다. 모두가 천문의 이치를 기대했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실험 정신이 왕성했다. 천문은 매혹적인 관념이었다. 바둑의 기원설(起源說) 중 하나가 천문설(天文說)이다. 천문 관측 도구로부터 바둑이 왔다는 것이다. 사진을 보자. 1958년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왕두현(望都懸) 유(劉)장군의 묘(墓)에서 출토된 석제(石製) 바둑판이다. 돌이 깨진 탓이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은하수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 같다. 화점 문양도 아름답다. 하나 부언하면 이 바둑판이 17줄이라는 점이다. 늦어도 당나라(618~907) 때엔 바둑판이 19줄이 됐다.

1933년 홋카이도의 지고쿠다니(地獄谷) 계곡 입구에서 우칭위안(앉은 사람)과 기타니가 기념촬영을 했다. 두 기사는 반상의 논리만으로 반상의 지평을 크게 여는 데 성공했다.
1929년 여름 중국의 천재 우칭위안(吳淸源·1914~)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1909~75) 5단과의 대국에서 천원에 1착을 두었다. 역사상 첫 번째 흉내 바둑이었다. 천원 1착 이후 63수까지 기타니를 따라 두었다. 난데없는 시도에 기타니는 당황했다. 대국장 밖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이 세 사건만을 봐도 바둑이 신비와 탈 신비를 오가면서 3000년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시간적인 선후(先後)가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바둑엔 병법의 이치가 살아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병법엔 궤계(詭計)가 핵심이다. 소위 정보를 제한하는 것인데, 그와 달리 바둑은 정보를 완벽히 공개하는 게임이다.

눈을 돌려보자. 태극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왕한년은 철학의 이치가 구체적으로 세상에 살아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관념과 실체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천원=태극’설은 바둑의 자유와 모순된 것이었다. 만약 제1착을 천원으로 정해놓는다면 다른 자리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1착 이후 모든 착수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력을 가진다. 사고를 제한한다.

사고의 제한! 그것이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천원 1착이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이는 두 번째 사건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태극 대신에 북두로 대치했을 뿐이다. ‘천원=북두’였다. 사고는 굳어지고 유연성은 사라진다. 당연히 실패한다. 실제로 산테쓰의 실험은 실패했다. 기보를 보면 수법이 딱딱하기 그지없다. 흑9는 당연히 A에 두어야 부드럽고 반상에 생기가 돈다. 큰소리쳤던 그는 다시는 천원에 1착을 두지 않았으며 천문학자의 길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우칭위안의 천원 1착은 성공이었다. 덤이 없다면 흑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증거가 됐다. 1940년대 덤의 채택에 논리적인 근거가 됐다. 다른 세계의 투영이 아니라 자체 논리로부터 출발했기에 현실적이었다.

철학과 천문 모사한 왕한년과 산테쓰
도가(道家) 철학에서 태극은 신화에서의 천지창조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우주적 질서를 상징한다. 그런데 세상의 질서를 이끄는 관념은 의례(儀禮)에 속한다. 잠시 의례와 게임의 차이를 보자. 제의(祭儀) 같은 의례는 불평등한 세상을 균형으로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정당성을 제공한다. 왕조의 봉선(封禪) 의식이나 제사가 그런 것이다. 태극은 그런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상한다.

하지만 바둑은 게임. 게임은 우연과 사건에 복속된다. 비록 출발은 규칙이 있어 공정한 것이지만 과정과 결과는 사건과 불균형, 불평등으로 귀결된다. 간단히 말해 태극과 게임은 맞지 않는 대응이자 틀린 유추 관계에 속한다. 물론 태극을 상정함으로써 지적(知的) 차원의 만족은 얻는다. 우주를 축소했으니 말이다. 축소하면 갖고 놀 수 있다.

천지·천문·하늘과 같은 개념은 게임의 세상과는 맞지 않다. 바둑의 놀이성과 거리가 멀다. 그러기에 프로들은 철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프로들은 게임의 세상에서 노는 사람들. 게임은 우연과 사건의 세상이지 구조로 답하는 세상이 아니다.

실력 13단으로 불린 도사쿠가 남긴 글에서도 신비나 어려운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가 전부다. “상대의 세(勢)를 갈라 두어라.” “끊기면 문제 되나니 조심하라.”

철학과 천문의 단순 모사(模寫)에 그쳤지만 왕한년과 산테쓰는 바둑을 통제하려고 했다. 바둑에 의례를 도입함으로써 주술적인 행위를 한 것이다. 주술은 자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 삶이 풍성하게 보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건 잠깐이다.

유사(類似)함에 현혹되는 태도의 밑바닥엔 질서를 찾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요청이 있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C Levi-Strauss·1908~2009)는 “인간은 다른 건 다 참아도 무질서는 참지 못한다”고 했다. 질서를 찾는 방법으로 원시인들이 발견한 것은 토테미즘(totemism)이었다. 동·식물 등 자연을 이용해서 세상을 분류하고 질서를 수립했다. 초점은 토템이 아니다. 토템을 이용해 사회를 나누고 관계를 설정하는 조작이 핵심이다.
오행설(五行說)도 맥락은 다르지 않다. 유사와 대응, 매개항을 이용한 분류법을 사용해 체계를 세운 것이다. 주역의 설괘전(說卦傳)도 그런 것이다.

분류의 핵심 하나는 축소다. 인간과 사회를 우주 질서의 축소판으로 보는 견해는 어디에나 있었다.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로 보는 것은 한의학의 바탕이다. 서양도 다르지 않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B.C. 25 ~A.D. 42)는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다. “창조물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애정을 가진 신은 하늘을 시작으로 인간을 끝으로… 축소된 우주(a miniature heaven)로서의 인간을 만들었다.”

간단한 분류는 매혹적이다. 이미지 하나로 복잡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다. 정치도 그렇다. ‘음모론’에 갇히면 세상 모든 것을 ‘음모’ 틀 속에서 설명한다. 단순하지만 스스로는 안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흑백은 회색보다 훨씬 분간하기 쉽다. 맑은 눈망울 가진 저개발 국가의 아이를 보고 그 사회를 평화로 채색하는 태도도 그런 것이다.

신비스런 현상은 있어도 신비는 없다
돌아보면 ‘기국해’는 버젓이 책에도 실리고 칭송도 받았다. 글에 담긴 주술적 요소는 무시되었다. 위안은 있었다. “우린 모른다. 옛사람은 뭔가 알았을 것이다.”

옛사람은 성인(=진리)의 다른 얼굴. 뭔지는 몰라도 손 안에 열쇠 하나는 쥐고 있겠다는 심사다.

하지만 신비스런 현상은 있어도 신비는 없다. 그 점을 이해 못했다. 얻으려 하는 것이 손에 쉽게 잡히지 않고, 또 그것이 오랜 역사를 견뎌온 것이라면 그 대상엔 신비가 서려 있는 것이 보통이다. 바둑에서도 권위 없이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다. 바둑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문명의 역사 길어야 1만 년. 어느 분야든 깊게 알면 신비스런 현상과 신비를 구별할 수 있지만, 약간 맛보면 신비에 넘어가기 쉬운 단계다. 그럴 때 문제는 이것이다. 인생 유한한데, 대체 얼마나 던져야 제대로 알게 될 것인가. 인생 짧은데, 신비의 권위를 인정하면 뭐가 문제인가.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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